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신 르네상스 시대

국 미술계에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가 브랜드가 상승하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류 붐이 일어나면서 우리 미술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서구 미술을 받아들인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백남준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같은 원로 작가들이 해외에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설치작가 이불, 박성태, 조각가 이용덕, 사진작가 배병우 등 중견 작가들도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와 전시회를 통해 한국 현대 미술을 알리고 있다.특히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세계적인 경매 시장에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예상가의 몇 배를 웃도는 가격으로 낙찰되는 등 국제 미술시장에서의 평가도 높아졌다. 이러한 추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들에게 이어져 이들 또한 왕성한 국제 전시를 통해 한국 미술 르네상스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한국 미술계는 질적인 수준과 시장성으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영향력을 점점 더 확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을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 선생이 끊임없이 외친 ‘창조’에서 찾고 싶다. 끊임없는 시도와 열정은 오늘날 한국 미술의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1950년대 팝 아트 이후 미술계에서 잠시 주춤했던 영국을 오늘날 세계 미술의 한 축으로 다시 올려 놓은 것은 재기 넘치는 작가들의 창조정신과 도전이었다.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넣어 전시하거나, 썩어가는 소머리에 몰려든 파리들이 살충제에 죽어가는 설치 작품 등 충격적인 작품을 많이 선보인 영국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1988년 버려진 공장을 빌려 ‘프리즈(Freeze)’라는 전시회를 열었다.당시 미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가 마크 퀸, 샘 테일러-우드, 존 아이삭, 길버트 앤 조지, 게빈 터크, 게리 흄, 안토니 곰리, 채프만 형제 등 오늘날 yBa(young British artists: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 그룹으로 불리는 동료들과 함께 열었던 이 전시회는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세계 미술계는 다시 영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전시에 참가했던 yBa 작가들은 세계 미술계와 미술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이 됐고 그 중에서도 데미안 허스트는 전 세계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높은 가격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실험 정신과 기존 미술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소재에 대한 도전이 그들을 남다른 작가로 만들었기에 그 남다름을 소유하기 위해 오늘날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컬렉터들이 앞 다투어 그들의 작품을 구입한다.같은 맥락에서 한국 젊은 작가들의 참신한 도전은 한국 미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 같은 도전이 계속된다는 것은 국내 미술계가 세계 미술계의 주류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지난 9월 상하이 비엔날레에서 대형 작품으로 현지 언론과 세계 미술 관계자들의 극찬을 받은 작가 이용덕은 여세를 몰아 시드니 대형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안으로 파고 들어간 음각과 밖으로 나와 있는 양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은 올 멜버른 아트 페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그의 작품 속에는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과학적인 접근이 녹아 들어가 있어 현지인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스테인리스 스틸을 작은 끌로 구부려 형태를 만드는 작가 박성태는 10월4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자에 의해 수천 개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은 동양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방충망에서 예술을 끌어내는 작가의 상상력과 시도가 그를 국제적인 작가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다. 박성태 이용덕 두 작가의 작품은 현재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높은 가격대에 낙찰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컬렉터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예술성, 시장성 모두가 세계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뛰어난 작품성으로 일찍부터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작가들도 있다. 윤영혜는 미대를 갓 졸업한 가냘픈 소녀의 모습을 간직한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로 돼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로 그 작품 세계 속에 들어가 있다는 착각도 불러일으킨다.미색의 깔끔한 식탁보, 단정하게 놓여진 식기들은 어둠 속에 묻혀서 그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는 나무 의자와 대조를 이룬다. 이 상반된 두 세계는 불안정한 공존을 드러내고 있다. 또 각 세계에 속하는 소재들은 자신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일상의 친근함을 넘어서 드라마틱한 구성과 함께 회화적인 깊이를 듬뿍 풍긴다.여성작가인 그녀의 작품이 드라마틱한 하이퍼 리얼리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남성작가 이강욱의 작품은 내면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포 하나하나를 재현한 듯 크리스털과 구슬 같은 세밀한 입자들로 이뤄진 그의 작품들은 오랜 공정을 필요로 한다. ‘보이지 않는 공간(Invisible World)’이라는 제목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긴 시간 동안 작가가 홀로 탐구했을 소우주를 통해 참선과도 같은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 아무 것도 만지지 않아도 그 공간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그의 작품은 관객들을 깊은 명상에 빠지게 한다. 참선을 유도하는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동양적 사유의 향기는 그가 일본이나 유럽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그리스 신전에 남겨져 있다는 한 낙서 글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사랑받았던 미술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늘 새로운 시도와 더불어 미지의 영역을 헤쳐 나가는 작가들이 후대에도 기억되고 사랑받았다.미술품 컬렉션에 경제적 마인드가 더욱 강조되는 요즘, 창조적이고 참신한, 그러면서도 작품성 높은 작가들의 작품에 아트 딜러와 컬렉터들의 관심이 몰리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아무나 소유하지 못한 그 창조의 열정이 담긴 미술품의 가치는 시간과 함께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