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대기업 오너 중에 대외 활동이나 언론과의 접촉에 적극적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너가 소위 ‘재벌 2~3세’인 경우에는 더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누구는 ‘말주변이 없다’는 걸 이유로 내걸고, 다른 사람은 ‘내성적인 성격’을 탓한다.

괜히 나섰다가 ‘말실수’에 휘말리느니 홍보실을 통해 ‘정제된’ 언어로 외부에 알려지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론에 나서기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오너도 있을 테고.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43)의 ‘소통 스타일’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그는 신세계의 주요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물론 언론과의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는다. 올 초 열린 신세계 주주총회에서는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직접 회의를 주관하기도 했다.

고객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주요 무대는 트위터. 정 부회장은 11만 명에 달하는 팔로워를 가진 ‘트위터 스타’다. 그의 트위터 계정은 신세계와 이마트에 대해 고객들이 쏟아내는 제안을 접수하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이처럼 외부 활동에 적극적인 것은 그만큼 업무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17년 차 신세계맨’으로 일하면서 유통업 전반에 대한 ‘내공’을 쌓을 만큼 쌓았다는 것.

증여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잡음’이 없었던 것도 그의 활발한 대외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2006년 아버지로부터 신세계 지분 4.46%를 넘겨받으면서 2200억 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고스란히 낸 덕분이다. 정 부회장의 신세계 지분은 7.32%로 어머니 이 명희 회장(17.3%)에 이은 2대 주주다.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실력도 일단 검증받은 상태다. 정 부회장이 신세계 CEO로 부임한 시점은 2009년 12월. 그가 온전히 1년 동안 경영을 맡은 2010년 매출은 2009년에 비해 10.2% 늘었고, 영업이익은 8% 증가했다.

그가 주창한 ‘상시 저가’ 전략 덕에 이마트는 대형 마트 1위 자리를 한층 굳건하게 지켰고, 신세계백화점은 ‘지역 1번점’ 전략에 따라 출점 지역의 1등 백화점으로 차례차례 올라서고 있다. 정 부회장이 재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이유다.

엘리트 코스 밟은 삼성가(家) 3세

정 부회장은 그야말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외할아버지’이니 말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병철 회장의 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며, 아버지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1980년대 삼성전자 사장을 역임한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삼성가 3세’답게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경복고를 나와 1987년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입학한 뒤 1학년만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동부 명문인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국내 대학에서 먼저 인문학을 공부한 뒤 해외에서 경제, 경영 등 실용학문을 접하는 삼성가 특유의 교육 코스를 밞은 것이다.

1994년 귀국한 뒤 일본 회사 시스템을 경험해 보라는 이명희 회장의 조언에 따라 후지쓰코리아 유통사업부에서 1년간 일했다. 정 부회장이 정보기술(IT)에 밝은 것은 이때의 경험 덕분이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경쟁업체보다 앞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유통업에 접목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신세계에는 1995년에 합류했다. ‘신세계그룹의 후계자’였던 만큼 경영 수업은 입사와 함께 시작됐다. 스승은 이명희 회장과 구학서 회장이었다. 1997년 초까지 도쿄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유통 선진국인 일본을 체험한 뒤 신세계 기획조정실 그룹 총괄 담당 상무로 국내에 들어왔다.

정 부회장은 그룹 전반의 업무를 배우는 시기에도 수시로 일본의 대형 유통업체를 찾아가 매장 진열과 인테리어, 신선식품 개발·관리 기법 등을 배웠다.

2006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무대를 세계 전역으로 넓혔다. 유통 강국인 미국과 유럽의 선진 유통 매장을 돌며 그들의 ‘노하우’를 한국에 들여왔다. 정 부회장의 해외 유통매장 탐방은 2009년 12월 대표이사가 된 뒤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우람한 근육, 부드러운 말투

소위 ‘재벌 3세’라는 선입견을 없앤 다음 정 부회장을 바라보면 그의 다른 모습이 읽힌다. 정 부회장은 강렬한 첫인상을 가진 사람이다. 외모부터 그렇다. 그의 상체는 우람하다 못해 터질 것처럼 보인다.

“‘큰 가슴’ 때문에 한국에서 나오는 기성복 셔츠 중에는 맞는 게 없다”고 본인 스스로 말할 정도다. 2004년 의사의 권유로 시작했다는 웨이트 트레이닝 덕분에 ‘역삼각형 몸매’를 갖게 됐다고 한다.

말투나 태도도 인상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정 부회장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왕자처럼 모셨을 테니 십중팔구 건방지겠지’란 선입견을 갖지만, 주변의 평가는 정반대다. 우람한 체구와 달리 말투도 부드럽고, 논리도 명쾌하다는 이유에서다.

신입사원에게도 경어를 쓸 만큼 예의도 바르고, 임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정도로 소탈한 모습도 자주 보인다고. 두 자녀와 함께 한 달에 1~2차례 중증 장애아동 시설을 방문해 아이들의 친구가 돼주는 ‘따뜻한’ 마음도 가졌다. 인터뷰와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지켜본 정 부회장의 모습은 주변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의 바른 데다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 덕분인지 정 부회장은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사촌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경복고 동창이자 서울대 87학번 동기로 수시로 만나는 사이다. 브라운대 동문인 최재원 SK 수석 부회장과 김준 경방 사장, 조현상 효성 전무 등과도 가깝게 지낸다.

백화점업계의 라이벌인 현대백화점의 정지선 회장은 경복고 4년 후배이자 정 부회장의 매제인 문성욱 신세계I&C 부사장(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남편)의 친구이기도 해 한층 친분이 두텁다.

정지선 부회장은 정 회장과 함께 이따금 신동빈 롯데 회장과 만나 한국의 유통산업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등은 정 부회장의 ‘트위터 지기’로 꼽힌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유통 전문가

정 부회장은 ‘몸으로 뛰는’ CEO다. 새로 문을 여는 점포는 어김없이 방문할 뿐 아니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점포를 들른다. 현장에서 습득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나 소비 트렌드만큼 중요한 정보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간편가정식(HMR)이 대표적인 예. 정 부회장은 이마트 성수동 본사에 ‘테이스트 키친’을 마련, 일주일에 한 번씩 모든 개발상품을 시식하며 조언한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외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회장을 꼽는다.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가 미래라고 판단한 혜안과 끝내 ‘반도체 왕국’의 기반을 닦아낸 열정과 추진력은 그가 할아버지에게서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덕목이다.

당시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가 새롭게 도전할 ‘신세계’였다면, 정 부회장에게는 ‘다양한 업태 개발’과 ‘글로벌’이 도전 분야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이마트 용인구성점을 ‘이마트 트레이더스’로 전환하며 자영업자들을 겨냥한 창고형 할인점 사업에 뛰어든 데 이어 중소 슈퍼마켓에 각종 상품을 전달해주는 ‘상품공급업’ 사업도 시작했다. 백화점 부문에선 대전, 대구, 안성에 백화점을 포함한 대규모 복합 쇼핑시설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부문에서 정 부회장이 관심을 쏟는 지역은 중국과 베트남이다. 중국에선 기존 사업을 하루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베트남에선 좋은 현지 파트너를 만나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는 업태가 다른 만큼 분리하는 게 맞다”며 최근 신세계를 백화점 부문과 이마트 부문으로 나눈 정 부회장. 그의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