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고의 유명한 빌딩을 설계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의자가 내 집에 있다면 어떨까.건축 관련 잡지나 디자인 책자의 표지를 장식하는 구겐하임미술관을 지은 건축가의 의자가 내 거실에 있다면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만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은 그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고가 미술품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디자인 책에서, 혹은 건축 관련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모더니즘 가구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건축학도라면 루드비히 미스 반데 로헤(Ludwig Mies van der Rohe),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 에로 사리엔(Eero Saarinen), 프랭크 게리(Frank Gehry) 등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이름이 생소하더라도 JFK공항(TWA 터미널:에로 사리엔 디자인)이나, 바우하우스(루드비히 미스 반데 로헤), 구겐하임미술관(프랭크 게리)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나 이들은 건축물만 짓지 않았다. 이들은 20세기 가구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의 가구 디자인들은 그 시기 유명한 건축가들이 건축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자유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공법을 시도하면서 시작됐으며 이러한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시장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 시기 디자인에는 형태의 아름다움만을 고려한 것이 아닌, 안락함과 인체 공학적인 설계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20세기 디자인 가구들은 건축공법과 디자인에 획기적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20세기 디자인 가구들은 해외 경매회사의 가구와 장식예술 분야(Furniture and Decorative Art department)의 주요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매출액 또한 늘고 있는 추세다.작년 11월8일 필립스(Phillips de Pury)는 20~21세기 디자인 경매를 했다. 필립스는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미술품 경매를 위주로 하는 것과는 달리 현대미술, 현대 디자인, 사진 등 현대적 감각의 물품들을 위주로 경매하는 경매회사다. 두 섹션으로 나눠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스위스의 가구박물관:현재는 가구를 제조하기도 한다)의 큐레이터였던 알렉산더 본 베게삭(Alexander von Vegesack)의 소장품과 20~21세기 디자인 가구를 함께 경매했다. 이 경매에서 장 프루베(Jean Prove)의 1951년 작 테이블이 27만3600달러(약 2억7000만원), 1933년 작 의자(armchair)가 10만8000달러(약 1억800만원)에 낙찰됐다. 이보다 후기에 활동한 론 아라드(Ron Arad, 지금도 활동 중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의 1989년 작 의자는 6만4800달러(약 6400만원)에 낙찰됐다. 이날 경매에서는 총 430만달러(약 4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특별히 기획된 20세기 디자인 가구 경매가 아니더라도, 매년 3월, 5월, 11월에 걸쳐 전 세계 경매회사에 꾸준히 20세기 디자인 가구들이 경매 품목으로 등장하고 있다. 작년 12월 뉴욕 소더비에서 열린 20세기 디자인 세일에서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모던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Alvar Aalto)의 no.21 의자가 출품됐는데, 6000~8000달러(약 600만~800만원)인 감정가보다 두 배 높은 1만6800달러(약 1680만원)에 판매됐다. 알토는 20세기 가구 디자인의 대표적 작가다. 나무라는 한 가지 재료를 통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그의 의자는 매번 높은 가격에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미국을 대표하는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의 탁자는 파리 경매에서 감정가 2500~3500유로(약 300만~420만원)의 두 배가 넘는 5800유로(약 700만원)에 낙찰됐다. 물론 지금 거론된 가격들은 수수료를 제한 가격들이며, 실제 한국에서 이러한 가구들을 구입하면 운송 비용과 세금이 포함돼 가격이 훨씬 높아진다. 하지만 1000만원이 훌쩍 넘는 미술품에 비하면 가격도 저렴할 뿐 아니라 머리 아픈 현대미술보다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기도 하다. 이 20세기 디자인 가구들은 현재에도 헤르만 밀러(Herman Miller), 카르텔(Kartell),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토넷(Thonet) 등의 유명 가구 디자인 회사에서 다른 재질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상당히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그만큼 이 디자인은 세기를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가장 모던한 디자인임을 확신해 주는 것이다. 최근 국내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 소장품인 100개의 의자 전시, 일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우치다 시게루의 가구 디자인과 20세기 빈티지 가구 전시가 열리면서 국내에서도 빈티지 가구 시장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 국내 고가구의 경우 인사동과 여러 경매회사에서 취급하고 있지만 일부 상품을 제외하고는 투자 매력이 크지 않다는 게 단점이다. 때문에 서울옥션 등 경매회사에서 경매가 열려도 낙찰되는 경우가 50% 미만이다. 인사동에서 판매하는 고가구의 경우 진품 위품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 고가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떨어지는 경향이 많아 실제 고가구를 투자 대상으로 구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20세기 초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가구는 현재 서울옥션과 서미갤러리 등에서 판매 중이다. 서울옥션은 지난 2월25일부터 3월10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점에서 모던 빈티지 가구 전시전을 개최했다. 갤러리 중에서는 서미갤러리가 모던 빈티지 가구 판매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 3월 오픈한 이후 지금까지 빈티지 가구를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 밖에 갤러리현대와 국제갤러리 등도 빈티지 가구 오리지널 작가전을 개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