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 개정의 위력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관련 뉴스들은 쏟아지고, 하루가 다르게 전략과 전술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의 대폭 인하로 과세 대상자가 기존보다 4~5배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런데 과연 5배로 끝날 것인가. 거기다 표면적으로는 ‘부자 증세’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히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보험료, 차명계좌 등 자산가들을 불편하게 하는 문제들도 많다.
[절세 테크닉] “세제 개편 충격 그 후” 허정준 삼성증권 전문위원
허정준 세무 전문위원은…
한양대 조세법 석사.
국세청 경력 10년. 상속·증여·양도세 전문 컨설턴트.
현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세무 전문위원.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인하로 바빠진 이들은 금융권 관계자들이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새로 과세 대상이 되는 이들은 물론, 기존에 과세 대상이었다가 이번 개정으로 세금 부담이 더 커진 자산가들의 문의가 폭주하는 상황이기 때문.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법 개정 내용을 듣고 처음에 당황했던 이들이 이제는 내용을 거의 인지한 상태에서 현재뿐 아니라 향후 또 어떤 변화들이 있을지 걱정하는 형국이라고 한다. 이번 세법 개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장·단기적으로 어떤 대처가 필요할지 허정준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세무 전문위원에게 들어봤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금융권이 비상이라는데 실제로 어떻습니까.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가장 큰 충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지난해 말에 로드맵이 제시되고 준비할 시간을 줬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진행된 감이 없지 않아 충격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만 해도 작년에 3000만 원이란 얘기가 있어서 금융권에서 그에 맞춰 준비를 많이 하고 전략을 세웠는데 갑자기 과세 대상 범위를 넓히고 기준 금액을 낮추면서 혼란스러웠죠.”

관련 세미나에 자산가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죠.

“막연한 두려움들이 큰 것 같아요. 지난해 8월 발표된 안보다 더 강한 측면이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본인들의 실제 자산규모를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견주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탐색’을 하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나 기존에 차명계좌를 이용했던 분들은 앞으로 계속 해도 될지, 그럴 경우 세무조사를 받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

자산가들의 경우는 차명계좌도 문제군요.

“그렇죠. 이번 세법 개정으로 차명계좌에 대한 증여 추정 규정이 신설돼 향후 금융계좌에 자금이 입금되는 시점에 계좌 명의자가 재산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요. 물론 차명계좌는 원칙적으로 불법이긴 합니다만, 그동안 가족 등의 명의로 만든 차명계좌는 예금 보장 한도액만큼 보장받기 위한 편법으로 인정돼 그냥 넘어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에 대한 세금 추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고, 타인 이름으로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도 강화하겠다는 말이죠. 쉽게 말하면 이미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보다 강하게 들어간 측면이 있는 겁니다.”

차기 정부가 지향하는 지하경제의 양성화군요.

“문제는 단순히 양성화만 하면 모르겠는데 거기다 세금까지 플러스(+) 되고 건강보험료 부담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니 문제인 거죠.”

건강보험료 문제는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세법 개정에 따라 건강보험료 기준도 바뀔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현재 규정은 금융소득이 4000만 원을 넘게 되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로서 건보료를 따로 내도록 하고 있는데, 이 기준을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에 따라 2000만 원으로 낮출지를 보건복지부가 검토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이미 지역가입자였던 분들은 그만큼 건보료가 올라가겠죠. 어떻게 보면 자산가들의 입장에서는 세금 부분보다 건보료에 대한 불만이 더 많습니다. 특히나 자산가들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는 분들이 많아요. 기존에 내는 금액에도 불만이 있었는데 더 늘어난다는 게 심리적으로 수용이 안 되는 겁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인하로 금융 자산 대이동이 시작됐다고들 합니다.

“글쎄요, 그런 표현들을 많이 하는데 자산이란 게 결국은 금융시장 안에서 돌고 도는 게 아닐까요. 워낙 저금리인 상황이니 일단은 세금이라도 피하고 보자 해서 비과세 상품이나 분리과세 상품 등 절세 상품 쪽으로 몰리고 있는 거죠. 절대적 현상인 건 맞습니다.”



“걱정되는 건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건실한 사회인데 이번 세법 개정으로 인해 IMF 이후 또 한 번 중산층이 주저앉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움직임들을 보며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처음 시행되던 당시와 비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건 좀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진짜 부자들에게 과세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기준 인하는 다르죠. 그 당시는 은행에 저금만 해도 이자가 막 붙던 시기이고, 지금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돈을 불리는 게 정말 어려우니까요. 현실적으로 투자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리스크를 안고 재테크를 해서 소득이 생겼는데 세금에 건보료까지 50%에 육박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면 누가 선뜻 수긍할까요.

물론 서민 입장에서 보면 남의 얘기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금융소득에서 2000만 원을 얻는 사람들을 모두 부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요. 생각해보세요. 펀드 1억 원만 잘 들어도 2000만 원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겁니다.”

이번 과세 기준 인하가 불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새롭게 과세 대상이 된 분들이죠. 중산층에 진입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안하고 의욕적으로 투자해왔던 분들 입장에서는 리스크는 리스크대로 안고 투자하면서도, 성공했을 때 세금까지 많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으로 인해 과세 대상자가 4~5배 늘어난 19만~2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저는 측정 불가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시장이 수익을 많이 낼 만한 상황이 되면 훨씬 더 늘어나겠죠. 기존에 이미 4000만 원 이상 대상이었던 분들은 물론 부담이 커지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요.”

과세 기준이 인하된다고 해서 해당되는 모든 사람이 추가적으로 세금을 부담하지는 않죠.

“그렇습니다. 기준 금액 초과가 곧 추가적인 세금 부담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금융소득을 지급받을 때 이미 14%(지방소득세 포함 15.4%)의 소득세를 납부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근로소득 등 다른 소득이 없이 금융소득만 있는 경우에는 7700만 원까지 추가적인 세금 부담이 없습니다. 다만, 새로 과세 대상자가 되면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돼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추가 건보료 납부 의무가 있을 수 있죠.”

이번 개정을 부자 증세의 하나로 볼 수 있는 건가요.

“부자의 기준이 개인별로 다 다르지 않습니까. 본인은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세금 자체는 부자를 대상으로 물린다고 하니 갭이 생기는 거죠. 실제로 부자가 아닌데 투자를 잘해서 과세 대상이 되는 분들도 많을 테고요. 걱정되는 건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건실한 사회인데 이번 개정으로 인해 IMF 이후 또 한 번 중산층이 주저앉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향후 과세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당장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떤 대처가 필요합니까.

“이번 개정안이 자리를 잘 잡으면 저절로 과세 증가로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또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거고요. 지금은 그 문턱을 넘는 시점이라 이런저런 부작용들이 있지만, 접점을 잘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부에서도 세금 정책이 부자와 서민의 갈등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해서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슈퍼리치들이 좀 나서서 ‘국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겠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