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중 타라그룹 회장

국내 최대 인쇄출판기업인 타라그룹의 강경중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는 바빠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CEO는 여유를 갖고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가 하루 3시간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산에 오르는 이유다. 5년 전부터는 미술품 컬렉션에도 재미를 붙였다. ‘휴(休)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강 회장을 서울 서교동 타라 사옥에서 만났다.
[Life Balance] “대자연에 순응하며 경영의 正道 깨닫죠”
강경중 타라그룹 회장은 하루 일과를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6년 형(강영중 대교 회장), 동생(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과 함께 대교를 공동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도 30년 넘게 오전 6시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그랬다. 일찍 출근해 그날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아침체조까지 했다고 한다. 아침체조는 타라그룹만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등산학교 암벽코스까지 수료한 山사나이

타라그룹은 오전 8시면 급한 인쇄에 매달리는 현장직원을 제외한 전 직원이 20분 동안 운동을 한다. 국민체조가 됐든, 앉았다 일어서기 운동이 됐든 사업장별로 방식은 달라도 어쨌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건강체조와 함께 타라그룹의 문화가 된 것이 산행이다. 지난 2007년에는 전 직원이 총 47일간 1746km, 국토대장정을 떠나기도 했다. 3~4명의 직원들이 조를 이뤄 1박 2일씩 그의 국토대장정에 참여했다.

국토대장정은 체력 단련뿐 아니라 매출 1000억 원 달성 이후 제2의 도약을 다지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1989년 직원 5명과 인쇄기 한 대로 시작해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한 강 회장. 하지만 그는 꿈 같은 매출을 달성한 이후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몸집이 커진 만큼 닥쳐올 앞날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직원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볼 무언가를 찾다가 국토대장정을 계획했다.

“체력적으로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산행을 했으니까요. 10년 전쯤인가요. 코오롱 등산학교에 들어가 기초부터 정규, 암벽등반까지 수료를 했습니다.”

등산학교를 수료한 후 강 회장은 한때 세계 7대륙 최고봉 정복을 목표로, 중국과 네팔을 통해 히말라야 설산에 오르기도 했다. 최고 6200m까지 올랐지만, 고소 증상이 너무 심해 더 이상 오르지는 못했다. 그는 체질적으로 고소에 약해 최고봉 정복을 포기했다며 아쉬워했다. 최고봉 정복을 포기한 그는 6년 전 35일간 혼자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사람들에게 등산은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등산을 하다 보면 대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큰 산 앞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히말라야 고산지대 같은 오지에 가보면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거기 있거든요. 그들의 삶을 보면 명예나 부, 권력 이런 게 하찮게 느껴져요. 등산이 주는 가르침이 그뿐이겠습니까. 기업을 하다 보면 경쟁은 피할 수 없잖아요. 대자연 속에 있다 보면 경쟁으로 상처받은 인간성이 회복되는 것을 새록새록 느끼게 됩니다.”
[Life Balance] “대자연에 순응하며 경영의 正道 깨닫죠”
10년째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헬스클럽에서

강 회장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비울 때 비로소 채울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실제 강 회장은 “CEO는 바빠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CEO는 한발 물러나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론 때문에 강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다. 3시간 동안 헬스클럽에서 운동에만 정신을 쏟는다. 스트레칭 40분, 유산소운동 1시간, 근력운동 40분 등 하루 3시간씩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그는 건강해야 솔선수범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오후시간을 보낸 게 10년 가까이 됐다. 물론 젊어서는 그도 일에 파묻혀 건강관리는 뒷전이었다. 대교에 있을 때 그는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돈보다는 일이 좋아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열정을 바쳤던 대교를 나오고 그는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조직이 커지다 보면 형님의 색깔과 제가 추구하는 색깔이 다를 수 있잖아요.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제가 원하는 색을 칠할 수 있는 기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동종 업종을 하려니까, 형제들끼리 경쟁하는 것 같아 모양새가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1년 가까이 방황을 했죠.”

방황을 접고 새로 시작한 일이 인쇄업이다. 시작은 초라했다. 직원 5명에 마스터 인쇄기 한 대, 타라의 전신이 ‘바른 인쇄’의 모습이었다. 사업은 순조로웠지만, 문제는 그가 인쇄업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데 있었다.

그는 인쇄업을 계속 해야 하나를 두고 10년 가까이 고민을 반복했다고 한다. 1997년에는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시니어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하지만 때마침 터진 IMF로 그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게 내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쇄업이 전형적인 3D업종에 성장산업이 아닌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보자고 마음먹었죠.”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강 회장은 대자연의 품에서 경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고, 상처받은 인간성을 어루만진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강 회장은 대자연의 품에서 경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고, 상처받은 인간성을 어루만진다.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한 배경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강 회장은 두 가지 점에서 인쇄업의 발전 가능성을 발견했다. 첫째, 사향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경쟁이 힘든 대기업이 진입하지 않을 것이라 점과 둘째,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정보기술(IT)을 접목시킨다면 수준 높고 빠른 인쇄가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한국인은 생활 속에 ‘빨리 빨리’가 몸에 밴 민족입니다. 인쇄업만큼 속도가 중요한 산업이 없거든요. 인쇄는 또 단계가 굉장히 복잡해요. 우리에게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IT 기술이 있잖아요. 이걸 인쇄업에 접목하면 세계적인 수준의 인쇄가 가능하겠다고 본 거죠. 인쇄업이 블루오션은 아니지만 없어질 산업도 아니거든요. 수준을 2, 3단계만 높이면 차별화가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Life Balance] “대자연에 순응하며 경영의 正道 깨닫죠”
IMF를 무사히 통과한 타라는 이후 급성장했다. 2006년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데 이어 지난해 매출 2000억 원을 넘어서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계열사도 타라TPS, 타라유통, 타라그래픽스, 타라안티쿠스 등 네 개로 늘어났다.

매출 증대를 위해 수도권은 물론 지방과 국외 시장을 개척했다. 직원들이 발로 뛰며 법인 영업을 강화했다. 타라그래픽스 매장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브랜드 효과도 봤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며 사명도 타라(Tara)로 바꿨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 됐던 농장 이름이기도 한 타라는 ‘땅’, ‘대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명을 지을 때 두 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첫째, 중학생 수준이면 알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발음이 편하게 받침이 없어야 한다. 그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생각났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감명 깊게 봤던 영화거든요. 타라는 저와 우리 직원에게 개척해야 할 도전의 땅인 동시에 삶의 터전입니다. 회사가 저는 물론 직원들에게 삶의 터전이 돼야죠.”

얼마 전부터 강 회장은 그 터전에 미술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장소였던 회의실 벽면에 원로 화가 김창열를 비롯해 민정연, 윤형선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회의실뿐 아니라 사무실에도 적잖은 작품이 걸려 있었다. 그는 경기도 파주 인쇄소에도 그림과 조각이 전시돼 있다고 부연했다.
[Life Balance] “대자연에 순응하며 경영의 正道 깨닫죠”
그는 좋은 그림의 조건으로 ‘오래 걸어놔도 질리지 않는 그림’을 들었다. 거기에 개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라면 금상첨화다. 그에게는 20년 전 현대백화점 지하 갤러리에서 산 그림이나 동생이 선물한 박용인 작가의 그림이 그런 그림이다. 요즘은 비구상의 실험적인 작품들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 칭찬을 들은 게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그림에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한창 등산을 할 때도 네팔 등에 가면 그림 시장에 갔고, 직접 사기도 했어요. 본격적으로 컬렉션한 건 한 5년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컬렉션한 작품을 회사와 공장에 걸어두는 이유는 직원들의 정신적 건강과 안목을 키우기 위해섭니다. 인쇄업은 아무래도 디자인이나 컬러 감각이 필요하거든요. 그림을 보고 안목도 키우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거죠.”

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직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강조했다. 등산과 아침체조가 육체적 건강을 위한 배려라면, 독서는 정신 건강을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를 닮아 부지런한 직원들은 7시면 출근해 1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

“직원들이 책도 많이 읽고, 작품도 보면서 꾸준히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직원들한테 그렇게 얘기합니다. 회사가 아니라 개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라고요. 개인에게 성공의 꿈을 키워줘야 회사도 발전하니까요. 아직은 제 생각과 계획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강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인쇄업의 브랜드화, 시스템화, 네트워크화를 강조했다. 미국과 호주 시장 진출은 그의 목표를 입증할 가늠자가 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017년 매출 1조 원 달성이 힘든 일은 아닐 거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