떤 국가이든 중앙은행 총재가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경우는 더 그렇다. 미국 증시 역사상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가 가장 높았던 FRB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이다. 그에 대한 신뢰가 굳어진 계기는 1998년 발생했던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사태다. 당시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사태로 LTCM이 파산 직전에 몰리자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신용 경색 현상이 발생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이때 세 번에 걸친 금리 인하를 통한 긴급조치 덕분에 LTCM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됐고 시장 참여자들은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그린스펀의 능력을 맹신하게 됐다. 위험을 상쇄시키는 이런 능력 때문에 증시의 침체로부터 옵션 보유자를 보호하는 풋 옵션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란 용어도 탄생했다. 1990년대 후반 신(新)경제로 대변되는 증시 기초 여건이 견실한 상황에서 ‘그린스펀 풋’까지 가세함에 따라 저가 매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최근 들어 그린스펀으로부터 FRB의 바통을 이어받은 벤 버냉키 의장의 인플레에 대한 언급 수위에 따라 세계 증시가 요동을 치고 있다. 인플레 우려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 ‘버냉키 충격’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가가 급락하고, 반대로 인플레가 통제 가능해 금리 인상 우려가 줄어들면 ‘버냉키 효과’라고 표현될 정도로 주가가 급등한다. 문제는 불과 하루 이틀 간격으로 이런 현상이 교차됨에 따라 증시 참여자들이 버냉키 의장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갈수록 비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증시 참여자들이 느끼는 피로도가 얼마나 되는가를 알 수 있는 금융스트레스지수(financial stress index)를 살펴보면 버냉키 의장이 취임한 올 2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만약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는 조만간 추락하는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뉴욕 월가에서는 그린스펀 풋과 비교해 ‘버냉키 콜(Bernanki call)’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다. 버냉키 콜이란 잦은 말 바꿈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피로가 누적될 경우 옵션 보유자를 보호하지 못해 만기 이전이라도 권리 행사를 촉진시키는 콜 옵션 행사가 급증할 것이란 추론에서 나온 것이다. 앞으로 버냉키 콜이 발생하면 설령 경기나 기업 실적과 같은 기초 여건이 좋다 하더라도 보유 주식이 출회돼 증시는 지금의 조정 국면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결국 그린스펀 풋과 버냉키 콜이란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 여부에 따라 중앙은행 총재의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증시를 비롯한 금융 시장 안정이라는 본연의 책임을 다할 경우 그린스펀처럼 시장 참여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FRB 역사상 최장수 의장을 맡을 수 있도록 밀어주고(put), 그렇지 못할 경우 시장 참여자들의 부름(call)으로 중앙은행 총재직을 임기 이전이라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도 통한다. 버냉키 의장이 취임한 지도 8월이면 6개월을 맞는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는 금리 인상 문제가 최대 과제였으나 앞으로는 경기와 환율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년 동안 지속돼 온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제는 마무리 국면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적정 금리 수준은 테일러 준칙과 피셔 공식으로 따지는데 현 5.25%의 연방기금 금리는 어느 정도 적정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세계 경제가 급격하게 침체하지 않는다면 환율이 최대 재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금리 인상을 통해 저축률을 제고하는 정책 수단을 더 이상 가져가지 못한다면 최대 현안인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를 유도하거나 최소한 방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