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덴마크 작가 이작 디네센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프랑스 여배우 스테판 오드랑이 주연을 맡아 정치적 박해를 피해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의 외딴 곳으로 망명한 파리 출신의 요리사 바베트 역을 충실히 해냈다.
금욕적인 공동체의 회색빛 그늘을 걷어내고 리큐어, 아몬틸라도(Amontillado)와 1870년 빈티지의 샴페인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12세기 시토회 수도원의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통해 환하게 피어나는 치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요리의 과정을 촘촘히 그려 내고 드디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관객마저 감동의 치유를 경험케 한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중국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康熙帝)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 같은 만찬을 즐겼다. 만주족의 음식과 한족의 음식을 세팅한 ‘만한전석(滿漢全席)’이 그것이다. 소수의 지배세력으로 거대한 중국을 통치하는 데 한계를 느낀 만주족 출신의 황제로서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한족과의 화합을 이끌어낸 우아한 식사였다.
청나라는 이 위대한 식탁을 통해 융성의 기틀을 만들어낸 것이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루이 14세에 의해 시작된 식사, 즉 그랑 쿠베르가 전개방식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만한전석과 같은 의미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당시 베르사유에서는 정찬과 만찬 모두를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먹었다. 바로 이것이 ‘오 그랑 쿠베르(au grand couvert)’다. 쿠베르란 요리가 식지 않도록 덮어둔다는 뜻이었지만 오늘날 음식의 배치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은 식습관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행위와 욕구를 새롭게 정의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시대가 열리면서 식사는 과거의 화려한 의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됐다. 1789년 7월 바스티유 습격이 있은 후 샤를 드 빌레트 후작은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함으로써 박애라는 새로운 이상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제안하며 “국민 모두가 그랑 쿠베르(왕의 만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스티유 함락 1주년 기념일에는 원형 광장에서 국민의회 의원들이 2000여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라를 위한 식사’를 했으며, 라파예트 장군은 축제에 참가한 지방 사람들을 뮈에트 공원의 나무 아래 마련한 ‘끝이 보이지 않는 식탁’으로 초대했다.
이때 남은 음식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줬다. 빌레트 후작이 생각해낸 형제의 연회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같은 ‘정치적 반합(飯哈)’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광경보다 시민의 결속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에서 가장 후회한 일은 시민과 쿠베르를 나누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우아한 디자인의 커틀러리 등장
혁명 이후 계급에 따라 음식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 사회적 야망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연회란 철옹성 같은 부르주아 계급에 입성하는 허가증에 비견됐고 신분 상승을 노리는 자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출입문 구실을 했다.
그 사회의 기존 구성원들은 자기들의 우월성을 나타낼 행동 수칙을 강화하거나 신참자가 따라잡기 힘들도록 일부러 더 까다롭게 만들어 배타성을 키워나갔다. 이와 함께 에티켓 관련 서적이 다량 등장하게 됐다.
이는 궁극적으로 요리를 관장하고 사교생활 전반을 주관한 여성들의 두드러진 역할이 신장되는 기회가 됐을 뿐 아니라 패션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프랑스는 17세기에 많은 여성 소설가가 등장했고,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이혼법을 도입하는 등 양성평등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게 됐다.
프랑스 식탁에 처음으로 포크와 나이프가 사용된 것은 카트린의 공이다. 카트린 이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귀족들은 스테이크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 가운데 접시를 중심으로 나이프와 포크가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 나이프는 오른손으로, 포크는 왼손으로 잡으면 된다. 양식에서의 나이프와 포크는 하나만 계속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에 따라 각각 다른 것을 사용한다.
나이프, 포크, 스푼 등의 커틀러리는 은제품의 고급품을 테이블에서 5~6cm 올라간 지점에 놓는다. 글라스는 정교하게 커팅된 상품의 크리스털을 접시 위 오른쪽 위치에서 바깥쪽으로 백포도주, 적포도주, 고블렛 또는 샴페인 글라스 순으로 일직선이 되게 놓는다. 이처럼 클래식한 테이블 세팅은 모든 테이블 웨어를 최상급의 고급스러운 것만 사용하므로 아침식사에는 어울리지 않고, 정식 디너나 격조 있는 만찬에 세팅해야 적합하다.
식탁용 나이프의 종류와 스푼의 유래
식탁용 나이프에는 테이블 나이프(대형으로 육류 요리용), 디저트 나이프(중형), 프루트 나이프(과일용), 피시 나이프(생선 요리용으로 장식적인 무늬를 넣어 은도금한 것), 스테이크 나이프(고기구이용으로 끝이 뾰족하고 뿔이나 뼈 손잡이로 된 것이 많음), 치즈 나이프(치즈가 붙지 않게 날이 오톨도톨하게 돼 있음), 버터 나이프(날과 손잡이의 접속 부분이 굽었음), 토마토 나이프(날이 톱날처럼 돼 있음), 그레이프프루트 나이프(양 날이 톱날처럼 돼 있음) 등이 있다.
요리를 찌르거나 누르는 데 쓰인다. 사용 초기 포크는 이탈리아인들로부터 고상한 체하고 점잔 빼는 도구라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기도 했으며, 무대에서 코미디의 소재로 취급됐다. 서양의 식사예법에는 오늘날에도 손으로 집어서 먹는 것(주로 채소와 과일)이 있어서 그것을 ‘핑거 푸드’라 하고, 그에 비해 포크를 사용하는 것을 ‘포크 푸드’라 한다.
김재규 _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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