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오밥나무란 교회만큼이나 큰 나무라는 것을 어린 왕자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영리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오밥나무도 크기 전에는 조그마할 거 아냐?”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대목이다. 어린 왕자의 현명한 견해를 국가의 역사에 대입해보자. 어느 나라나 출발점은 조그마한 촌락이었고 건국자는 그 촌락의 족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기 나라의 역사에만 시선을 집중하면 그 당연한 사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기 나라가 처음부터 바오밥나무였던 것으로 착각하며, 건국자도 처음부터 영웅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역사를 서술할 때 흔히 범하는 범주착오의 오류다.

날 때부터 어른이었던 사람은 없듯이 문명이 탄생한 이후 어느 사회도 완전한 고립 상태로 출발하지는 않았다. 모든 사회는 바오밥나무처럼 덩치가 큰 상태로 태어나지 못했기에 처음부터 주변과 끊임없이 크고 작은 교류를 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했다. 그래서 어느 사회도 자기완결적인 역사를 가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보면 엄밀하게 말해서 국사(國史), 즉 ‘한 나라의 역사’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역사도 가문과 혈통, 사회관계 등 복잡한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듯이 한 나라의 역사는 탄생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홀로 존재한 적이 없었고 늘 주변 지역과 국제적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국사, 즉 ‘National History’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역사라고 하면 대개 국사를 가리킨다. 역사 과목을 교과 과정의 필수로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관리들이나, 역사가 자식의 대학 입시에서 변수가 될까 봐 걱정하는 일반 시민이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역사란 곧 국사와 동의어다. 그러나 세계 대다수 나라들에서 역사란 국사가 아니라 지역사이며 더 나아가 세계사다.

국사를 과목이나 학문의 명칭으로 쓰는 나라는 무척 드물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부분의 나라들은 원래 국사가 아니라 ‘지역사’로 출발했을 뿐 아니라 현대국가 체제가 확고히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국사의 관점은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다. 역사는 문명의 탄생 이래 끊임없이 세계화돼 왔고 지금은 그 과정이 완성되는 시점이다. 그렇게 보면 국사라는 명칭은 더욱 낡은 감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역사는 로마제국과 접촉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로마는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에 살던 켈트족을 바다 건너 잉글랜드로 내몰았고 한때는 잉글랜드를 브리타니아 속주로 거느렸다.

그래서 영국의 고대사는 로마제국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로마와 접촉하면서 영국에 알파벳 문자(라틴어)가 도입됐고 5세기에는 기독교도 전래됐다. 로마를 통해 영국은 유럽문명권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탄생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홀로 존재한 적이 없었고 늘 주변 지역과 국제적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국사, 즉 ‘National History’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한 나라의 역사는 탄생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홀로 존재한 적이 없었고 늘 주변 지역과 국제적 관계를 맺어왔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국사, 즉 ‘National History’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오늘날 영국인들은 고대에 로마가 영국에 문명을 전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국의 역사 교과서는 로마의 침공을 받았을 때 저항한 고대 영국의 민족 영웅을 부각시키면서도, 역사의 여명기에 로마에서 문자와 종교를 수입했고 심지어 한동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당시에는 로마가 영국보다 문명의 빛이 더 밝았으므로 로마의 지배는 당연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고대의 영국은 지금의 영국과 달랐고 고대의 로마는 지금의 이탈리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현재의 우리나라’는 정부나 국민이나 고대에 중국으로부터 문명이 전래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가급적 숨기려 한다. 한사군이 대표적인 예다. 기원전 2세기 말에 중국의 한 제국은 고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변방 관리 정책의 일환으로 한사군을 설치했다.

하지만 우리 역사학계와 역사 교과서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하려 애쓴다. 심지어 한사군이 한반도와 무관하고 멀리 랴오둥반도(遼東半島) 인근에 존재했다거나, 설치하려는 논의만 있었을 뿐 실제로 설치되지는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웃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성장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얼핏 보면 주체적인 사고방식 같지만 실은 그 반대로 역사적 콤플렉스에 가깝다.

2000년 전의 한 제국은 지금의 중국도 아니고 당시의 고조선이 지금의 대한민국도 아니다. 그저 문명의 초창기에 서로 접촉했을 뿐이고 당시 문명의 빛이 약간 더 밝았던 지역에서 이웃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문명이 전파됐을 뿐이다.

그 고대의 접촉을 부끄럽게 여기고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태도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오류이며, 바오밥나무의 범주착오다(물론 역사를 국제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오늘날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은 다른 측면에서 비판해야 할 대상이다).

국사적 관점을 고집하면 지역사와 문명 교류의 역사를 보지 못하거나 왜곡하기 쉽다. 사실 국사적 관점의 오류는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드러난다. 알고 보면 단군신화는 대단히 특이한 건국신화다.

기독교 성서의 창세기가 대표적이지만, 세계 대다수 민족의 창조신화는 하늘과 땅을 갈라 인간 세상을 만드는 천지창조로 시작한다. 메이저 문명만이 아니라 군소 문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단군신화에는 그 과정이 없다. 단군신화의 시작은 천지창조가 아니라 단군이라는 지배자가 등장해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게 되는 과정이다(그래서 단군신화는 창조신화가 아니라 ‘건국신화’다).

우리는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여기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신화를 사실로 가정한다 해도 우리 민족의 시조는 단군이 아니라 단군의 지배를 받은 피지배 민중이다. 단군은 백성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지배자, 그것도 외부에서 온(하늘에서 내려온) 지배자였을 뿐이니까.

이처럼 다른 문명권의 창조신화와 달리 우리의 건국신화는 ‘나라’를 세우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에 바오밥나무의 범주착오를 처음부터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 폐해는 예상 외로 매우 심각하다.

이런 신화에서 출발하면 개인이나 민간 영역의 여지가 없이 국가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며, 사회의 다른 모든 부문보다 정치를 최우선으로 여기게 된다. 지배-피지배 관계가 당연시되는 것은 물론이다.

정치 권력은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처음부터 신성시되고 기존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뒤집는 혁명은 당연히 죄악시된다. 우리 역사에 지금까지도 혁명이 없었던 이유를 말해주는 한 가지 요소다.

국사적 관점을 강조하는 태도를 취할 때 가장 큰 맹점은 지역사, 즉 이웃에 관한 무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역사다. 일본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띄엄띄엄 나오는 경우도 전혀 계통성이 없다. 역사 교과서에는 고대에 한반도를 통해 철기문명이 일본 서부에 전래된 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삼국시대에 몇 차례 일본에 문물을 전한 게 언급될 뿐 이후에는 왜구가 해안에 들끓었다는 것 이외에는 일본에 관한 내용이 없다.

그러다 1000년 뒤에 갑자기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다시 우리 역사에 등장한다. 그것도 잠시일 뿐, 이후 수백 년 동안 우리 역사에는 일본이 전혀 나오지 않다가 19세기 후반에 느닷없이 인천 앞바다에 일본 군함이 나타나 강화도조약을 강요한다. 물론 그 뒤부터는 일본의 역사와 우리 역사가 긴밀하게 맞물린다.

이런 식으로 역사를 설명하면 고대에 한반도로부터 선진 문명을 전해 받은 일본이 어떻게 한반도를 대규모로 침공하게 됐는지, 그리고 임진왜란에서 승리하지 못한 일본이 어떻게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해 한반도와 중국까지 집어삼켰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국사적 관점의 한계를 넘어 일종의 역사 왜곡이다.

국사만 해도 복잡하고 어려운데, 어떻게 지역사와 세계사까지 공부하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사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바로 국사에만 편중되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모든 것은 맥락으로부터 두절되면 알기 쉬워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더 어렵고 복잡해진다. 국사라는 말을 쓰지 않는 나라들이 국사를 따로 떼어내 교육하고 학습하는 우리보다 오히려 ‘국사’ 교육을 더 철저히 할 수 있는 이유다.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 및 번역가 dimeol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