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15년차 방송인 이다도시

랄라(Ohlala)~ 남들이 절 보고 수다스럽다고 하는데, 맞아요. 저 수다스러워요. 그런데 이게 저만의 대화 방식이에요. 억지로 희화화하는 게 아니라 제 삶이 진짜 이래요.”방송인 이다도시(40)는 유쾌한 사람이다. 마치 신선한 비타민제 같다고나 할까. 신선하다 못해 톡톡 튀는 레몬즙과 같은 그녀는 그래서 방송에서도 자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한다. 인터뷰 내내 감탄사 ‘올랄라’를 몇 번이나 연발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TV 브라운과 실생활의 간극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담백한 그녀와의 대화가 그래서 더욱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우리가 TV 브라운관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은 서양인과 한국인 사이에 있는 경계인의 모습이다. 벽안의 프랑스 여성이 우리네 아줌마처럼 유창한 한국말로 수다를 떠는 모습은 서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는 ‘미녀들의 수다’ 원조 게스트다.그녀와 한국과의 만남은 운명적이다. 프랑스 르아브르대 대학원에서 아시아 비즈니스를 공부할 때만 해도 한국에서 결혼해 살아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산 앞바다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보낸 것이 평생이 될 줄이야. 결혼 후 그녀는 홀시어머니를 모신 며느리이자 장손의 아내로 살아왔다. 파란 눈의 낯선 이방인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냈고, 지금 한국인 ‘서혜나’로 당당히 서 있다. 그래서일까. 수다스러움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한다. 각박한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그녀만의 방법이었을까.“우리 엄마는 저보다 더해요. 다혈질이고 좌충우돌, 실수를 연발하죠. 딸인 제가 보기에도 걱정스러울 정도죠. 그런데 회계사인 아버지는 달라요. 조용하시고 늘 책과 함께하시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두 분을 딱 반반씩 닮은 것 같아요.”일상에서의 그녀는 천상 여자다. 아니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바쁜 방송일 가운데서도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남편 뒷바라지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15년째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틈틈이 한국 요리도 익혀 이젠 수준급 경지에 올랐고 꽃꽂이에 취미를 붙여 지난 2006년에는 카사 아트 스쿨의 플로리스트 과정을 이수했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느꼈던 생각을 모아 그녀는 에세이집 ‘행복 공감’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평소 육아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레스토랑 메뉴 컨설팅까지 제시하고 있다. 아이를 잘 키우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을 나누고 싶다는 게 그녀의 동기다.그녀의 한국 생활에는 물론 시련도 있었다. 이역에서 10여 년의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회의감에 빠졌다.“둘째 애를 낳고 보니, 방송이고 뭐고 생활 자체가 너무 지겹게 느껴졌어요. 나만의 달콤한 추억을 쌓기 전에 시간이 훌쩍 지나간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국에서도 그렇잖아요. 아줌마라고 하면 왠지 한물간 사람처럼 느끼는 거. 사실 저는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거든요. 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레슬리’와는 동갑이고, 루베이다와는 세 살밖에 차이가 안 나요. 더군다나 초창기 제 캐릭터는 다소 우스꽝스러웠잖아요. 프랑스에서도 수다 떨기를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미디언은 아니었거든요.”어려운 시기에 힘이 돼 준 것은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던 가정이었다.아이들과 남편의 외조 덕에 그녀는 우스꽝스러운 ‘프랑스인 이다도시’에서 ‘한국인 서혜나’로 한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었다.한국 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을 틈틈이 기록해 그녀는 몇 해 전 프랑스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이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유럽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쓴 이 책은 ‘한국에서 소피 마르소, 티에리 앙리, 지네딘 지단보다 더 유명한 프랑스인’이 썼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작년 말에는 다국적 출판사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계약해 프랑스 외 다른 나라에서도 출간될 계획이다. 2007년에 펴낸 ‘한국, 수다로 풀다’는 ‘고요한 아침…’의 한국판이다.그녀는 한국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았다.“15년간 살면서 한국도 참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에요. 1990년대 초반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이 ‘집안에서 살림 잘하는 사람’으로 한정돼 아쉬웠다면 요즘은 너무도 돈에 집착하는 모습이에요. 심지어 성공을 위해 자신의 얼굴을 고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얼마 전 그녀는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함께 출연한 아이들과 파트너를 정하는데 한 아이가 못생긴 개그맨과 짝꿍이 돼서 실망했다며 엉엉 울어 녹화가 잠시 중단됐던 것이다.“아이를 진정시키고 녹화를 계속하는데 사회자가 그 아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가 자기는 나중에 대통령이 돼서 자기 파트너처럼 못생긴 사람을 한국에서 몰아내든지 아니면 모두 성형을 시켜주겠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아이의 철없는 생각이겠지만 이게 우리나라 현실인 것 같아요.”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덕에 그녀는 와인에 대한 식견도 풍부하다. 얼마 전 한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 가요계 소문난 주당인 가수 이승철과 블라인드 테스팅(눈을 감고 와인을 테스트하는 것)을 통해 당당히 승리를 거뒀다.“이겨서 다행이에요. 만약 졌다고 생각해 봐요. 프랑스 사람이 와인도 제대로 모른다고 얼마나 놀려댔겠어요. 올랄라~ 그런데 사실은 당시 블라인드 테스팅이 너무 쉬웠어요. 두 개의 와인을 마셨는데, 50만 원짜리 와인은 타닌 성분이 너무 풍부했어요. 지금 마시기보다는 나중에 마시면 더 부드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두 번째는 3만 원짜리를 마셨는데 과일향이 풍부했지만 가벼운 느낌이었어요.”너무도 와인을 사랑한 나머지 그녀는 2005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테스팅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제가 소음인이거든요. 그래서 독주는 잘 못 마셔요. 가족들과 가끔 와인을 즐기는데 남편은 아직도 초보자예요. 그래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루는 프랑스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데 와인을 한 잔 했어요. 사실 프랑스에선 아침, 점심, 저녁 어느 자리에서나 와인과 식사를 하죠. 그런데 남편이 ‘어? 당신 낮술 먹네’라고 하지 뭐예요.”그녀는 요즘 자신이 알고 있는 와인을 어떻게 하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 기업체 및 와인 전문 강좌에 나가 와인에 대해 강의하는 일을 시작했다. 또 올 봄이나 가을께 초보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와인 서적도 펴낼 생각이다. 그녀는 아직 제목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누워서 와인 먹기’라고 붙이고 싶을 정도로 쉽게 썼다고 말한다.10년 후 그녀는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글쎄요. 아마 지금보다 더 바쁘게 보내고 있겠죠. 남편과 함께 프랑스 관련 비즈니스도 더 활발히 하고 있겠죠. 마음 같아선 아이 하나를 더 낳고 싶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이건 확실해요.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있을 거예요. ”<장소 협찬 : 와인바 뱅가>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