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합니다. 제가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자! 시작합시다.”약속 시간을 정확히 3분 넘겨 들어온 게일인터내셔널의 스탠 게일 회장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던지다시피 치우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뛰어왔는지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일정은 이렇게 빡빡하다. 개발 진척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매달 한국에 오지만 하루 7~8개의 회의와 접견은 기본이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미국에서의 생활도 한국하고 비슷합니다. 부동산을 개발하는 디벨로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앞으로 다룰 부동산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난주에도 송도를 친환경 정보기술(IT)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코네티컷 주 하트퍼트에 있는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본사를 방문하는 등 정신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송도가 저를 열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세계 금융의 심장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게일인터내셔널은 국제도시로의 비약을 꿈꾸는 송도의 마스터 디벨로퍼다. 동북아 허브로 개발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 방식을 도입한 첫 사례인 송도는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시금석으로 평가받고 있다.1922년 스탠 게일 회장의 조부인 다니엘 게일이 설립한 게일은 최근 6억 달러 규모의 보스턴 필리네 단지 재개발 사업을 추진해 화제를 모았으며 보스턴 다운타운에 있는 원 링컨 오피스 타워를 개발하는 등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이 밖에도 게일은 뉴저지 주 플로함공원에 있는 4억 달러 규모의 옛 엑슨모빌 기업 캠퍼스 부지 재개발 사업권을 따냈고 세계 3대 제약회사인 사노피 이벤티스 그룹의 미국 법인을 뉴저지 주 브리지워터에 유치했다.게일인터내셔널이 송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1년 24조 원 규모의 송도 국제업무단지 개발을 위해 설립된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포스코건설과 공동으로 설립한 이 회사를 통해 게일은 최첨단 미래도시 건설에 뛰어들었다.“맨 처음 송도를 봤을 때만 해도 한창 매립 공사 중이어서 반 이상이 수면에 잠겨 있는 상태였죠. 인천국제공항도 막 개항했고 인천대교도 개발 계획만 잡혀 있을 때였습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전 송도의 입지 여건을 높이 샀습니다. 허허발판인 이곳에 들어서는 친환경 국제도시를 제 머릿속에 그려봤습니다. 또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 사람들이 매우 스마트하고 미래지향적이라는 점도 제가 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이유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람들은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은 사람들(Fun loving people)인 것 같습니다.”송도 국제도시 프로젝트는 오는 2014년까지 572만㎡(옛 173만 평)의 매립지에 약 24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주도 도시개발 사업으로 65층짜리 동북아트레이드타워와 국제학교, 컨벤션센터호텔, 뉴욕 센트럴 파크를 능가하는 중앙공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동북아 트레이드타워는 2005년 착공에 들어갔으며 올 1월 현재 20%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컨벤션센터와 외국인국제학교는 사업 진척 속도가 가장 빨라 올 상반기 준공이 목표다. 또 40만㎡로 조성되는 중앙공원은 10% 정도 진척됐다.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학교가 들어선다는 소문에 주변 집값이 강보합세를 기록하는 등 이곳에 들어서는 교육 시설은 최고의 관심거리다. 송도국제학교는 게일인터내셔널이 직접 1700억 원을 투자해 건설하며 교과과정은 하버드대 어드바이저리 그룹(Harvard Advisory Group)이 설계한 프로그램이 적용되고 전반적인 학교 운영은 전 세계 200여 곳에서 국제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 서비스(ISS)가 맡는다. 7만1280㎡(옛 2만1600평)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들어서는 송도국제학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시설을 갖추게 되며 국내 처음으로 입학 정원의 30%가량을 내국인 중에서 선발할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송도국제도시가 다른 아시아 국가의 경제자유구역에 비해 차별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그는 “입지 여건 만큼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강조한다.“송도의 매력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우선 송도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입니다. 인천공항과 차로 15분가량 떨어져 있는데다 비행기로 1시간 30분이면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또 주변 50여 개 대도시에 전 세계 3분의 1의 인구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다른 경제 구역이 아무리 좋은 혜택을 내건다고 해도 송도와 같은 입지 여건을 인위적으로 만들 순 없죠. 또 매립지 위에 마스터플랜을 기반으로 도시를 조성한다는 것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송도는 외국계 기업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게일이 개발을 진두지휘한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그는 송도를 최첨단 친환경도시로 개발할 청사진을 밝혔다. 최근 송도국제도시는 미국 그린빌딩협의회로부터 LEED-ND(친환경 개발을 위한 에너지, 환경 디자인 리더십) 인증을 위한 시범 프로젝트로 선정됐다. 일반 LEED가 하나의 친환경 건물에만 인증을 부여하는 것과 달리 LEED-ND는 지역 전체를 친환경 도시로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LEED-ND는 북미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5개 곳에서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아시아에서는 송도와 중국 2곳 등 총 3곳에서 진행되고 있다.“최근 한국 내에서 송도국제도시 개발 진행 상황이 더디고 외국계 기업 유치 실적이 저조하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저 고층 건물을 많이 짓는 것이 비즈니스를 위한 최고의 환경은 아닙니다. 도시 전체를 친환경적으로 쾌적하게 조성한 뒤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이 개발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죠.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외국에서 더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작은 도시가 동북아의 허브를 꿈꾸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송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소개했습니다. 또 ‘미래의 물결’ 저자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는 프랑스 전역을 친환경 도시 ‘에코 폴리스’로 개발할 것으로 제안하면서 모범 사례로 송도국제도시를 꼽았습니다.”그는 국제도시로의 비상을 위한 가시적인 개발이 진행된 만큼 외국 유수의 기업을 본격적으로 유치할 계획도 밝혔다. “2006년 모건스탠리가 조성한 부동산 펀드가 송도에 3억500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다국적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가 송도국제도시 건설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또 아직 논의 단계여서 구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가 송도국제도시 내 구석구석을 IT로 연결하는 ‘U(유비쿼터스)-시티’ 사업에 참여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조만간 실무진을 구성해 MS 본사를 방문해 사업 추진을 논의할 계획입니다.”일각에서 ‘게일이 업무 시설 개발보다 돈이 되는 주거 시설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관련해 그는 “주거 및 오피스 시설 물량은 인천시와 체결한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조항으로 게일은 이를 분명히 준수하고 있다”며 “포스코건설의 ‘더샵퍼스트월드’의 분양 수익금 전액은 인천시에 기부채납될 컨벤션센터 건립에, 송도 자이 하버뷰의 분양 수익금은 동북아트레이드타워(NEATT) 건립에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개발되고 있는 중앙공원(개발 금액 2100억 원)도 완공 후 인천시에 기부채납할 계획이다.“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새만금 프로젝트가 가시화되고, 여수 엑스포로 여수, 광양 등 남해안 일대가 경제자유구역으로 개발되면서 송도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있는데 이 때문에 한국에 올 때마다 대통령직 인수위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를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친시장 △한·미 관계 개선 △성장 촉진 △다국적 기업 유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 보입니다.”특히 그는 “이명박 정부가 다국적 기업을 적이 아닌 친구(Partner)로 생각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게일 회장은 뉴저지 장애인 올림픽(New Jersey Special Olympics)의 의장직을 3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또 미 프로야구 리그(MLB) 뉴욕 양키즈, 미 프로농구리그(NBA) 뉴저지 네츠,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NHL) 뉴저지 데블스의 경영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송도국제도시 개발 지휘하는스탠 게일게일인터내셔널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