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 평원 위의 선율, 알카사르 성채
일렁이는 보리밭과 낭만적인 알카사르 성채
저 멀리 한 노인이 낡은 주택가 벤치에 앉아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 노인의 여유로움이 부러워 발길을 그리로 돌렸다. 노인이 부른 것도 아닌데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들판에 하늘거리는 양귀비 물결을 바라보며, 일렁이는 보리밭의 보리 내음에 취해 나는 그 노인과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과거 이곳의 절반은 산악지대, 절반은 평야지대로 전통적인 황무지였으나, 초기 정착민들이 이곳의 붉은 돌과 채석으로 집을 짓고 살면서 수평선을 경계로 파랑과 핑크가 조화로운 성곽 도시를 건설했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로마인들의 군사기지로 로마인들이 거주했었다. 그들은 제국의 존속을 위해 수로를 건설했으며 현재 세고비아의 상징인 로마 수도교(Aqueduct)가 역사적인 유물로 남아 있다.
1088년에는 알폰소(Alfonso) 6세가 외세에 대한 방위와 공격을 강화하기 위해 성곽을 쌓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 됐으며, 당시의 모습이 여전히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세고비아의 역사지구는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명소로 그 명성을 누리고 있다.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란 어떤 장점을 갖고 있을까. 반나절이나, 하루 동안 천천히 걸으며 그 도시를 충분히 호흡하고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편안한 마음으로 한가롭게 걷다 보면, 도시의 다양한 느낌들이 내 마음에 스며든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도시를 이해하고, 닮아간다. 그 작은 도시에 푹 빠져 드는 것이다.
골목을 돌면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에 화들짝 놀라는 기쁨도 누려보고, 기대하지 못한 풍경과 상상치 못한 아름다운 건축물들에 경탄하는 즐거움, 역사의 숨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느껴보는 것이다. 여행은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관광 코스로는 월트 디즈니 만화 영화 <백설공주>의 배경이 된 성의 모태인 알카사르(Alcazar)를 시작으로 도심의 상징인 대성당(Cathedral)을 둘러보고, 대성당에서 포석(鋪石)이 아름다운 아기자기한 골목을 지나 로마 수도교에 이르면 그 장엄함에 놀랄 것이다. 어스레한 밤, 시나브로 연두색 조명이 비출 때면 아름다움이 감동을 더한다.
세고비아는 음악의 선율이다. 작은 마을, 세고비아는 고요하고 뜨거운 열정이다. 밤이 깊어지면, 이 도시에 젖어 든다. 보석같이 작은 도시는 온통 채색돼 꿈결 같은 낭만이 흐르고 만다. 어두움이 포석에 내려앉으면, 도시는 더욱 또렷이 윤곽을 드러낸다.
어디선가, 낭랑한 세고비아 기타 퉁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음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세고비아의 밤은 먼 길 떠나온 여행자의 깊고 고독한 가슴에 다가온다.
여행은 이동을 필요로 하지만, 좋은 여행은 대상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 대상이 자연이든, 역사든, 사랑이든, 혹은 한줄기 바람이든, 여행은 고요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여기 온 이유를 깨닫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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