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고수’ 박경철 신세계연합병원 원장의 투자노하우

든 분야에 명인이 있듯 재테크에도 고수가 있다. 이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축적한 놀라운 감각으로 뛰어난 수익을 올린다. 대개 일반인들은 이런 고수가 이미 투자했던 자산을 뒤늦게 사들여 작은 차익만 남기거나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투자 고수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더 유명한 경북 안동 신세계연합병원 박경철 원장이다. 주식 투자만으로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 원장을 잘 아는 사람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서울의 핵심 지역 부동산을 훑고 지나가 떼돈을 벌었다. 큰 승리를 맛본 탓인지 지금은 주식이나 부동산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한다. 대신 바이오나 환경 등과 관련된 비상장 기업을 발굴하는 엔젤 투자에 흠뻑 빠져 있다. 그가 MONEY와 만나 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앞으로 7년 안에 돈을 벌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를 잡기 어렵다고 단언했다.-“돈에도 냄새가 있습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복잡한 과학적 실험과 수학적 계산을 거쳐 된장을 만들더라도 시골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빚은 된장의 맛이 훨씬 좋은 것처럼 첨단 금융 공학 기법으로 무장하더라도 돈 냄새를 맡는 고수의 감각을 당해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강연을 자주 다니다보니 돈 냄새를 잘 맡는 고수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은근히 고수들에게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책을 보고 연구만 하면 도자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도공에게 직접 배워야죠. 장인에게 많은 것을 배우다보니 이제 도자기(투자 자산) 중에서 부숴야 할 것과 쓸만한 것을 구분하는 눈이 생긴 것 같습니다.”-“우리 경제는 80년대까지 고도성장기를 거쳤습니다. 90년대도 성장통을 경험했지만 기본적으로 고도성장의 연장선상에 있었죠. 하지만 고도성장기가 지나면 안정기 혹은 저성장 국면이 찾아오는데 이렇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에 돈을 벌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대한제국이 무너지면서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이 큰돈을 벌었고, 광복 후에는 일제가 소유했던 땅을 불하받았던 사람이 부자가 됐습니다. 전쟁 때 군수산업 하는 사람들이 큰 돈을 벌었고 재벌들도 정권이 바뀌는 격변기에 무너진 회사를 인수해 몸집을 키웠습니다.위기나 격변기에 기회를 잡지 못하면 평범한 사람으로 남게 되고 이 기회를 잡는 사람은 부자가 됩니다. 저도 1995~2000년 자본 시장이 개편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책 수단을 밀어붙였던 시기에 기회를 잘 잡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배다 성장이다, 보수다 진보다 해서 시끄러운데 이때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현재 베이비붐 세대들이 41~53세 정도인데, 이 연령대의 경우 항상 인구가 많아 초등학교 때에도 한 학급에 70명씩 수업을 받아야 했고 대학 정원을 30% 늘려 뽑되 졸업을 어렵게 한 졸업정원제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대략 30% 정도 경쟁에서 탈락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겪어온 셈이죠. 결국 노년이 돼서도 잘 준비하지 못한 30% 정도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베이비붐 세대를 먹여 살릴 만큼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특히 인구 구성비가 바뀌면서 2012년 이후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생애에 돈 벌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약 7년 정도의 기간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년 후부터는 우리나라의 장기 불황이 시작되기 때문에 국내 투자보다 젊은층 인구가 많은 국가, 즉 인도나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외국에 투자하는 게 좋습니다. 해외 투자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채권에 투자하고 묵묵히 기다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그렇습니다. 일례로 중국의 경우 앞으로 10년간은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지방의 권력이 강화되고 소외당했던 계층의 목소리도 엄청나게 커지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회불안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박스권 대응이 필요합니다. 장기 투자보다는 주가가 올라갈 때 팔았다가 떨어지면 다시 사는 트레이딩 전략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도나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나라가 더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습니다. 젊은층 인구가 많기 때문이죠. 이처럼 다양한 국가의 상황과 정세를 계속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늙어 죽을 때까지 자본 투자를 해도 좋겠지만 이게 어렵다면 향후 7년 안에 돈 벌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저는 지난 2000년에 주식을 사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그 이후 주가가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말 주식을 다시 사라고 말했는데 이때 향후 5년 안에 주가지수가 5000은 간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내년 말 주가가 5000까지야 못가겠지만 당시에 저는 대세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주식이 가장 유망하다고 봅니다. 7년 안에 돈을 벌기 위해 일반인에게 가장 좋은 수단은 주식입니다. 투자 성과가 주가지수와 같게 설계된 인덱스 펀드에 투자 자금을 묻어놓고 시장 평균 수익만 따라가도 몇 년 안에 세 배 이상 불릴 기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펀드 고르는 게 주식 고르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또 펀드매니저가 아주 뛰어나더라도 장기적으로 시장 평균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본 시장 자체가 괴물처럼 커져버렸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됐기 때문에 초과 수익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도 인덱스 펀드가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데 큰 흐름만 따라가도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부동산은 급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완만하게 상승하면서 수익률이 이전보다 낮아질 것 같습니다. 또 부동산의 경우 거래 비용과 세금이 높은 데다 투자액이 크기 때문에 기회비용이 많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비중을 줄이는 게 좋습니다. 저도 주식투자를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서울 부동산에도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2000년 초 반포 주공아파트를 사라고 떠들고 다니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처분했습니다.”-“인구 구성비가 바뀌면서 불황은 불가피합니다.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데 미국의 경우 이민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나 호주는 막대한 자원을 가졌기 때문에 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적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민 정책도 유연하지 않고 자원도 거의 없습니다. 통일이 돼서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이 유입되거나, 이민 정책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대량 이민을 받아들이는 형태의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불황이 10년, 혹은 15년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습니다.”-“의과대학 재학 시절 뭔가 새로운 일을 찾다가 사법시험을 준비해 봤는데 재미로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대신 투자를 해봤습니다. 저는 경제학 원론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투자에 대한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이른바 ‘마바라(증권사 객장에 상주하면서 뇌동 매매로 소액을 투자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나 ‘복부인’이 판치던 시절, 제대로 공부하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생각에 겁 없이 도전한 것이죠. 본과 1학년부터 주식을 시작했는데 성과는 영 좋지 않았습니다.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면서 월급을 몽땅 날렸죠. 나름대로 각종 지표와 기술적 분석 방법을 이용했는데 당시 시장에서는 이런 과학적 기법보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훨씬 중요했죠. 이때 시장이 무섭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실패를 거듭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가 터졌는데, 저는 주가지수가 300선 밑으로 내려가면 할아버지 논까지 팔아서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물론 300선이 무너질 때 주식투자한다고 했더니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시점에 전 재산을 투자했습니다. 특히 이동통신 주식의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당시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했는데 여기서 핸드폰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가격이 180만 원이었는데 저는 기술이 발전하면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자사주 물량이 장외시장에 나올 때마다 매입했고, 한통프리텔(현 KTF), 한솔PCS(KTF로 합병) 주식도 닥치는 대로 샀습니다. 당시 한통프리텔 최종 매입가격이 1만6000원, 한국이동통신 평균 매입가격이 2만 원이었습니다. 이 주식을 1999년 말에 몽땅 팔았으니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냈죠.”-“주식은 사는 것보다 파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는 1999년 말 주식을 모두 처분하면서 ‘성장주와 이별’이란 글을 통해 깊은 조정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10년 주기로 성장 산업이 등장했다가 과잉 투자로 조정을 받는 일이 반복됐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조회수가 10만 건이 넘었고 수백 개의 댓글도 달렸습니다. 물론 엄청나게 욕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 3월부터 주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시 ‘시골의사’라는 익명으로 활동했는데 모 방송사에서 저를 찾아내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시 신분을 감추려고 다리만 나오게 한다는 조건으로 촬영했는데 병원 간판과 제 얼굴까지 보도됐습니다. 이 때문에 투기꾼이라는 이미지로 비쳐질 것을 우려해 6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결국은 방송사의 사과를 받고 합의했습니다.”-“2000년 전까지는 기계 문명의 시대였습니다. 부수고 파괴하고 새로 건설하는 게 경제의 원동력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다시 사람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제2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는 것이죠. 파괴한 것을 복원하고, 나빠진 것을 되돌리고, 건강을 증진하고, 환경을 복원하는 분야의 산업이 앞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할 것입니다. 바이오 산업이나 보건, 환경 같은 분야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바이오도 유전자 치료 같은 분야는 미국 기업을 당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대신 진단이나 우리나라 풍토병 치료, 보건산업 분야가 유망합니다. 최근 뎅기열이나 말라리아 진단 키트를 개발한 한국 회사를 발견했는데 이런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땀 흘려 번 돈은 저와 제 가족을 위해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번 돈은 저와 가족을 위해 씁니다. 하지만 인세, 강연, 방송출연 등 과외 수입은 통장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수입은 모두 좋은 일을 하는 재단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책 인세는 모두 소아암 재단에 줬습니다. 개인적으로 복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복지는 남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복지가 잘못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나중에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해보세요. 복지에 문제가 생기면 범죄가 늘어나 저도 노후에 험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복지를 늘리는 것은 무인 경비장치 하나를 마련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수십 년 후에도 사회가 안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