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Timeless Classic Suit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영국 윌리엄 왕자의 로열 웨딩은 이벤트 그자체로서도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지만, 로열 웨딩에 참여한 브랜드 각각을 스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영국 로열패밀리의 예복을 준비한 장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머니는 창간 6주년 기념 스페셜 피처로 영국 런던 새빌로(Savile Row) 현지를 속속들이 소개한다. 진정한 핸드메이드 남성복의 본고장, 그 헤리티지와오늘의 모습을 공개한다.
런던의 럭셔리 쇼핑가인 ‘본드 스트리트(Bond Street)’와 세계적인 브랜드가 입지한 ‘리젠트 스트리트(Regent Street)’ 사이에 위치한 작은 거리 새빌로. 새빌로에는 화려한 매장도 없고, 특별한 이정표도 없다.

조용한 거리라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가 바로 지난 20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핸드메이드 슈트를 만들고 있는 세계적인 남성복 거리다.
셀러브리티·로열패밀리들이 단골

새빌로는 역대 영국 왕들의 대관식 의상을 제작한 것은 물론 넬슨 제독의 군복, 처칠 수상의 슈트를 비롯해 나폴레옹도 옷을 주문했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이 깊다. 요즘은 찰스 황태자나 윌리엄 왕자 등 로열패밀리는 물론 세계적인 정치인들, 성공한 국제 재무 전문가, 법조인은 물론 데이비드 베컴이나 주드 로, 마이클 더글라스 같은 셀러브리티들이 글로벌 럭셔리 남성복을 마다하고 ‘소박한’ 거리 새빌로의 테일러들을 찾고 있다.

물론 서너 번의 가봉을 거치며 3개월이나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세계 최고 퀄리티의 슈트를 원하는 고객들이 몰린다. 약 530만 원부터 시작하는 새빌로 맞춤 슈트는 고가에 속하지만 평생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맞춤복 애호가들의 의견. 이제 남성들에게는 옷을 잘 입는 것이 필수요건이요, 즐거움인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도 옷을 맞추는 영국 남성복의 ‘헤리티지’

새빌로의 역사는 17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런던의 중심이자 버킹엄 궁전에 인접한 세인트 제임스(St. James) 지역에는 젠틀맨 클럽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에게 구두와 옷을 제공하기 위해서 근처에 입지했던 것이 메이페어(Mayfair) 지역의 레더 슈즈와 새빌로의 테일러다.

특히 대영제국의 군복 제작은 새빌로 테일러들에게 끊임없이 일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고, 그 덕분에 테일러링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게 됐다. ‘비스포크협회(Savile Row Bespoke: 새빌로의 맞춤 기술을 유지, 발전하고자 조성된 단체)’의 회장인 마크 헨더슨(Mark Henderson)은 영국 해군의 유니폼을 직접 보여주면서 군복이 현대의 블레이저로 변화, 탄생된 과정을 소상히 설명한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를 전후한 유럽의 경제·사회 상황을 보면 프랑스에서 살롱 문화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드레스를 만드는 오트 쿠튀르가 발전한 것에 반해, 영국에서는 은행과 의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젠틀맨 클럽이 성행했고 멋지게 입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됐다.

댄디가 나올 정도로 영국에서는 신사복 차림(gentlemen’s attire)이 발전했고 새빌로 테일러링은 세계 신사복의 중심으로 남성복 스타일의 메카가 됐다. 캘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 발렌티노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도 새빌로에서 옷을 주문한다.

얼마 전 남성복을 론칭한 톰포드가 런던에 디자인 팀을 갖추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새빌로의 전통은 현대 남성복의 ‘정신(spirit)’이랄 수 있다.
‘부’·‘파워’·‘성공’을 상징하는 새빌로 슈트

약 100여 개의 테일러가 밀집한 새빌로 지역에는 300년의 역사를 가진 테일러에서부터 최근 몇 년 사이에 오픈한 곳까지 다양한 매장에서 기성복과 주문복을 만날 수 있다. 테일러별로 슈트의 라인이 다소 다르지만 공통점은 특유의 절제된 분위기의 클래식하고 품위 있는 슈트라는 사실이다.

국가 정상이 공식석상에서 입는 옷이나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AGM(Annual General Meeting: 주식 총회)에서 입고 나오는 슈트, 주요 청문회 때 변호사가 입는 옷, 성공한 금융가가 미팅할 때 입는 옷의 최고 버전이 바로 새빌로 슈트다.

얼마 전 개봉된 영화 <월스트리트 2>(Wall Street 2: Money Never Sleeps)’에서도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가 젊은 펀드 애널리스트인 무어(샤이아 라보프)에게 새빌로에서 슈트를 맞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새빌로 슈트는 부와 파워, 성공을 상징한다. 새빌로 슈트는 남성들에게 고급 작업복(?)인 셈.

지난해 영국 총선 때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당수인 고든 브라운과 데이비드 캐머런이 모두 ‘기브스 앤드 호크스(Gieves & Hawkes)’에서 슈트를 주문했는데, 두 사람의 정치적인 색과 전략은 달라도 슈트 하나만큼은 ‘새빌로’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본 셈이다.
700년 전통 고수, 10명이 60시간 작업해야 한 벌 완성

새빌로에서 슈트를 만드는 테일러들은 약 5~10년(재킷 5년, 바지 5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단추와 재봉실을 정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실제로 옷을 만지게 되면 단춧구멍 스티치부터 수백년을 내려온 테일러링 기술을 마스터하게 된다.

특히 새빌로 테일러링의 백미인 맞춤복(bespoke·비스포크) 슈트는 가장 비싸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100% 핸드메이드로 만들어지는 최상급 기술과 퀄리티를 자랑한다.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운 어깨, 등, 소매는 물론 바지의 솔기까지도 전부 손바느질로 제작되는 비스포크 슈트는 10명의 인원이 60시간의 작업을 거쳐야 얻어지는 옷이다.

숙련된 코트 메이커(coat make: 코트와 재킷만 제작)도 한 달에 만들 수 있는 슈트가 두 벌 반 정도에 그칠 정도로 그 과정은 어렵고 가치는 상당하다.

비스포크 vs MTM 주문복
남성복 슈트는 크게 기성복(비즈니스 슈트의 경우 약 180만 원 미만)과 주문복으로 구분한다. 주문복은 그 난이도와 가격에 따라 ‘MTM(made-to-measure·180만~260만 원)’과 ‘비스포크(620만~700만 원)’ 두 종류로 나뉜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고객 개인의 신체 치수를 기반으로 제작한 패턴으로 핸드메이드(비스포크)로 만드느냐와 표준 패턴을 수정해서 공장 생산(MTM) 하느냐다.

일반적으로 유명 디자인 하우스의 주문복은 MTM이다. 비스포크 슈트는 25~30개 항목에 이르는 고객 신체 사이즈를 바탕으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테일러가 패턴을 만들고 2번에서 4번의 보정을 통해 손바느질로 제작한다.

따라서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서 일상생활 용도로는 MTM 슈트가 애용되는데 이는 기성복과 비스포크를 믹스한 버전으로 스타일과 패턴을 고객의 체형에 가장 잘 맞도록 10~15개 사이즈를 도입해서 제작하게 된다. 보통은 샘플 슈트를 입고 수정하게 되고, 보정은 없다.

비스포크는 약 1만 여 개의 소재 샘플 중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가격은 일반적으로 약 530만 원에서 시작하지만 캐시미어 소재의 경우는 3500만 원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뉴욕, 파리, 아랍 부호에 이어 최근 중국 부호들도 ‘단골’

해외에 있는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로 새빌로 테일러들은 1년에 3~4회에 뉴욕, 파리, 아랍 지역을 방문해 주요 고객의 주문을 받는데, 최근에는 중국을 방문하는 테일러가 있을 정도로 중국 기업가들의 새빌로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중국의 한 고객은 보정을 위해 자신을 방문하는 테일러에게 비행기 일등석 표를 보내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런던에 출장 오는 고객이 많아서 주문을 받거나 보정을 위해서 고객이 묵는 호텔로 출장을 가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고객 미팅은 새빌로 숍의 미팅룸에서 이루어진다.
우선 커터(cutter: 최고의 프로페셔널 테일러)가 고객을 만나서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과 원단 등에 대해서 상담하게 된다. 이때 테일러별로 다르지만 고객은 약 1만여 가지 이상의 소재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치수를 재게 되면 커터는 패턴을 만든다.

전통적으로 얇은 카드로 된 브라운 색의 종이에 초크로 패턴을 만들게 된다. 테일러들은 최고의 피트를 위해서 약 3번의 보정을 하게 된다. 물론 체형과 스타일에 따라 횟수는 4번으로 늘어나기도 하고, 평균 체형의 해외 고객일 때는 편의를 위해 한 번의 보정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코트 메이커 한 사람이 하나의 슈트 재킷을 책임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메이드로 만들고, 바지 메이커는 바지를 수공예로 만든다. 공장에서 한 사람은 솔기만 박고 한 사람은 소매만 만드는 라인 생산과는 아주 다른 방법인 셈이다. 결국 마감하는 사람이 단춧구멍을 만들면 슈트는 끝나게 되는데, 여기까지 총 8~12주 정도가 소요된다.

불경기에 오히려 매출에 날개 단 새빌로 비즈니스

비스포크협회의 10개 테일러가 1년에 생산하는 비스포크 슈트는 약 1만 여 벌로 항상 6개월 치의 주문이 밀려 있다고 한다. 특히 불경기의 막바지에 소비자 자신감이 뚝 떨어져 리테일 업계가 고전하는 마당에 비스포크 비즈니스는 약 20%나 성장해 가장 좋은 시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자인 하우스의 기성복 남성복에 비해 약 50% 이상 더 비싸지만 고객이 직접 소재를 고르고 스타일을 결정해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탄생되는 비스포크 남성복은 분명 매력이 있음에 틀림없다.

럭셔리 하우스가 마케팅과 화려한 매장으로 어필한다면 새빌로 테일러는 아직도 작고 소박한 매장에서 ‘헤리티지’를 ‘무기’로 한 숙련된 기술의 맨파워를 셀링 포인트로 삼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테일러링의 매력을 새로 발견하면서 새빌로 슈트를 입는 것은 답답한 전통의 답습이 아니라 가장 쿨한 남성용 럭셔리의 상징이 되고 있다.

[Mini interview] 마크 헨더슨 비스포크협회 회장

새빌로 비스포크란 어떤 조직인가.

“지난 2004년 새빌로의 테일러링 기술을 보호하고 개발하기 위해 결성된 새빌로 커뮤니티다. 현재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가장 독점적인 10개 테일러를 멤버로, 이들은 모두 새빌로의 비스포크 핸드메이드 테일러링의 기준에 따라 하이 스탠더드 테일러링을 제공한다. 특히 트레이닝 제도를 만들어서 미래의 테일러를 육성하고 있다. 멤버들은 ‘새빌로 비스포크’라는 라벨을 옷에 부착해 그 퀄리티를 증명한다.”

새빌로는 왜 특별한가.

“해군 군복은 물론 역대 왕의 대관식 예복, 로열패밀리의 슈트 등 지난 200여 년 동안 한 장소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옷을 제작했다. 새빌로 주변의 100여 개 테일러들은 모두 지난 14세기부터 내려오는 테일러링의 방법을 토대로 하고 있다. 21세기에 이러한 헤리티지가 유지되는 데다가 가장 멋진 차림의 고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새빌로를 방문한다.”

남성복에서 새빌로의 의미는 무엇인가.

“영국에서 남성복 스타일이 발전했고, 새빌로는 그 역사적인 변화를 체험한 현장이다. 영국 역사에는 3명의 스타일 아이콘이 있는데 이들의 아이디어가 남성복의 현대화에 기여했다. 19세기 말, 에드워드 7세 국왕은 길이가 긴 재킷(tail coat)을 의자에 앉기 쉽게 길이를 짧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현대 슈트의 시작인 ‘디너 재킷’이다.

또한 보 브루멜(Beau Brumell)은 남성복을 단순화시킨 주인공으로 실크 대신 울로 슈트를 만들었고 최초로 재킷과 바지를 같은 원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20세기의 윈저 공작은 실크 행커치프를 꽂는 등 엘리건스한 잉글리시 룩을 만들었다. 이렇게 남성복은 스타일과 기술의 측면에서 모두 영국, 새빌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해외 고객을 위해 출장을 가기도 하나.

“현재 ‘기브스 앤드 호크스(마크 헨더슨은 기브스 앤드 호크스의 부회장)’는 연간 2~3회 미국을 방문하고, 중국은 4차례 방문해 코어 고객의 비스포크를 진행한다. 그 외의 지역은 특별한 경우에만 출장을 가게 되는데 예를 들면 워드롭(wardrobe)을 주문하는 경우다. 워드롭은 약 6벌 이상의 비스포크 슈트를 오더하는 것을 말한다.”

비스포크 테일러링은 과연 타임리스인가.

“재킷과 바지 모두 솔기의 여유를 2인치로 한다. 그 정도면 체형이 변해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잠재 고객을 위한 스타일 어드바이스는.

“원버튼 슈트가 엘리건스하다. 나도 원버튼 슈트를 즐겨 입는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버튼의 위치가 정확히 허리선에 오도록 해야 하므로 만들기는 매우 까다롭다. 이탈리안 슈트는 버튼을 높은 위치로 올려 달아서 단추를 채웠을 때 슬림해 보이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배가 나온 체형은 금방 표시가 나는 것이 단점이다.”


[Carreducker] 새빌로에서 엿본 수제 구두의 세계, 카레더커
지난 2004년 론칭한 비스포크 슈즈 메이커인 ‘카레더커(Carre- ducker)’는 전 과정을 핸드메이드로 운영하는 말 그대로 수제 구두다. 세계적인 구두 브랜드인 존롭에서 4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친 두 명의 젊은이가 운영한다.

지난 11월 오픈했다는 ‘기브스 앤드 호크스’ 매장 내의 숍 인 숍에서는 제임스 더커(사진)가 워크숍으로 구두를 만들고 있었는데 벽에는 다양한 사이즈의 나무로 된 구두 라스트(구두를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 형태)가 걸려있고 구두를 꿰매는 실, 연장들이 넘쳤다. 더커는 자신처럼 발의 크기가 양쪽이 다를 경우 비스포크는 정말로 좋은 해결책이라면서 핸드메이드의 과정을 하나 하나 설명했다.

우선 고객을 만나면 디자인에 대해서 상의하고 합의에 이르면 신발 치수를 잰다. 다음 나무로 된 라스트(last)를 만들고 구두의 윗부분(upper)만을 제작한다. 보통 2번의 보정을 거쳐 완벽한 피트를 만든다. 그런 다음 구두를 창에 꿰매고 접착제로 붙여서 마감하는데, 말은 쉬워 보이지만 총 50시간의 수작업이 필요한 지난한 과정이다.

카레더커 송아지 가죽 구두는 약 470만 원에서 시작하는데, 악어가죽 소재의 경우 880만 원을 육박한다. 첫 오더는 약 6개월이 소요된다. 두 번째 주문부터는 시간도 단축되고 직접 매장에 오지 않아도 이메일로 디자인을 선택하고 가죽 스와치를 송부하는 등 장거리 오더를 진행하기도 한다.
기획 장헌주 기자 글·사진 정해순 프리랜서 haesoon@styleintelligen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