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장상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죽음과 세금이라는 두 가지 숙명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한다고 차를 타면 교통세, 점심을 먹으면 부가가치세, 저녁에 한 잔 하면 주세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내고, 월말이 돼 월급을 받으면 소득세를 내야 한다. 돈을 모아 집을 사면 취득세, 집이 있으면 재산세를 내다가 죽을 때는 자식에게 상속세를 물려준다. 우리는 수많은 세금을 공기 마시듯이 하며 살아간다.세금은 부자가 당연히 많이 내야 하는 것으로 다 알고 있지만 한때 부자가 세금을 안 내거나 적게 내던 때도 있었다. 1970년대에는 부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거나 적게 낸 경우가 있었다. 겉으로는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도록 세율을 정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반 근로자들이 세금을 제일 많이 납부하고, 다음 사업을 하는 사람이 내고, 대기업의 주주들은 소득세를 적게 내거나 안 내는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 후반 근로소득으로서는 최고소득에 속하는 월 50만원을 기준으로 할 때 실질적인 소득세 부담은 근로자 급여의 경우 12% 전후, 주주의 배당은 4% 전후, 자영업자의 소득은 그 중간인 8% 전후였다. 자영업자에 대한 과세포착률과 소득표준율을 감안하면 사업소득의 부담은 더 낮아 5% 전후였다. 이러한 결과는 근로자는 기초공제 등 기본적인 공제만 있었던 반면 주주의 배당에 대해서는 배당금액의 30%를 소득세에서 공제해 줬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의 월급은 유리지갑같이 훤해 거의 100% 원천징수당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인정과세에 따라 적당히 세금을 내고 조세행정은 여기에 따라가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다. 부자가 적게 낸 세금1978년의 경우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에 적용되는 간이세액표에는 월 근로소득 최고금액이 49만8000원이었고 배우자와 자녀 등 5인 가족의 소득세는 5만8590원으로 11.7%였다. 공개법인의 주주로 월 50만원 수준의 소득인 연 600만원의 배당을 받을 경우 종합소득세는 117만원으로 19.5%지만 배당금액의 30%인 180만원을 공제받아 납부해야 할 세금은 -63만원, 즉 -10.5%가 돼 결국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됐다. 여기에다 중화학공업의 경우 법인세를 100%까지 감면하고도 법인세를 낸 것으로 간주해 배당 세액공제를 해 주었다. 고용사장이 오너회장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근로자와 일반사업자, 그 중에서도 근로자들이 나라 살림을 주로 맡은 셈이었다.과거 개발연대에 재벌기업은 돈을 빌렸다고 사채 동결, 중화학공업을 한다고 면세, 수출하고 투자한다고 저리 정책자금 대출, 증자한다고 증자소득공제, 배당한다고 배당세액공제를 해주었으니 특혜 위에 특혜를 얹어주었다. 이런 특혜들은 대기업의 탄생과 대외경쟁력 향상에 큰 기여를 해 우리 경제를 한 세대 만에 최빈국의 하나에서 중진국으로 압축성장하도록 만든 반면 기업들이 부채를 겁낼 줄 모르고 몸집을 불리는 차입경영과 그룹경영으로 치닫게 하는 부작용도 야기시켰다. 이것은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로 생각되기도 한다. 일자리 창출이 진정한 보은1980년대 들어 이러한 문제들은 거의 시정돼 지금은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순리로 돌아갔지만 대기업과 부자들은 1970년대의 특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특혜를 갚는 길은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한 자선사업이 아니라 기업경영에 전념해 튼튼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투명경영으로 나라에 세금을 많이 내는 동시에 기술개발에 힘써 대외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것이 과거 나라살림을 맡았던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보은(報恩)이라 생각된다.어떤 시인이 사람은 은혜를 은혜로 갚는 ‘분’, 은혜를 갚아야지 하면서 못 갚고 사는 ‘사람’, 은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사는 ‘놈’, 은혜를 ‘원수’로 갚는 ‘새끼’ 등 네 가지 부류가 있다고 했다. 빚에 눌려 고생하는 많은 신용불량자들과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실업자들을 위해 특혜를 받았던 부자들은 일자리 창출에 진력함으로써 은혜를 은혜로 갚는 ‘분들’이 되기를 진정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