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2월은 졸업식과 입학식은 물론, 밸런타인데이, 설날까지 유독 선물할 일이 잦다. 하지만 1년 전에도, 그 1년 전에도 막상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는지 딱히 기억나지 않는 것은 주는 이의 진심이 덜했을 수도 있고, 받는 이에겐 임팩트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련했다. 상대의 취향을 담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그것. ‘커스텀 메이드 향’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Buds and blossoming lilac flowers in close-up
Buds and blossoming lilac flowers in close-up
향기는 기억을 일깨우고,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는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사람은 불쾌하거나 유쾌한 감정 없이 어떤 대상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로 후각은 감정과 기억을 저장하는 대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져도 냄새만은 기억할 수 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라는 노랫말처럼 살다 보면 문득문득 코끝을 자극하는 온갖 냄새들이 과거의 추억을 소환한다. 그래서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들은 ‘향기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했다.

향기 마케팅이란 소비자들의 감각기관 중 하나인 후각을 직접 자극, 구매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판매 촉진 마케팅의 한 분야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자사 브랜드 및 제품의 정체성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기업이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다. 러쉬는 1995년 영국에서 설립한 핸드메이드 화장품 브랜드로, 러쉬 매장에 들어서면 제품의 화려한 색채와 강렬한 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비누, 입욕제와 같은 고제 제품들이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진열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류 업체인 아베크롬비앤피치(ABER CROMBIE & FITCH)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향기 마케팅을 펼치며 천장에 분사기를 설치해 자사의 남성 고유 향인 ‘피어스’를 매장에 분사하기도 했다. 이는 손님들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 구매 욕구를 상승시켜 실제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호텔업계도 향기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더플라자, 웨스틴조선, JW메리어트 등 특급 호텔들은 이미 자체 시그니처 향을 만든 데 이어 디퓨저, 룸 스프레이 등 자체상표(PB) 상품으로 제작해 고객에게 판매도 하고 있다.

한 호텔 관계자는 “호텔 리뉴얼과 동시에 호텔 공간을 메우는 디퓨저, 룸 스프레이를 제작하는 데 꼬박 6개월이 넘는 시간을 할애했다”며 “향은 브랜드의 첫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고객들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에 호텔마다 고유의 향을 활용한 향기 마케팅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을 전하는 기술, 향기
조향 컨설팅 업체인 센트커뮤니케이션 대표 로베르트 뮐러 그뤼노브의 저서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에 2000가지가 넘는 새 향수 제품이 출시됐다. 그러나 1년 후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단 5%뿐이었다. 즉, 이 많은 향수들 중에서도 향을 사용하는 사람의 개성과 스타일에 꼭 맞는 향수를 찾기란 간단치 않다는 것.
In the summer, rose is blooming, close-up
In the summer, rose is blooming, close-up
따라서 최근에는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가치 소비’와 ‘작은 사치’ 유행이 맞물리면서 ‘커스텀 메이드 향’ 제품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여기에 1년 넘게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쩔 수 없이 ‘집콕’ 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이 우울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새로운 취미 찾기에 나서며 공방 등에서 나만의 향에 몰두하고 있다.

수제 액상향수를 비롯해 향초, 디퓨저, 왁스 태블릿(심지 없는 향초), 룸 스프레이 등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을 향기에 담고 있다. 서울 마포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지난해 12월 홍대의 한 향초공방에서 향초와 왁스 태블릿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A씨는 “향초를 만들고, 선물하는 과정 자체가 큰 위안이 됐다”며 “공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아늑한 냄새와 직접 손으로 왁스를 녹여 틀에 붓고, 나만의 색과 향을 골라 향초를 완성하는 동안 오감이 만족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면서 “무엇보다 선물용으로 만든 향초의 경우, 상대방의 성격이나 취향 등을 고려해 향을 조향했더니 반응이 정말 좋았다”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향을 선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선물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캔들공방 이그주드(EXUDE)의 남주경 대표는 “공방을 찾는 분들 중 선물용으로도 수제 향초를 많이 만드신다”며 “향초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과 개개인의 취향이 녹아든 향기야말로 기억에 오래 남는 선물이 될 수 있다. 단, 선물을 할 경우, 완성품에 대한 (공인 인증을 받은) 재료의 성분 및 알레르기 표기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전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냄새의 상식들
[출처: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동물들 중 후각 능력 챔피언은?
수많은 다른 생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그다지 예민한 코를 가지지 못했다. 단적으로, 인간은 약 350개의 후각수용체와 1000만 개의 후각세포를 갖고 있는데, 개는 1200개의 후각수용체와 2억2000만 개의 후각세포를 갖고 있다. 상어도 환상적인 후각을 가지고 있는데, 상어는 물과 피를 1대10조의 비율로 희석해도 피 냄새를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 세계에서 후각 분야 불패의 승자는 나방이다. 나방은 머리에 달린 더듬이로 냄새를 인지하는데, 나방의 더듬이는 너무 민감해서 1초 동안 페로몬 분자 5개가 더듬이에 닿는 것만으로도 반응을 보인다. 학계는 아직까지 그보다 더 민감한 후각을 지닌 동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냄새로도 질병을 알 수 있을까?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냄새로 질병을 진단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제자들에게 침, 땀, 오줌, 질 분비물, 상처 등의 냄새를 맡으라고 했다. 현대 서양의학계에서도 질병이 냄새 자취를 남긴다는 것을 인정한다. 당뇨병 환자는 당분 공급이 부족할 때 아세톤 냄새를 낼 때가 많다. 병든 간은 몇몇 신진대사 산물을 더는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에게서 동물의 간 냄새와 흙냄새가 나기도 하고, 사람이 갓 구운 빵 냄새를 풍긴다면 티푸스에 걸렸다는 암시일 수 있다고 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9호(2021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