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취임했으니까 두 달 반이 지났네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두 달 사이 온라인과 메이저 경매를 치렀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경매를 진행하면서 경매가 결과지향적이면서 상당히 신나는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예술 비즈니스는 이번에 처음인데,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다행히 결과도 좋았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운 좋은 사람이 가장 경쟁력 있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거든요.(웃음)”
그간 이력을 보면 미술계와는 무관한 길을 걸어오신 듯합니다. 외국계 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셨던데요.
“대학원 졸업 후 24세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첫 직장이 도브와 폰즈로 유명한,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사인 유니레버였어요. 그 뒤 화장품회사인 로레알로 자리를 옮기면서 10년 넘게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어요.
로레알을 나온 후에는 미국계 글로벌 제약회사인 머크에서 7년 넘게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최근까지는 피자헛에서 마케팅을 담당했고요. 21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쟁이 치열하고 시장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는 분야에서만 일했어요. 영업 결과가 매일매일 나오는 회사들이어서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외국계 회사만 고집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제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만 해도 여자가 취업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대기업들도 여직원을 거의 뽑지 않았으니까요. 다행히 외국계 회사에는 취업의 기회가 있어서 발을 디뎠는데, 그 뒤 계속 외국계 회사만 다녔네요.
외국계 회사에 21년을 다니다 보니까 거기서 배운 걸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적용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때마침 K옥션에 자리가 났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이전에도 미술품에 관심이 있었나요.
“그림을 좋아한 것은 오래됐지만, 컬렉션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어요. 소장한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건 황규백 화백의 작품 정도예요. 고궁 담벼락에 핀 화사한 꽃을 그린 작품인데,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져서 친구처럼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해 제 생일에 스스로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어요.”
미술과 연관된 비즈니스를 하신 적은 없으시죠.
“2005~2006년에 비슷한 일을 했어요. 나중에 무산되기는 했지만 아트페어 관련 기획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경매회사 대표로 작가 이름을 거론하기는 좀 난처하네요. 경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작가가 좋은 작가들이에요. 경매에 나올 정도면 시장에서 검증된 분들이니까요.”
“아시는 분이 소개를 하셔서 지원하게 됐어요. K옥션이 6년 된 회사로 업계에서는 여전히 2위잖아요.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통해 업계 수위로 도약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미술계와 무관한 사람을 대표에 앉히는 게 모험이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저를 믿어준 데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니즈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생각보다 회사가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죠.
“그러네요. 1년에 메이저 경매 4번, 홍콩 경매 2번, 자선 경매 1번, 기획 경매 1번, 온라인 경매 8번을 해요. 이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니까 굉장히 다이내믹해요.
경매라는 2차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을 가진 컬렉터를 찾아야 하고, 일정에 맞춰 작품을 내놓아야 하잖아요. 굉장히 타이트한 일이죠. 그만큼 실력이 그대로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에요. 노력한 게 금방 나오는 비즈니스죠. 그런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일반 직장과 경매회사는 기업문화가 많이 다를 텐데요.
“지금까지 제가 일했던 기업과 기업문화도 다르고, 규모도 작죠. 우리 직원이 30여 명인데요, 구성원 모두가 미술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그림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좋아하니까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상당히 높아요.
경매라는 하나의 이벤트를 위해 디스플레이부터 전산, 경매까지 일관되게 진행돼야 하니까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해요. 개인 플레이로는 빛을 내기가 어려운 구조죠. A단추 누르면 Z까지 한번에 돌아가야 일이 산뜻하게 처리되는 구조를 갖고 있죠.”
회사 곳곳에 전임 대표의 색깔이 남아있을 텐데요, 2대 대표로 K옥션을 어떤 회사로 키우고 싶으세요.
“전 대표님은 미술계에 발도 넓고 일단 저랑은 많이 다른 분임을 인정해요. 설립 초기에 시장도 좋았고, 전 대표의 카리스마도 있어서 회사가 빠른 시간에 제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예전만큼 시장은 좋지 않아요. 좋은 시장의 혜택을 받던 시기는 아니죠. 지금처럼 시장이 어려울 때는 작품을 위탁 받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저만의 차별화로 조직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21년간 외국계 회사에 다니면서 배운 건 조직은 뭉칠 때 힘이 배가된다는 사실이에요. 영업도 네트워크를 뛰어넘어 프로페셔널할 때 더 잘되는 법이거든요. 사내에서는 직원들의 능력에 따른 상벌을 강화할 생각이에요.
이런 것을 통해 조직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제 목표는 2년 내에 낙찰률, 고객 평가 항목 등에서 업계 1위에 올라서는 겁니다. K옥션은 좋은 작품이 합리적 가격에 나오고, 낮은 가격에 나오더라도 경쟁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회사라는 믿음을 주는 거죠.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시장을 넓히는 게 제 목표입니다”.
“저는 소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임직원이 끊임없이 소통해야 이심전심이 되거든요. 지금까지 K옥션은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회사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취임 후 직원들과 소통을 하려고 다양한 노력을 했어요.
또 하나 취임하면서 시작한 게 ‘챔피언 제도’예요. 우리 회사에 경매 스페셜리스트가 7명이 있어요. 그들 중 한 명에게 챔피언 자리를 주고, 경매 전체를 주관하게 했어요. 이미 1년 동안 있을 경매에 챔피언을 사전에 공개했어요.
영업 회의를 할 때도 챔피언이 주재하고 낙찰과 경쟁 현황 등도 모두 챔피언에게 보고를 합니다. 경매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호칭도 챔피언이라고 불러요. 6월 메이저 경매를 하고 평가회의를 하는데 ‘챔피언이 잘 해서 성공했다’는 의견도 나왔어요.
제가 바라는 게 이런 분위기예요. 동료들끼리 칭찬도 하고 격려하는 거죠. 챔피언 제도는 외국계 회사에서 배운 소사장 제도를 K옥션에 맞게 변용한 거예요. 회장품회사인 로레알이 소사장제를 잘 활용하는 곳이었어요.
로레알에는 랑콤, 비오템, 키엘, 향수 등 4명의 소사장이 있어요. 소사장의 직급도 본부장에서 상무까지 다양했어요. 대외적으로는 4명이 협력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죠.”
방금 말씀하셨듯이 취임 후 첫 메이저 경매인 6월 경매에서 낙찰률이 다행히 높았죠.
“네. 낙찰률이 82%를 기록했으니까요. 2007년 이후 낙찰률이 80%가 넘은 건 이번에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낙찰 총액도 초기 목표인 55억 원을 넘었고요. 사전 방문객도 많았고, 현장 경쟁도 치열해서 여러 모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합니다.”
첫 메이저 경매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일 성공 요인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는데, 그래서 분석을 해봤어요. 일단 대표 작품이 좋았고 스토리가 풍부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메이저 경매에 나오는 작품이 180여 점이지만, 이번에는 161점을 냈어요.
낙찰 확률이 높은 작품으로 선별을 한 거죠. 작품 중에는 1억 원이 넘는 김환기 선생의 작품이 14점이나 있었어요. 그중에는 50년 동안 출품된 적이 없는 <창공을 날으는 새>도 있었어요.
외국 작품으로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창공을 날으는 새>가 눈에 띄더군요. 어떻게 경매에 나오게 됐나요.
“정말 우연이었어요. 저희와 거래가 전혀 없던 고객이었는데, 회사 대표 이메일로 경매를 의뢰해 왔어요. 작품 사진을 보고 바로 연락을 했죠. 50년 전에 장인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작품인데, 그동안 부엌 한쪽 벽에 걸어놨던 작품이더라고요.
얘기를 듣자마자 소장자를 찾아가서 작품을 받아왔죠. 그분을 보면서 그간 K옥션이 쌓아온 인지도와 영향력이 적지 않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경매시장의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미술시장은 고객층이 매우 얕잖아요. 그분처럼 한두 점을 갖고 계신 분이 ‘짠’ 하고 좋은 작품을 내놓으면 저희 입장에서는 희열을 느끼게 되는 거죠.”
첫 경매에는 성공했지만 앞길이 탄탄하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 실물경제 등 대부분이 불황에서 회복됐지만, 미술계는 여전히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요.
“국민 정서가 ‘미술품은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사치품은 곧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갤러리를 둘러싼 좋지 않은 일들이 미술시장 전반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온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미술품이라고 모두 비싼 것은 아니에요. 김종학 선생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비싸지만 판화는 50만 원에도 구할 수 있거든요. 50만 원짜리 옷은 선뜻 사도 그 돈을 주고 미술품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경기 상황에 아주 예민해요. 그런 점에서 미술시장이 안 좋은 지금이 경매회사의 역할이 중요한 때죠. 경매는 갤러리를 통해 미술품을 산 컬렉터들이 작품을 바꾸고 싶은 때 내놓는 2차 시장이잖아요.
보다 싸게 작품을 구입할 수 있고,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옥션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미술품의 대중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장기적으로 K옥션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계획이십니까.
“대표로 취임하면서 비전 스테이트먼트를 ‘K옥션은 고객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제1위 명문 옥션 파트너다’라고 했어요. K옥션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내실이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요. 지난 6년간 쌓은 노하우를 응축해서 K옥션이 한 단계 레벨업 할 수 있게 만들 겁니다.
6가지 세부 목표도 세웠어요. 첫째, 직원들이 행복하고 미술계 인재들이 오고 싶은 회사, 둘째,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원활한 프로세스, 셋째, 전문적인 스킬과 영업력 확보, 넷째, 미술품 외 럭셔리 제품으로 경매분야 확장, 다섯째, 브랜드 가치 제고, 마지막으로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한 영업입니다. 이 6가지 목표만 달성하면 업계 1위는 자연히 달성되지 않을까요.”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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