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u & Hunza, Pakistan


파키스탄의 산골마을 훈자(Hunza)는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유명하다. 푸른 물이 뚝뚝 듣는 하늘 아래 새하얀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훈자의 계곡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훈자 인근의 작은 마을 파수(passu)는 ‘인디아나 존스 다리’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그림 같은 풍광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때로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사막의 더위에 허덕이며 실크로드를 달린 지 한 달여. 세상에서 가장 높고, 위험하고, 아름다운 길이라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넘어 파키스탄에 들어섰다. 이 나라의 첫 목적지는 국경 근처 파수라는 작은 마을. ‘뒷산’의 빙하와 두 개의 ‘인디아나 존스 다리’로 유명한 트래킹 명소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한국인 남자 친구와 함께 맑은 날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
[The Explorer]틀린 길은 없다, 풍경이 다를 뿐&nbsp;&nbsp;Passu & Hunza, Pakistan
드디어 도착한 첫 번째 인디아나 존스 다리. 언뜻 듬성듬성 나무로 엮은 듯 위험해 보였지만, 동아줄 같은 철선으로 칭칭 동여매 조금만 주의하면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다. 더구나 그리 높이 매달려 있지 않고, 얕은 강물에 바닥 또한 모래여서 설사 떨어진다 해도 별로 다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으로 찍어 놓으면 정말 영화 <인디아나 존스>, 혹은 <슈렉>에 나오는 다리처럼 위험천만하게 보이니 이거야말로 ‘영양가 있는’ 여행지가 아니던가.
5 남자친구(?)와 새참을 드시는 할머니. 길 가는 여행자를 부엌으로 불러들여 맛있는 빵과 차를 내어주셨다.
5 남자친구(?)와 새참을 드시는 할머니. 길 가는 여행자를 부엌으로 불러들여 맛있는 빵과 차를 내어주셨다.
첫 번째 다리는 가볍게 넘어주고, 두 번째 다리로 가는 길에 친절한 파키스탄 할머니를 만나 차와 빵을 대접받았다. 같은 밭에서 일하는 ‘남자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으려다 우리를 보고는 부른 것이다. 할머니의 너무도 맑은 웃음을 마음에 담고 다시 두 번째 다리를 향해서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1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던 다리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평탄했던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지고, 이 길인가 저 길인가 고민 끝에 선택한 길에서는 위험천만,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돌이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무리 봐도 길을 잘못 든 것이 분명했다. ‘음, 이 일을 어쩐다? 할머니를 만났던 곳까지 되짚어 돌아갈까 아니면 조금만 더 앞으로 가볼까’ 하고 고민하던 중 다행히도 맞는 길을 찾았다. ‘그럼 그렇지, 우리의 운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지만 두 번째 다리를 건너자마자 완전히 녹초가 돼 도저히 다음 코스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 또한 만만치 않게 멀었다.
1 파키스탄 산골마을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돕는다. 반달 모양 낫으로 제 몸집처럼 자그마한 나뭇짐을 해 오는 것도 그중 하나다.
1 파키스탄 산골마을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돕는다. 반달 모양 낫으로 제 몸집처럼 자그마한 나뭇짐을 해 오는 것도 그중 하나다.
파수의 새옹지마, 훈자의 별밤

뜨거운 태양 아래, 물통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데, 마침 지나가던 미니 트럭 한 대가 숙소까지 태워주겠단다. ‘오호, 이렇게 고마울 때가.’ 룰루랄라 휘파람 불며 파키스탄 사람들의 친절에 감사하며 숙소까지 잘 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방 열쇠를 넣어 두었던 윈드재킷을 트럭 짐칸에 두고 내렸다. 트럭은 이미 한참 전에 제 갈 길로 가버렸는데. 열쇠야 얼마간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나름 비싼 돈을 주고 한국에서 샀던 기능성 윈드재킷이 문제였다.
3 산에서 나무를 해 오는 어머니 손을 잡은 소년. 이렇게 아이들은 자라 나무꾼이 되고 농부가 된다.
3 산에서 나무를 해 오는 어머니 손을 잡은 소년. 이렇게 아이들은 자라 나무꾼이 되고 농부가 된다.
돈도 돈이지만 파키스탄 어디에 가야 이런 제품을 다시 살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친절한 기사 아저씨 얼굴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트럭을 수배할 수는 없는 일.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쇠 값이 얼만지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는 순간, 역시 무지하게 친절한 얼굴의 주인 아저씨가 걱정 말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우리가 탔던 트럭을 찾았다며 조금만 기다려 보란다. 그러더니 그 트럭이 1시간 뒤에 내 재킷과 열쇠를 가지고 우리 숙소로 올 것이고, 더구나 다음 목적지인 훈자까지 우리를 태워다 줄 거란다.
4 파수의 빙하 트래킹 가는 길.
4 파수의 빙하 트래킹 가는 길.
‘우와, 이런 것이 바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것이군. 그 친절한 트럭 아저씨가 오기만 하면 감사의 말씀과 함께 톡톡히 사례를 해 드려야지. 아무래도 달러로 드리는 것이 더 좋겠지’ 등등의 즐거운 상상을 하며 기다리는데, 1시간, 2시간, 3시간이 지나도 트럭 오는 기척조차 나지 않는다. 주인 아저씨는 초지일관 “걱정 말라(no problem)”고 하고. 4시간에서 5시간째로 접어들 무렵, 트럭 한 대가 도착해 뛰어나가 보니 채소 행상차였다. 거기에서 느긋하게 채소를 고르며 트럭 기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주인 아저씨가 얄밉게 느껴졌다.
7 훈자의 ‘이글네스트’ 올라가는 길. 7월의 훈자는 살구가 지천이다.
7 훈자의 ‘이글네스트’ 올라가는 길. 7월의 훈자는 살구가 지천이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이제는 열쇠고 재킷이고 그냥 아무 차나 타고 훈자로 가고만 싶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트럭이 왔다. 아니, 그런데 기다리던 트럭이 아니었다. 주인 아저씨는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다른 트럭이 왔으니 그냥 타고 가란다. 물론 열쇠도 재킷도 없었다. 더구나 이 트럭은 우리가 가려는 곳 근처까지만 간다고 했다.
2 이렇게 그림 같은 풍광 속에서 일을 해서일까? 파수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멋지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2 이렇게 그림 같은 풍광 속에서 일을 해서일까? 파수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멋지게 포즈를 취해 주었다.
거기에서 다시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타야 훈자로 갈 수 있단다. 주인 아저씨는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 재킷은 다음에 찾아 주겠다고 했다. ‘다음에? 다음 세계 여행 때?’ 하지만 이제 시간이 늦어버려 아무런 대안도 없었다. 이번에는 파키스탄 사람들의 대책 없는 친절을 원망하며 트럭 짐칸에 올랐다. 그렇게 덜컹거리며 어두운 밤길을 간 지 1시간쯤. 기름을 넣는다며 웬 가정집 앞에 차가 섰다.
6 파키스탄 산골에선 아이가 아이를 키운다. 대여섯 살짜리 아이가 동생을 업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6 파키스탄 산골에선 아이가 아이를 키운다. 대여섯 살짜리 아이가 동생을 업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더니 무슨 양동이 같은 용기에다 기름을 담아왔다. ‘으으, 이 차로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트럭 뒤에서 헤드라이트가 번쩍이고 자동차 경적이 빵빵거린다. 내가 옷을 놓고 내린 바로 그 트럭이 우리를 쫓아온 것이었다.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쫓아온 트럭의 짐칸으로 옮겨 피곤한 몸을 뉘이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다.

직장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떠나오기 전 친한 선배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너 지금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는 거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라.” 그때 언제가 책에서 읽었던 문구가 떠올랐다. ‘틀린 길은 없다, 풍경이 다를 뿐.’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카라코람의 꽃, 훈자의 별투성이 밤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틀린 길은 없다. 풍경이 다를 뿐.’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카라코람의 꽃, 훈자의 별투성이 밤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틀린 길은 없다. 풍경이 다를 뿐.’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카라코람의 꽃, 훈자의 별투성이 밤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Passu & Hunza Tip
How to Get There

파키스탄의 장수마을 훈자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국 신장의 카슈에서 출발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신장의 수도 우루무치까지 간 다음(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항 운행), 중국 국내선 비행기로 카슈까지 갈 수 있다. 캬슈에서 버스나 랜드크루저를 이용해 2박 3일 천천히 주변의 풍광을 즐기다 보면 파수와 훈자에 닿는다. 훈자로 바로 가고 싶다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간 다음(직항 편은 아직 없다), 길깃까지 국내선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Where to Stay

작은 마을 파수의 호텔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 대신 훈자에는 제법 시설을 갖춘 호텔들이 몇 있는데, 훈자의 그림 같은 풍광을 제대로 즐기려 한다면 이글네스트 호텔(eaglesnesthotel.com)이 좋다.



Another Site

훈자에서 출발하는 라카포시 베이스캠프 트래킹이 환상적이다. 해발 7788m의 라카포시 베이스캠프(3261m)까지는 1박 2일 코스다. 여러 시간 땀 흘리며 오른 후 마주치게 되는 빙하의 장관은 보는 이의 가슴을 철렁 쓸어 내리게 만든다.


글·사진 구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