MBC 퇴사 소식이 들렸을 때 반응은 두 가지였다. 입사와 더불어 줄곧 간판 아나운서로 존재감이 달랐던 그의 결정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대개 후자의 반응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워킹맘들이었다.
최윤영 아나운서, 워킹맘의 행복찾기
최윤영 아나운서는…
1977년생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1999년 방송 데뷔.
2001~2012년 MBC 아나운서
현 EBS ‘부모’진행


“절대로 프리랜서를 선언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으로부터 10년도 훨씬 전, MBC에 갓 입사한 최윤영 아나운서를 인터뷰할 당시 그가 했던 말이다. 기자는 그 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 그를 옆에서 봐온 기자는 그가 얼마나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서울대 재학 중 방송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아나운서가 되는 데 혹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방송은 아무리 좋은 제의가 있어도 거절할 정도였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꿈꿔왔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그런 그가 퇴사를 선언했을 때는 얼마나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최윤영 아나운서는 ‘프리랜서 선언’이 아닌 ‘집으로 돌아가는’ 퇴사라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유는 올해 다섯 살이 된 딸 서연이 때문. 아이를 낳고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며 줄곧 일과 육아 사이에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에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결정이었다. 당시 MBC가 파업 여파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시기적으로 민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소극적인 딸아이에겐 엄마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일과 육아의 ‘완벽한’ 조합

MBC를 나온 지 5개월, 그는 현재 EBS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부모’의 진행자 타이틀을 달고 있다. ‘육아’를 이유로 퇴사해놓고 한 달 만에 타 방송사 진행자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 ‘정해진 수순 아니었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열심히 시청했던 그였지만, 그런 ‘잡음’을 내고 싶지 않아 처음엔 제작진의 제의를 고사하기도 했다. 그를 설득한 건 오히려 지인들이었다.

프로그램 성격이 성격인지라 오히려 육아를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어느새 ‘부모’의 진행자로 합류한 지 4개월, 그는 ‘이 방송을 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의 마음이란다. “유치원에 갈 때 혼자 셔틀버스 타게 하지 말아줘”라는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책으로만 배웠던 육아를 ‘현장형’으로 바꾸기까지 했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퇴사한 지 5개월이 됐네요.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이 적응됐나요.

“너무 만족스럽죠.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개인적으로도 마음이 편해졌고, 서연이도 엄마에 대한 믿음이 공고해졌어요. ‘부모’를 진행하면서 좋은 육아 멘토들을 만나 유익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일 자체가 육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니 완벽하죠.(웃음) 참으로 감사할 게 많은 요즘이에요.”

무엇보다 아이가 많이 달라졌겠네요.

“그렇죠. 아이가 굉장히 안정됐어요. 유치원 선생님들도 서연이가 너무 좋아졌다고 갈 때마다 이야기해주시죠. 회사에 다닐 때는 아이를 많이 못 봤잖아요. 어떤 분들은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연예인처럼 자유로운 줄 아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출퇴근이 정해져 있고 뉴스를 실시간으로 챙겨야 하는 직업 특성상 특히 숙직이 많아 너무 힘들었어요.

저녁에 퇴근 후 집에 돌아가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먹이면 재워야 할 시간인데 그마나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숙직이어서 얼굴을 못 보는 날도 있었죠.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엄마는 늘 자기를 떠나 있는 사람,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된 거예요.

제가 아이를 기다리면서 돌아오면 함께 무엇을 할까 고민하니까요. 전에도 많이 웃는 아이였지만 지금은 더욱 행복한 아이가 됐어요.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면 점점 더 행복해할 거라는 점을 아니까 저도 행복해요.”

그래도 주변에선 여전히 MBC를 그만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죠.

“저를 잘 아는 분들은 다들 ‘잘했다’고 격려해주셨어요. 예전보다 일하는 엄마들이 훨씬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육아로 인한 고민이 덜해진 건 아니니까요. 같은 고민을 평생 안고 살아온 선배들, 그 고민이 현재진행형인 동료들은 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같아요.

다만 후배들에게는 제 선택이 꼭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선배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할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하죠. 제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아쉬워했던 또 한 사람은 남편인데, 누구보다 제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에 더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제 결심이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결국은 제 의견을 존중해주었죠.”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겠다는 결정 자체가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오래 고민한 결과이긴 했지만 그런 건 있었어요. 아이 키운다고 사표를 냈으니 정말로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압도감 같은 게 있었죠. 결과적으로 ‘부모’를 맡으면서 그런 압도감도 덜었고 아이 마음도 더 잘 읽을 수 있게 돼 육아 자체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EBS ‘부모’를 진행하면서 얻은 게 많군요.

“막상 시작하기까지 고민도 많았고 갈등도 됐는데 지금은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싶어요. 어찌 보면 평생 공부를 한 셈인데도 이렇게 공부한 것을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건 처음이죠. 그날 방송에서 배운 것을 딸아이의 모든 상황에 바로바로 적용하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공부예요.”
최윤영 아나운서, 워킹맘의 행복찾기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들인가요.

“전에는 아이의 반응이 제가 기대했던 것과 다를 때 무조건 제 자신을 자책했어요. 어떻게 할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까 안절부절 했죠. 그런데 이젠 아이가 왜 그런지를 알게 된 거예요. 아이들은 해당 개월 수에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 있다고 해요. 잘하는 것도 안 좋은 행동도 단계마다 당연히 보이는 것이라는 점을 방송을 하면서 터득한 거예요. 그 발달 단계에 맞춰 생각해보면 서연이는 지극히 정상이었는데 그걸 몰라서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혼자 쇼를 한 거였어요.”

아이를 위한다면 엄마부터 행복해질 것

육아 프로그램 진행자답게 그는 준전문가가 다 돼 있었다. 기자가 개인적인 육아 고민을 토로했을 때도 ‘발달 단계’를 근거로 들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가 경험으로 터득한 행복한 아이로 키우는 방법은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것과 엄마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 이렇게 두 가지로 압축됐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행복해지던가요.

“그건 아니에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오히려 육아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했고,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있다 보니 솔직히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과연 회사를 그만둔 게 잘한 결정일까, 엄마가 늘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작정 아이에게 좋은 걸까 하는 의문도 머릿속을 맴돌았죠.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저 스스로 일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걸 ‘부모’ 진행을 맡으면서 뒤늦게 깨달았죠.”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그만뒀는데 정작 일을 다시 시작한 후에 진짜 행복해진 거네요.

“그런 셈이에요. 생각해보니 제가 육아 휴직에 MBC 파업까지 2년 정도 일을 쉬었더라고요.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일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거예요. 다시 방송을 하게 된 후 뭔가 뻥 뚫리는 게 있더라고요. ‘역시 나는 방송을 좋아했던 사람이 맞구나’ 하고 새삼 느꼈죠. 이제는 일을 안 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육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라는 전제가 바뀌지는 않아요. 적어도 아이가 엄마 손을 필요로 할 때까지는 말이죠.”
일을 그만두고 엄마가 아이에게 돌아가기만 하면 아이가 변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일을 그만두고 엄마가 아이에게 돌아가기만 하면 아이가 변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여전히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워킹맘들이 많아요.

“저는 워킹맘도 경험해봤고 육아 휴직을 하면서 전업주부로도 살아봤는데 솔직히 전업주부가 진짜 힘든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면’ 그만두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을 그만두고 엄마가 아이에게 돌아가기만 하면 아이가 변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나란 존재의 끈을 절대로 놓지 말고, 일과 육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면 분출할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결국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질’이 중요하다는 얘긴가요.

“양보다 질이 중요한 건 맞지만 절대적인 ‘양’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채워주지 못하면 아무리 질이 좋다고 해도 아이는 결핍을 느끼지 않을까요. 물론 아이마다 다르긴 하겠죠.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는 그 양이 더 필요할 테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덜하겠죠. 그런데 사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직장 내 보육시설이에요.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아이도 좋고 일에도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요.”

그건 모든 워킹맘들이 공감하는 바이지만 참 어려운 숙제네요.

“육아 정책을 세우는 분들이 진짜 애 키우는 엄마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분들, 남의 손에만 맡긴 분들, 혹은 육아는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회의 탁자에 앉아서 육아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러려면 엄마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도 있어요. 그런 목소리들이 모이면 조금씩 바뀌지 않겠어요.”

딸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나요.

“저는 조기교육을 전혀 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엄마들이 그렇게 아무것도 안 시켜도 되느냐고 걱정할 정도죠.(웃음) 저는 우리 아이가 창의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모범생이긴 했지만 창의적인 아이는 아니었는데 방송을 하다 보니 창의에 대한 목마름이 너무 심했거든요. 그렇지만 결국 제 역할은 아이의 특성에 맞게 길을 열어주는 사람일 뿐, 길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부모’를 진행한 경험을 토대로 향후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지금은 조금씩 제 삶의 흐름이 보이는 시기예요. 그 첫 시작은 ‘W’를진행하면서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거든요. 제 머릿속에 있는 미래는 아이와 전혀 상관이 없었죠. 그런데 ‘W’를 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아이에 대한 미래가 생겼어요. 아이에 대한 장벽이 허물어지고 국경도 허물어졌죠.

‘W’를 진행할 당시 ‘우리나라에도 굶어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왜 외국 아이들부터 챙기느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는데, 인간 앞에서 국경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때 또 마침 어떤 구호단체와 인연이 닿으면서 아이들을 후원하게 됐고, 점점 더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내 아이가 생기면서 우리 아이에게 그 마음이 확 쏠리긴 했지만, 아이가 자라고 홀로 설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지금의 마음과 사랑을 다른 많은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