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은 노골적으로 보수화(保守化)의 길을 걷고 있다. 이유는 이제 경제 발전보다도 소득 격차와 분배의 불균형에서 오는 사회 혼란을 우려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중국 인구는 13억 명이다. 그런데 산아제한 정책에 따른 막대한 벌금이 무서워 아이를 낳고도 숨긴 경우까지 합치면 15억 명 이상을 잡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 가운데 80%가 가난한 농민이다. 이들이 이재(理財)에 눈을 떠서 일제히 도시로 몰려가거나 개혁을 부르짖는다면 정부가 지탱할 수 없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개혁의 상징인 ‘마오쩌둥(毛澤東)’을 버리고 보수의 대명사인 ‘공자(孔子)’를 껴안는다.중국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다. 21세기 초반의 국제적인 대세와 조류가 보수로 회귀하는 것이다. 세계는 개혁보다 보수의 논리가 더 필요하게 됐다. 외교보다는 내치(內治), 빈부 격차와 분배의 불균형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과 불만을 발전과 도약의 논리로부터 차단, 봉쇄하는 일에 사활을 건 셈이다.보수화 정권들의 행태는 대개 비슷하다. 내부 단속과 결속을 강조하다보니 관심을 바깥으로 돌릴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 외부에 적이나 대항 세력을 끊임없이 만든다. 동북공정을 위시한 중국의 각종 역사 관련 프로젝트,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와 독도분쟁, 전쟁을 통한 미국 부시의 패권주의가 모두 그런 관점에서 일맥상통한다.우리는 기묘하게도 이런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지금 한국의 운명을 쥔 정권은 건국 이후 가장 ‘인간적, 개혁 지향적(?)’이다. 그러니 무슨 외교적인 마찰만 터졌다 하면 우리만 외톨이가 된 듯하고, 우리 정부만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 중국 일본 미국 정권들이 전부 보수로 회귀해 결사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판에 우리 정부만 신의를 지키고, 남을 더 존중하고, 하염없이 평화를 사랑하고, 지극한 동포애를 발휘한다.물론 남을 탓할 건 없다. 일을 이렇게 만든 건 시대의 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한 우리 국민이다. 그리고 이제 대다수의 국민도 이 정권을 겪는 동안 심정적으로 급격히 보수화 되어 가고 있다. 보수라면 무조건 이를 갈던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과거사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장기 독재에 대한 반발로 개혁에 목이 말랐다면, 문민정부 이후 개혁에 기치를 든 정권들의 한계를 20년 가까이 체험, 체득한 것이 보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지니게 된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농사짓던 소를 잡아 배를 불린 사람들이 다시금 농사지을 소를 찾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지금 세태가 비유하자면 꼭 그렇다. 농사는 다시 지어야겠는데, 고기 맛은 이미 본 터고, 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소를 잡아먹은 일이 슬금슬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비록 힘들긴 하지만 누가 소만 준다면 다시 한번 열심히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 한다.국민 정서가 보수로 기울었으니 단언하건대 다음 정권은 보수 진영에서 나올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앞으로 들어설 보수 정권의 역할이다. 그들이 만일 과거의 보수 진영이 해 온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큰일이다. 국익을 우선하되 국민을 강압하지 않고, 전통을 존중하되 발전적이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정세에 해박하고 실무에 전문적인 정권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래야 국가가 살고 민족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