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로고스 변호사]자고로 법은 만인이 평등하게, 그리고 약자에겐 좀 더 세심히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발생해 사회 문제로 제기되기도 한다. 만약 미성년자인 상속인이 부모로부터 채무만을 상속받았을 때 우리 법은 어떻게 이들을 보호하고 있을까.
채무만 상속받은 미성년자의 보호는
요즘은 피상속인이 생전에 채무가 있다는 의심이 생기면 상속인들은 상속인 조회 서비스를 이용해 금융기관에 채무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고, 확인 전에도 의심만으로도 대부분 가정법원에 한정승인 수리를 구하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상속인에게 채무가 있다는, 그것도 상속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채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채무 독촉을 받으면서 비로소 피상속인의 채무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 상속 포기를 하거나 한정승인의 신고를 할 수 있는 시간(‘상속 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이 지나버린 후에 이런 날벼락 같은 소식을 알게 된 상속인은 억울하다.

헌법재판소는 ‘1998. 8. 27. 96헌가22’ 등의 사건에서 이런 상황을 위헌이라고 판시했고, 2002년 1월 14일 신설된 민법 제1019조 제3항은 “상속인은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제1항의 기간 내에 알지 못하고 단순승인(제1026조 제1호 및 제2호의 규정에 의해 단순승인 한 것으로 보는 경우를 포함한다)을 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른바 ‘특별한정승인’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최근에 대법원에서 특별한정승인과 관련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됐다(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19다232918 판결). 그 사안은 다음과 같다. 피상속인은 1200여만 원의 약속어음금 채무가 있었고 1993년 2월 18일 사망했는데 상속인은 그 배우자와 어린 자녀들 2명이다. 채권자는 공동상속인 3명을 상대로 약속어음금 청구의 소를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았고, 2003년 11월경 시효 연장을 위해 공동상속인들을 상대로 다시 소를 제기했고 이행권고결정을 받아 확정됐다.

당시 미성년 자녀들의 법정대리인이자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자녀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다. 피상속인 사망 당시 6세였던 자녀(원고)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성장해 성년이 된 후 은행에 예금을 했고, 약속어음금 채권자(피고)는 이 예금에 압류, 추심을 하면서 비로소 상속채무의 존재를 알게 되자 가정법원에 특별한정승인의 신고를 했다. 신고는 수리됐다.

이에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이 사안에 대해 대법원은 “상속인이 미성년인 경우 ‘상속채무 초과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제1019조 제1항의 기간 내에 알지 못하였는지’와 ‘상속채무 초과 사실을 안 날이 언제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법정대리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상속인은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다. 또한 법정대리인이 위와 같이 상속채무 초과 사실을 안 날을 기준으로 특별한정승인에 관한 3월의 제척 기간이 지나게 되면, 그 상속인에 대해서는 기존 단순승인의 법률관계가 그대로 확정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러한 효과가 발생한 이후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더라도 상속 개시 있음과 상속채무 초과 사실에 관해 상속인 본인 스스로의 인식을 기준으로 특별한정승인 규정이 적용되고 제척 기간이 별도로 기산돼야 함을 내세워 새롭게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가령,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렵게 살았던 청년, 자신을 위해 한정승인이나 포기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고, 상속채무가 발생했을 때 특별한정승인조차 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둔 청년, 씩씩하게 성장해 제 앞가림을 하려고 하는 때에 갑자기 아버지의 채권자가 나타나 상속채무를 갚아야 하는 청년을 상상해 본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다시 헌법재판소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에 이런 상황에 대해 위헌을 주장한 일선 법원의 의견을 본다.

“적극재산의 상속은 상속인을 위한 것이고, 소극재산의 상속은 상속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민법의 조항은 상속의 효력 발생 여부를 둘러싼 법적인 불안정 상태를 가급적 빨리 해소하고 이해관계인, 특히 상속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피상속인의 소극재산이 적극재산보다 많은 경우에 상속인의 의사는 단순승인이 아니라 한정승인 내지 포기로 해석해야 하고, 상속채권자는 피상속인을 신뢰해 그의 일반재산을 담보로 보고서 그와 거래한 것이지, 그의 사망 후 상속인이 채무를 승계할 것을 기대하고서 거래한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상속채권자의 보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의 범위 안에서 채권 회수를 보장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나아가 상속인의 고유재산으로 상속채권자에 대한 피상속인의 채무를 갚도록 하는 것은 부당한 희생의 대가로 명분 없는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법의 규정은 채무자 본인의 의사나 그의 귀책사유 없이 그에게 채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는 근대사법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

필자 역시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단순승인을 원칙으로 하는 상속법제를 고쳐서 한정승인을 원칙으로 하고 상속의 효력 발생을 빨리 하려는 당사자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단순승인을 선언할 수 있도록 법제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법원 판결과 같은 사건처럼 상속인이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한정승인만 가능하도록 정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민법은 미성년자인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해 미성년자인 상속인의 법정대리인은 한정승인만 가능하고 상속재산이 채무를 초과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만 법원의 허가를 받아 단순승인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독일 민법은 미성년자의 상속채무에 대한 책임을 그 미성년자가 성인이 되는 시점에 가진 재산에 한정하도록 합리적으로 정하고 있다(권영준, ‘2020년 민법 판례 동향’, 민사실무연구회 발표문에서 인용).

비록 이번 대법원 사건에서 원고의 딱한 처지가 재판을 통해 구제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채무만 상속받은 미성년자를 특별히 배려해야 할 필요성은 확인됐다고 할 것이다. ‘상속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9호(2021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