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의 유통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네고시앙(Negociant)이다. 프랑스어로 도매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네고시앙은 샤토(Chateaux) 등 생산자들이 만든 와인을 프랑스 국내의 와인 도매상에게 넘기거나, 해외의 와인 수입업자에게 넘기는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다른 네고시앙에게 와인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직적 통합이 이루어져 샤토를 매입해 직접 와인 생산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이 있다.
[와인 재테크] 네고시앙의 역할
중개업과 도매업이 혼재된 개념

네고시앙의 역할을 정리해 보면 첫째, 다양한 샤토의 와인을 대량으로 구입한 후 적당한 마진을 두고 판매하는 중개업, 둘째, 와인시장의 정보를 공유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정보 유통, 셋째, 자체 브랜드로 직접 재배 및 병입까지 담당하는 생산, 넷째, 소규모 와인 생산자를 위한 병입부터 포장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설비를 대여하는 아웃소싱(outsourcing), 다섯째, 와인 저장창고(cave or chai)를 대여하고 와인관리 업무도 담당하는 창고 대여 등이 있다. 이외에 각국 유통업체와의 연결 업무 및 수출대행업도 담당한다.
[와인 재테크] 네고시앙의 역할
네고시앙은 취급하는 와인에 따라 분류하는데 그러려면 우선 와인의 종류를 알아봐야 한다. 와인은 가격에 따라 50달러가 넘는 아이콘급 와인, 10~50달러 사이의 프리미엄급 와인, 5~10달러의 베이식급 와인, 5달러 미만의 매스마켓용 와인으로 분류된다. 네고시앙은 이런 가격대를 다 커버하는 대형 네고시앙과 특정 가격대만을 커버하는 전문 네고시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와인의 생산 전체를 단계별로 구분할 때 각 단계별로 커버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는데 이를 두고도 네고시앙을 분류할 수 있다.

와인의 밸류 체인을 살펴보면 밸류 체인상에서 유통(distribution)에 해당하는 중개, 무역, 도매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전통적인 네고시앙이 있고, 최근 규모를 확대하면서 밸류 체인 전체를 커버하는 네고시앙들도 생겨나고 있다.

즉, 샤토를 매입해 직접 포도밭을 가꾸고, 포도를 재배해 자신만의 공장에서 와인을 제조, 병입하며, 자신들이 구축한 유통채널을 통해 프랑스 국내는 물론이고, 유럽연합(EU) 전체 더 나아가 전 세계로 와인을 수출하고, 해당 국가의 유통채널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네고시앙이 생겨나고 있다.

와인 취급 금액대로 분류를 해보면 원화 기준으로 5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보이는 대형 네고시앙, 5억~500억 원 미만의 매출을 보이는 중형 네고시앙, 5억 원 미만의 매출을 보이는 소형 네고시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형 네고시앙은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춘 생산공장 중심형 네고시앙이 많다. 이들은 상위 10%에 해당하는 네고시앙들이다. 중형 네고시앙은 생산라인을 갖추었지만 중개나 수출 중심의 영업을 하는 네고시앙으로 전체의 60%가량이 여기에 속한다. 나머지는 단순 수출 및 중개 중심의 네고시앙으로 하위 30%를 차지한다.
[와인 재테크] 네고시앙의 역할
400여 개 네고시앙 중 고급 와인만 취급하는 곳도 다수

현재 프랑스 보르도에는 약 400여 개의 네고시앙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고급 와인을 취급하는 대형 네고시앙은 빌라 디 크뤼(Villa des Crus), 조앤(Joanne), 발랑드 앤드 메네르트(Balland & Meneret), 데카스 페르 앤드 피스(Descas Pere & Fils), 와인 머천트(Wine Merchant), 퀴벨리에(Cuvelier), 뒤부아(Dubois)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이한 네고시앙이 바로 조앤이다. 이곳은 취급하는 와인의 방대함은 물론 보관시설도 보르도에서 가장 특별하다. 보통 와인을 저장하는 공간은 샤토 지하의 오크통이 즐비한 저장고를 연상하기 쉬운데 이런 데는 숙성 중인 와인을 보관하는 곳이고, 네고시앙의 저장고는 병입이 완료된 와인을 보관해야 되기 때문에 박스 포장된 상태로 보관하기 위해 일반 창고와 비슷한 형태로 랙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조앤의 저장창고 역시 현대식 창고로 지어져 있어 환기, 온도,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더해서 내부에 아름다운 대형 사진을 전시해놓았다. 와인저장고가 아니라 예술품 전시실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보르도의 다른 창고들과는 달리 내부공간이 더할 수 없이 깨끗하다는 점이었다.

사진을 걸어놓은 이유며, 창고를 깨끗이 관리하는 이유에 대해 조앤의 피에르 카스테자(Pierre Casteja) 대표에게 물어보았더니, 창고를 예술품 전시실처럼 관리해야 이곳에 저장된 와인이 예술품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종업원들도 알게 될 것 같아서 그리 했노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창고 내부가 깨끗한 것은 덤으로 얻은 결과인데 예술품을 전시하는 곳과 같은 수준의 공간이기 때문에 종업원들이 청결에 항상 신경을 쓰더라고 말했다.

조앤의 창고는 예술품인 고급 와인이 숙성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모든 종업원이 공감하고 이에 걸맞게 유지,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저장창고가 이런 수준에서 관리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관리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

가스테자 대표는 보르도의 소위 ‘빅맨(Big Man)’으로 통하는 사람이며, 지방귀족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고객에게 베푸는 최고의 호의는 자신의 집으로 저녁만찬을 초대하는 것이다.

프랑스 귀족의 저녁만찬은 보통 8시쯤 시작되는데 1시간가량 거실에서 샴페인과 함께 간단한 다과를 먹고, 식당으로 옮겨 최소 5접시 정도의 정찬을 하게 된다. 이때는 보르도의 최고 등급 와인을 함께 곁들인다.

이렇게 식사가 끝나면 디저트와 함께 스위트 와인을 마시고, 맨 마지막으로는 소화를 돕기 위한 코냑이나 알마냑을 한 잔 하게 된다. 식사 중에 좋은 와인을 내놓을수록, 그리고 맨 마지막에 오래된 알마냑을 내놓을수록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했다고 볼 수 있다. 만찬은 시가를 한 대 피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렇게 다 마치고 나면 보통 새벽 1시가 된다.

네고시앙의 손님 접대는 이렇게 다음날 새벽에 끝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기업 접대 문화와 소요되는 시간에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은 옮겨 다니며 차수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것 뿐!

김재현 SC제일은행 잠원PB센터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