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MESSAGE
근사함이란 스트레스 관리 측면에서 최고의 정서 상태입니다.이성적 콘텐츠가 아닌 내 감성 시스템이 제공하는 고품질의 에너지 콘텐츠이지요. 스스로 마음의 근사함만 유지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감성 시스템이 소진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지위는 올라가는데 스스로의 근사함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떨어지는 ‘현실’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근사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우울증 환자가 컨디션이 가장 안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요. 일상의 피로에 지친 저녁 시간일 듯싶으나 예상과 달리 아침입니다. 눈 뜰 때 첫 느낌이 가장 가공되지 않은 우리 감성 시스템의 솔직한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하루를 보내면서 감성은 이성의 요구에 의해 조정됩니다. 감성 노동이 일어나는 것이죠. 현대인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감성 노동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성 노동은 최전선 서비스업에 존재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감성 노동이죠. 감성 에너지가 충전이 아닌 방전, 사용 상태로 스위치가 켜지는 것입니다.
근사함이 사라진 마음은 방전만 될 뿐
“아침에 눈 떴을 때 첫 느낌, 스스로가 근사하게 느껴지세요?” 종종 기업체 강연 시간에 이렇게 물으면 손드는 이들이 열에 한 명도 안 됩니다. 때론 백 명 넘는 청중이 모두 전사해 필자를 당황케 합니다. ‘근사함’이란 것은 스트레스 관리 측면에서 최고의 정서 상태입니다.
근사함은 이성적 콘텐츠가 아닌 내 감성 시스템이 제공하는 고품질의 에너지 콘텐츠이지요. 누가 나를 뭐라 하든지, 경쟁 속에 좌절이 닥쳐도 내가 내 마음의 근사함만 유지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스트레스로 우리 감성 시스템이 녹다운(knockdown)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근사한 분들조차 스스로를 근사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이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기업체 강의에서 발견하는 희한한 현상이 있습니다. 신입직원들은 스스로를 근사하다 번쩍 손드는데 오히려 고생해 높은 지위까지 올라선 윗분들의 손이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쑥스러워서인가’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실제적인 지위는 올라가고 있는데 스스로의 근사함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근사함이 사라진 마음은 충전될 수 없고 계속 방전만 되기에 결국은 감성 시스템을 소진 상태로 만듭니다.
소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은 말 그대로 우리의 감성 에너지란 배터리가 방전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소진증후군의 가장 중요한 증상이 삶의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완수하면 쾌감이 느껴지고 삶의 의미를 충족시켰던 일들이 무의미하게만 다가옵니다.
옆에서 보면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개인에게도 삶의 만족감이 없으니 큰 문제이고 조직관리 차원에서도 전반적인 기업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성의 문제이기에 이성적인 촉구와 의지의 독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은 에너지마저 다 방전시킬 수 있지요.
잘나가는 연예인이 필자의 클리닉을 방문했습니다. 돈도 잘 벌고 인기도 많은데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지만, 잘나가도 감성 노동이 지나치면 소진증후군이 올 수 있습니다. 돈이 쌓인다고 감성 에너지가 동시에 충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 인터넷 앞에만 앉으면 저도 모르게 이민이라는 단어를 검색해요”라고 말합니다. ‘다 때려 치고 어디로 멀리 떠나고 싶다’ 하는 경고 신호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의 클리닉에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는 분들이 적지 않게 옵니다. 그곳에 삶의 충전이 있다면 긴 진단서라도 써 드리겠지만 멀리 내려간들 에너지 보충은 일어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없지요. 스트레스로부터 멀리 떠나고픈 마음은 해답이 아닌 증상입니다. “선생님, 일만 하다 보니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멀리 해외여행을 가서 한 2주 푹 쉬다 오려고요.” 뜻은 아름답지만 먼 여행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사이좋은 부부도 멀리 여행을 다녀오면 돌아오는 공항에서 대판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쉬고 싶다, 어디로 멀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는 본질적인 해결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치열한 내 삶과 ‘거리 두기’가 필요
그렇다면 소진증후군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방전된 나의 감성 배터리를 다시 충전할 수 있을까요. 감성의학의 최신 연구는 삶의 의미를 깊이 느끼는 것이 소진증후군의 최고 예방책이라 합니다. 그러나 소진증후군의 주요 증상이 인생의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기에 문제가 간단하지 않지요.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니체는 피로사회에 사는 현대인의 문제를 ‘깊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빠르고 감각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자극들이 우리의 감성 시스템을 중독적으로 만들고 정말 좋은 느린 자극을 외면케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나만의 바캉스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캉스는 휴가라는 프랑스어로 라틴어 어원은 쉼이 아닌 ‘자유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일을 위한 바캉스가 아닌 바캉스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심리 철학적으로는 옳지 않나 싶습니다.
치열한 내 삶과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 자유를 찾는 바캉스입니다. 해야 할 일에 끊임없이 몰입해서 사는 것은 오히려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아닌 거대한 시스템의 프레임 안에 갇힌 영혼 없는 인생을 만들기 십상입니다.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사색하며 걷기’란 바캉스를 즐겨보세요. 하늘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세요. 그럴 때 바삐 돌아가던 이성의 스위치는 꺼지고 에너지를 공급하던 감성 시스템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 충전이 시작되는 법입니다. 근사함이란 마음의 에너지가 충전될 때 감성이 보내는 메시지임을 잊지 마세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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