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디자인 오디세이


중국 징더전(景德鎭)은 청화백자(靑華白磁)의 고향이다. 4월 중순, 징더전에 봄비가 내렸다. 공항은 청화백자 파편으로 길을 만들고, 거리는 온통 도자기로 가득하다. 가로등부터 로터리의 조형물까지 푸른색 청화다. 청화백자의 나라에 온 나는 청화백자가 된다. 푸른색 마음이 출렁인다. 말 그대로 징더전은 도시 전체가 청화백자였다. 조형물, 간판, 포스터, 상점…. 심지어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생각조차 청화백자다. 푸른색과 흰색의 어울림, 접시부터 찻잔까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청화의 푸른색이다.
청화백자(靑華白磁), 유럽을 뒤흔든 중국 최고의 하이테크
청화백자봉화문항아리, 높이 54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봉화문항아리, 높이 54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는 징더전의 가오링(高嶺) 산에서 채굴한 고령토로 빚은 자기다. 고령토 원석을 부수어 입자를 만들고 물에 걸러 여러 번 수비(水飛)한 다음 반죽을 만든다. 빚어낸 초벌구이 자기에 코발트로 무늬를 그리고 잡티가 튀지 않도록 상자 같은 갑발(匣鉢)을 씌워 섭씨 1250도 이상의 고온에서 환원소성하면 유백색 피부를 가진 자기가 탄생한다. 이른바 백자다. 고령토는 카오린 성분으로 석영, 점토, 장석이 골고루 배합된 흙이다. 석영은 자기의 뼈가 되고 점토는 살이 되며 장석은 이 둘을 이어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여기에 청화로 무늬를 그려 구워낸 것이 청화백자다.

청화는 이란의 고원 카샨이 원산지다. 코발트블루가 청화다. 카샨은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으로 대상(大商)의 낙타에 실려 수천 리를 건너 징더전에 이른다. 이곳에서 청화는 고령토로 빚은 도자의 문양과 그림으로 되살아나 중국 최고의 하이테크 제품이 된다. 순백의 도자에 눈이 부신 청색 안료는 명, 청의 황실뿐 아니라 유럽의 황실을 뒤흔들었다. 도자기 하나로 유럽의 은화를 싹쓸이하고 중국을 천하의 나라로 만든 명품이 청화백자다. 코발트 원석은 돌덩어리로 이것을 잘게 부수고 곱게 갈아 물에 녹여 안료로 쓴다. 입자로 된 코발트는 진한 회색이지만 온도가 섭씨 1200도 이상 올라가면 푸른색으로 변한다. 이것이 청화다.

청화는 회회청(回回靑)이라고 하는데 회회는 이슬람을 지칭하는 한자어다. 코발트블루는 원래 서아시아 이슬람의 상징이다. 이란의 블루모스크에서 뿜어나는 푸른색 안료는 사막의 오아시스다. 대상은 푸른 밤하늘 사막을 별빛에 의지해서 건넌다. 그 밤하늘의 짙고 푸른색은 이슬람 세계의 생명이요 빛이다. 어떻게 중국인들은 이 푸른색 안료를 자기의 문양으로 쓸 생각을 했을까.
징더전 도자박람구 구야오(古窯) 풍경, 2012ⓒchoisunho
징더전 도자박람구 구야오(古窯) 풍경, 2012ⓒchoisunho
최고의 부가가치

고령토가 섭씨 1200도를 넘으면 자화가 이루어져 흙은 완전히 녹아 세라믹으로 성분이 바뀐다. 고온에서 소성된 자기일수록 쇳소리가 난다. 흙 성분은 완전히 사라져 자기의 내부는 공기 입자가 사라지고 단단해진다. 세라믹은 쇠보다 더 단단하고 강철 같은 소재로 현대 산업의 중요한 신소재다. 고온에서 견디는 세라믹의 성질 때문에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에 진입해 낙하할 때 공기 중 산소와 부딪쳐 발생하는 고온의 열을 차단하는 데 사용된다.

일본 교세라의 주방용 세라믹 칼도 세라믹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좋은 예다. 강철보다 더 강한 자기의 성질은 떨어트리면 부서지는 단점이 있지만 유럽의 황실에서는 이전의 금은기 생활용품에서 자기의 새로운 모습에 완전히 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럽에서는 백자를 만들 수 없었다. 백자의 흙 성분인 카오린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황제들은 연금술사를 불러 백자를 만들어내라는 주문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1710년 독일 드레스텐 작센왕국의 황제 아우구스 2세의 명을 받은 연금술사 베트거에 의해 백자 만드는 비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고령토였다. 그 결과 독일 마이센은 명품 마이센 자기를 만들기 시작해 19세기 황금기를 거쳐 오늘날 세계 도자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마이센의 성공은 네덜란드의 델프트 자기와 프랑스의 세브르 자기, 영국의 본차이나까지 유럽 자기의 황금기를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일본은 임진왜란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노력으로 1630년대부터 백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황실 도자기를 주문, 생산하는 이마리 자기를 탄생시켰다. 이마리 자기는 징더전의 청화백자에 금과 색을 입혀 다시 구워내 더욱 화려해졌다. 값도 중국 자기보다 비싸 에도시대 일본 경제를 이끄는 중추가 됐다. 유럽에서, 특히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일본 열풍이 분 것은 그들이 단순히 일본 취향의 기호여서가 아니라 도자 교역으로 일본이 알려졌고 그 결과 델프트 자기와 프랑스 인상파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청화백자영락문병, 높이 23.2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영락문병, 높이 23.2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조선 후기 청화백자의 단정한 모습에서 우리네 담백한 숨결을 느낀다. 당시 청화의 값이 금값이었다. 서민의 밥상 위에 청화백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하기야 아랍에서 중앙아시아, 페르시아를 거쳐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오면서 여러 나라의 세관과 운반에 따른 인건비, 목숨을 건 위험수당, 거기에 도적들의 약탈 보험금까지 모두 감안한다면 동쪽 끝 조선 땅까지 얼마나 먼 여행이었을까. 금쪽같은 청화 한 모금에 분원백자의 항아리와 사발 대접에 몸을 맡겼으니 청화백자의 귀한 몸은 가히 왕실용으로밖에 쓸 수 없는 처지였다. 그나마 조선 전기는 왕실 자기 역시 대부분 순백자로 청화의 흔적은 찾을 길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청과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청화의 유입이 늘어났고 백자에 청화 찍듯 담백하게 그려낸 자기가 사대부와 서민의 눈맛을 돋우었다.

조선 후기 한강 금사리나 분원에서 구워낸 왕실 청화백자의 귀태는 청화의 화려함이 아니라 단아하고 품위 있는 정갈함에 있다. 징더전 청화백자의 눈부신 화려함이 눈에 어설프고 이국적이었던 것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감은 자주 보아야 높아진다. 내가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자주 보고 즐겨 쓴다는 말이다. 잘 알기에 익숙하고 정감이 든다. 조선 자기에 익숙한 나의 미감이 중국과 유럽으로 퍼진 징더전 청화백자로 눈을 돌리니 새로운 자기 세계가 열린다. 눈이 부시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울까.

중국풍 인물·산수화만 걷어내면 푸른빛 청화의 세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당초문의 끝없이 이어지는 둥근 무늬는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다. 네덜란드 자기회사 로열코펜하겐의 청화 접시의 문양이 독일 마이센 자기에서 빌려왔고, 그릇의 모양은 징더전에 주문한 자신들의 금속기에서 출발한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이루어진 17세기 무역의 결과물이라는 점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출발은 징더전이었지만 완성은 마이센에서 이루어졌다. 징더전 청화백자는 현대 유럽 자기가 오늘날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한 원동력이다. 말 그대로 유럽을 뒤흔든 중국 최고의 하이테크였다.
청화백자당초모란문병, 높이 35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당초모란문병, 높이 35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의 디자인

징더전 청화백자는 내륙의 수로를 통해 배편으로 상하이를 거쳐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일부는 실크로드의 낙타 등에 실려 중앙아시아 고원과 사막을 건넜다. 유럽 황실과 이슬람 술탄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그릇의 모양과 문양을 디자인, 주문했다. 청화백자에 이슬람어가 적혀 있고, 유럽 황실의 은기 형태가 등장했다. 둥근 대접을 육각이나 팔각으로 형태를 나누고 일정한 간격으로 연봉처럼 접시의 상단의 전을 끝이 도드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청화백자절지화문대접이 그것이다.

주전자의 손잡이를 높고 둥글게 만들고 수구를 대칭으로 두어 마치 팔을 벌리고 서있는 듯 보이는 청화백자당초모란문병 디자인은 이슬람 금속기 기형에서 자기로 재질만 바꾸어 만든 것이다. 여기에 외부 디자인을 청화 당초문으로 바꾸었을 따름이다. 고려청자의 정병이 중국 불교 의식용품인 동으로 만든 정병을 그대로 자기로 만든 것과 같은 이치다.
청화백자절지화문대접, 지름 22.3cm, 청화백자당초연화문접시, 높이 6.7cm·지름 15cm, 명 선덕년제, 고궁 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절지화문대접, 지름 22.3cm, 청화백자당초연화문접시, 높이 6.7cm·지름 15cm, 명 선덕년제, 고궁 박물원, 베이징.
징더전 청화백자영락문병은 중국 남부 윈난(雲南) 성 장족의 은제 영락장식병을 자기로 구워 만들었다. 병 가운데 이슬람 당초문 대신 불교의 영락 장식을 했다. 깨알처럼 도드라지게 뚜껑과 목 받침을 둘러내었는데 이는 금은세공에서 누금기법을 차용한 것이다. 형식도 마치 화려한 장족 전통의상과 모자를 보는 듯하다. 청화백자봉화문항아리 역시 뚜껑의 연꽃 봉우리가 마치 황제의 모자를 연상시킨다. 자기 형태의 어설픔은 우리네 눈에 익숙하지 않아서이지만 순백의 자기 피부에 잘 익은 청화의 푸른 빛깔은 보석처럼 빛난다. 청화백자는 흙으로 빚어낸 예술이다.



당초문과 찻사발

명대 초기 징더전 청화백자의 문양은 이슬람의 아라베스크 문양인 당초문이 대부분이다. 이슬람에서 인물과 동물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을 율법으로 금해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이 풀줄기와 꽃잎 문양이다. 화투의 흑싸리 같은 이파리와 줄기에 포도, 도토리, 무화과, 복숭아 같은 열매와 모란, 국화, 연꽃 등 문양으로 쓸 수 있는 화려함을 총동원했다. 여기에 별빛처럼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은 이슬람의 전통적 문양인 아라베스크 무늬로 일본의 전통 문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의 현란한 별빛 문양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문양의 정점이다. 당초문은 이슬람 상인들이 징더전의 도공에게 주문, 생산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징더전 청화백자의 문양이 됐다.
청화백자용봉문합, 높이 16.5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용봉문합, 높이 16.5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도자기는 물건을 담는 물건이다. 도자기의 본래 용도는 서서히 변해 도자기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됐다. 조선백자 달항아리는 처음부터 실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청화백자는 실용을 넘어 감상 그 자체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베리아 바이칼 청금색의 푸른 빛깔을 머금은 징더전 청화백자는 보는 이의 눈맛을 상큼하게 잡아당긴다. 나는 징더전 시내 도자기 가게에서 요즈음에 모작한 명대 청화백자당초봉황문 찻주전자를 하나 샀다. 높이 12cm의 아담한 크기로 당초문과 봉황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명대 청화백자다.

나는 마치 진품을 얻은 듯 마음이 기뻤다. 집에 돌아와 내 책상 위에 눈높이로 올려놓고 바라보고 만지고 또 본다. 청화의 맛이 저런 거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청화백자 찻주전자에 새로 딴 찻잎으로 우려낸 차를 징더전 청화찻잔에 따른다. 연한 노란 차의 색이 눈을 맛깔스럽게 한다. 차향이 피어오른다. 입술을 찻잔에 댄다. 얇은 찻잔 전의 촉감이 새롭다. 안동의 조선막사발 청화백자 찻잔으로 마시던 입맛과는 사뭇 다르다. 찻물을 따르는 느낌이나 찻잔이 손에 감기는 감촉이 다르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어쩌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 잔에 잎차를 마시는 것과 같은 차이다.
청화백자당초연화문접시, 높이 6.7cm 지름 15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청화백자당초연화문접시, 높이 6.7cm 지름 15cm, 청 강희년제, 고궁박물원, 베이징
투박하고 밋밋한, 조금 덜 떨어진 맛이 조선의 막사발 찻잔이라면 징더전 청대 모작 청화백자 당초문 찻잔은 화류 식탁에서 중국말로 이야기하며 마셔야 제격일 듯 맛이 화려하다. 나는 단순하고 담백한 품위를 간직한 조선 찻사발을 사랑하지만 징더전 청화백자도 좋다.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製)니 대청강희년제(大淸康熙年製)니 하며 자기의 바닥에 황제의 연호를 써서 황실에서 품질을 보증한 이 자기들은 가마 한 곳에서 구워낸 1000개 중에 하나인 천하 명품 청화백자다.

징더전 야오리(窯里) 고성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아직도 퇴락한 중국 남부 장시(江西) 성의 후미진 산골이지만 이곳은 송대부터 도자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은 천년고읍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내를 끼고 주변으로 도요지와 도자산업기지가 널려 있다.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개발이 급속히 진행됐지만 관광지의 상흔과 생계 사이를 오가는 주민의 표정은 무덤덤할 뿐이다.
징더전 야오리 고성 풍경, 2012ⓒchoisunho
징더전 야오리 고성 풍경, 2012ⓒchoisunho
대낮부터 청대에 지은 퇴락한 벽돌 건물에서 간이의자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다듬고 수염을 깎는 노인의 무표정에서부터 손녀를 무릎에 뉘고 종일 트랜지스터 보급형 간이 라디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할아버지의 속마음까지 마을은 팍 늙었다. 나는 야오리 고성 마을 찻집에 들어가 주인이 직접 뒷동산 언덕배기에서 금방 새순을 따와 덖고 손질한 청명차를 주문했다. 징더전 청화백자 찻잔은 구경조차 할 수 없고 투박한 사기잔에 밋밋한 차향만이 입에 감돈다. 천년고도의 풍경 속에 청화백자 푸른색 한 줄기가 빠르게 스친다.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 소장. 현재 전업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