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전문의 홍지호
치과 의사이자 방송인으로 유명한 홍지호 박사는 부친에 이어 삼형제가 모두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의사 집안’의 막내아들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이뤄진 인터뷰는 그를 ‘스타 의사’ 대신 땀 흘리는 전문인, 가족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대한민국의 보통 아버지로 재발견하게 된 시간이었다.서울 반포동에 위치한 홍지호 치과. 진료가 끝나는 시각을 맞추려 토요일 오후 2시에 병원을 찾았지만, 끝날 것으로 예정됐던 환자 진료는 결국 3시까지 이어졌다.

막 가운을 벗어던진 그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흐르고 있었다. 방송에서 봤던 말쑥한 홍 박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오히려 신선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버지 왕진가방 들고 다니며 키운 의사의 꿈
그는 4남3녀의 대가족 속에서 막내로 자랐다. 형제 중 맏형 홍명호 씨는 가정의학과, 넷째 홍성호 씨는 성형외과 의사다.
“어렸을 땐 늘 공부만 하는 형들 때문에 집에서도 까치발을 들고 다녔어요. 큰소리로 웃지도 못했을 정도였죠. 막내로 자라서인지 저도 이젠 흰머리가 듬성듬성한데도 집안에서는 항상 어린애 취급을 받아요.(웃음)”
의사 가족들은 대체로 부친과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홍 박사의 형제들은 모두 내과 의사였던 선친과는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의사가 된 아버지는 낮이건 밤이건, 쉬는 날 없이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왕진을 다니셨어요. 아버지를 쫓아 왕진가방을 대신 들고 다니면서 막연하게 ‘나도 의사가 되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치과를 선택하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당신께서 겪었던 내과 의사의 길이 워낙에 고된 길이어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내과 전문의로 평생을 보낸 그의 부친은 간암 말기 선고를 받은 뒤에도 삶이 다하는 날까지 의술을 펼쳤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선친의 모습에서 슈바이처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고.
홍 박사의 형제들은 지금 모두 유능한 의사가 됐지만, 의대에 진학하기 전에는 전혀 다른 분야를 꿈꾸기도 했다. 맏형은 어려서부터 문학에 심취해 시인과 소설가를 지망했고, 넷째 형은 영화감독에 뜻을 두고 부친 몰래 연극영화과에 응시한 전과(?)도 있다.
홍 박사도 고교시절 친구들과 함께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었다고. 그때 미처 다 발산하지 못하고 숨겨뒀던 끼가 후에 방송 출연을 통해 드러난 셈이다.
의사인 그가 방송에 출연하게 된 데에는 별다른 계기가 없었다. 삼성의료원 과장으로 재직 중일 때 MBC-TV <타임머신>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에서 의학적인 조언자 역할을 해줄 전문의가 필요하다며 연락을 취해왔고, 그에 흔쾌히 출연을 수락한 것이 시작이었다.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얼굴이 알려지니까 병원에 환자들이 늘어나기도 하고 좋은 점이 많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눈에 띄면서 마음고생도 심했어요. ‘치과 홍보를 위해 방송에 나온다’, ‘직접 진료를 하지 않고 다른 의사가 진료한다’는 등 오해를 받기도 했거든요. 그런 오해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치과 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한 방송에만 출연할 생각입니다.”

그는 지난 2005년 모델 출신 연기자 이윤성 씨와 재혼했다. 두 사람 모두 이혼의 과정을 겪었던 터라 만남은 더 애틋했다. 큰아들에 이어 두 딸을 더 얻어 다섯 가족을 이루며 새로운 행복을 찾게 됐다.
재혼 직후에 데려온 큰아들에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엄마의 역할을 잘 해준 아내. 지금은 친 모자(母子) 이상으로 잘 지내고 있는 두 사람 모두가 고맙다. 현재 국제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큰아들이 3대를 잇는 의사의 꿈을 꾸고 있진 않을까. 그는 손사래로 먼저 반응했다.
“아니에요. 아무래도 저의 끼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제가 학창시절에 그렇게 음악이 좋더니 우리 진원이도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자기 방에서 공부할 때도 습관적으로 입으로는 비트박스를 해요.
얼마 전에는 용돈을 모아 DJ가 음악 믹싱할 때 쓰는 기계를 구입했더라고요. 모델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도 있고요. 엄마가 모델 출신이라 그쪽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알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그래, 모델해라’ 하고는 말 못하겠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내년에 진원이가 대학에 진학할 땐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하게 할 생각입니다. 어떤 분야를 선택하건 스스로 철이 들면서 정말로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부모로서의 지원만 해주면 될 것 같아서요.”
듬직한 아들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과의 순간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그는 가족여행을 자주 즐긴다. “순간을 간직하는 데 여행만한 기회가 없다”는 게 그의 귀띔. 대한민국의 보통 아버지처럼 그 역시 삶의 가치 맨 위에는 ‘가족’을 두고 있었다.
홍지호
현 홍지호 치과 원장
현 성균관대 의과대학 임상 조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 치과대학원 전문의
미국 펜실베이니아 치과대학 졸업
글 김가희 기자 holic@hankyung.com 사진 김유철(FIEST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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