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안주영 코트(KOTE)대표 인터뷰

공간을 통해 위안과 유희, 그리고 인사이트(insight, 영감)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코트(KOTE)’는 이러한 사람들의 니즈를 120% 충족시키는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자, 공유 오피스 공간이다. ‘한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코트의 찐 매력을 살펴봤다.
[special]"공간을 통한 나눔, 공정무역 꿈꿔요"
[코트의 외관. 100년된 오동나무가 건물 중앙부에 위치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사진 이승재 기자]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니, 정말 어디든 가고 싶은 날들이 거짓말처럼 흐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상에 수많은 덫이 놓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가 생겼고, 이동의 자유도 엄격히 제한됐다. 공간이라고 다를까.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양분됐던 공간의 개념도 이제는 그 경계가 무너져 융합되고 있다. 특히 온라인 공간의 폭발적인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대화하고,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얻을 수 있는 위로와 유희, 영감 등은 오프라인 공간만의 강점이자, 존재의 이유다. 넷플릭스, 왓차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사업(OTT)과 홈시어터 수요가 급격히 늘어도, 사람들이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 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집단 경험’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은 사람을 사유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적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방은 물질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온전히 혼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심정적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예술적 창작의 영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누구나 그것을 실현할 수는 없는 것은 대개 물질적 한계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화예술 창작가들에게 ‘자기만의 공간’은 필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공간 비용은 턱없이 비싸기만 하다. 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안주영 코트 대표는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그리고 그 새로운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코트다.
[special]"공간을 통한 나눔, 공정무역 꿈꿔요"
[special]"공간을 통한 나눔, 공정무역 꿈꿔요"
[코트 본관 1층 코트 스페이스의 모습. 예술가들의 작품전은 물론 브랜드 팝업숍, 론칭쇼 등 다양한 이벤트들로 가득하다. 사진 이승재 기자.]

코트는 꽃(kkot)과 뜰(courtyard)의 합성어로 ‘뜰에 핀 꽃’, ‘경계의 뜰에 핀 오동나무꽃’을 의미한다. 인사동 초입, 피맛골 주점촌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형평사운동의 본거지로 3·1운동 학생지도자들의 결집 장소였던 승동교회와 담을 마주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오동나무를 중심으로 △코트 스페이스(KOTE SPACE, 총 4층) △코트 카페&가든(야외 및 총 2층) △코트 키친(총 2층) △코트 아뜰리에(해봉빌딩, 총 5층)로 나뉜다. 각 공간마다 브랜드 팝업, 편집숍, 촬영스튜디오는 물론이고, 북토크, 워크숍, 강연회 대형 전시회까지 다양한 문화 공간이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이사이 실내외 카페와 키친, 루프톱 등에서 커피와 와인, 디저트, 오픈 키친 등도 운영중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는 이곳은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독특한 아우라로 방문객과 커뮤니티 멤버들을 매료시킨다.

물론, 코트도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공간 오피스다. 럭셔리 브랜드의 쇼케이스 등 대형 행사의 대관비는 다른 곳과 비교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 입주한 커뮤니티 멤버들과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안 대표에 대해 이른바 ‘공간의 독립투사’라고 표현했다.

서울에서도 땅값 비싸다는 인사동에서 일반 사무실의 절반도 되지 않는 비용으로 임대료를 받을뿐더러 아직 형편이 어려운 아티스트들에게 종종 무료로 전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코트 스페이스 2층의 후면에 있는 창작자들의 공유 공간인 코트랩의 경우, 가입비, 보증금, 관리비 없이 언제든 입주 가능하며 월 30만 원으로 2명이 사용할 수 있다. 공간의 문턱을 낮추고, 각 분야 창작자들의 교류가 자유롭게 넘실대니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공실이 별로 없을 정도다. 정작 안 대표는 아직 적자다. 그러나 그는 공간을 통해 경계를 허물고, 사람을 잇고, 예술을 만드는 것이 인생의 큰 소명이라고 했다. 가능하면 ‘공정’하고, 자유롭게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공간의 힘과 나눔에 대해 얘기해봤다.

우선 코트의 설립 배경이 궁금합니다.
“20대에 인생의 스승이신 UPA(전 우일문화사) 창립자 신창호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덕분에 일생의 축복으로 피천득, 조병화 선생님 등 문인 및 예술인들도 뵐 기회가 있었죠. 신 회장님은 그분들과 대학로 샘터사 1층에서 자주 만나셨는데, 그때 샘터사가 1층을 마당과 길로 만들어 공공의 공간으로 쓰일 수 있게 한 점에 크게 감명을 받아 ‘공간을 통한 나눔’, ‘공간의 공정무역’이 제 인생의 꿈이 됐습니다.

그 꿈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믿고 열심히 일하던 중, 8년 전 명동성당 지하에 신자지원시설을 구성하는 용역을 할 기회를 만나면서 경제적 자유가 없이도 용역비를 받으며 제 꿈을 이루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났다고 믿고 전념했으나 뜻대로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저를 보았던 한 건축가가 제가 좋아할 거라며 2016년 후반에 이 공간을 처음 소개했는데, 처음 본 순간 매료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공간이 저의 삶이 됐습니다.

여기서 가장 처음 매료됐던 것은 오동나무였는데, 헤르만 헤세의 ‘나무는 죽지 않는다. 기다린다’라는 말을 믿고 있습니다. 코트의 공간 중 하나인 ‘내면의 서재’에서 드립커피를 내리시는 심재용 선생님도 고등학교 시절 설악산에서 3개월을 지내시던 중 산악계 원로 유창서 씨의 권금성산장에서 처음 핸드드립커피를 경험하셨답니다. 그때는 핸드드립커피가 국내에 없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그 산장의 잔상이 남아 지금의 이 일을 하고 계신대요. 저도 그런 감정이에요. 비록, 지금 현실은 어렵지만 공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라운 일들을 발견하면서 삶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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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영 코트 대표의 모습. 사진 이승재 기자]

사실 요즘 복합 문화교류의 장이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코트만의 특징, 혹은 차별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코트는 멤버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내면을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자 합니다. 내면의 서재에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고, 공간전시를 기획하거나 전시에 참여하기를 권장해요. 공유 공간 코트랩에서 6.6㎡를 사용해도 전체 공간을 쇼룸처럼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하죠. 누구나 기획자로서 특별한 날을 정해 자신의 날을 만들어보는 건데 올해 4월 24일에는 서울외국인학교 마가렛 교감선생님이 ‘UPDREAM SELF-CARE DAY’를 준비 중입니다. 펀드레이징(모금행사) 요가클래스와 재즈 공연, 아프리칸 댄스, 색소폰, 핸드드립 클래스를 진행해, 수익을 보육원에 기부할 계획입니다.

5월 1일에는 프렌치 커뮤니티가 ‘Inter-national May Day(국제노동절)’를 준비하고 있어요, 프렌치 영화 상영, 밴드 공연, DIY 드로잉, 프렌치세프의 요리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데 이 역시 수익은 기부할 예정입니다. 프렌치 커뮤니티는 오랫동안 코트에서 북마켓과 무비나이트를 진행해 왔고 카페 코트에는 이탈리안 와인 카운셀러가 함께 합니다. 무엇보다 이곳엔 나이, 국적, 영역의 경계가 없습니다. 코트는 피맛골 정신을 이어받은 ‘NO VIP’의 공간으로 거장과 신진이 동등하게 교류하고 특별한 멤버 자격 조건은 없으며 아마추어이고 비전문가라도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곳입니다.”

공간 나눔, 공간의 공정무역을 이루고 싶다는 얘길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공간 제공자와 사용자가 연대의식을 가지고 동등한 파트너 관계로 불공정행위를 최대한 없도록 하는 것이죠. 다만 저희는 코로나19 이전에 높은 임대료로 장기 임차해 다시 전대를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건물주와의 관계와 전차인이나 공간 사용자와의 중간에서 매우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창의적인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시점인데 저희도 어렵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공간 사용자들에게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정한 거래를 추구하고 있고, 전차인이나 사용자가 벌어서 임대료를 낼 수 있도록 함께 돕고 싶고 탄력적인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버티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을 논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실천하고자 합니다.”
[special]"공간을 통한 나눔, 공정무역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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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커뮤니티 멤버들과 다양한 창작자들이 만들어가는 라이브러리 공간 ‘내면의 서재’. 아래는 ‘내면의 서재’에서 핸드드립커피를 내리는 심재용 바리스타.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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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내 공유오피스 공간. 사진 이승재 기자]

이곳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 반대로 가장 보람됐던 점이 있다면요.
“가장 힘든 일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어려운 여건에서 노력하는 재능 있고 의식 있는 팀들을 마음만큼 지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이곳에서 이뤄진 다양한 전시와 공간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또한 해봉빌딩의 경우 임대인과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해요. 모든 의무를 다하고, 생사를 걸고 노력하는 만큼 임대인의 협조가 중요한데, 그런 일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처리되지 않아 저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 무엇보다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것과는 별개로 대개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들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솔직히 객관적인 지표를 놓고 보자면 아직 딱히 이렇다고 말할 만한 것들은 부족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놀라운 사람들이 모이고 언뜻 지나가는 신의 옆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종종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협업과 이벤트를 나누죠.

가령, 소통 전문가 김창옥 교수님이 여기서 아티스트들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알려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고,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가 ‘우리들의 눈’의 설립자이자 시각예술가 엄정순 선생님과 SPI의 김정은 대표님과 만나기도 했죠. 4월 첫째 주 주말에는 빠키 작가님과 씨투의 곽동엽 대표님, 튠웍스의 김지경 대표님 등의 코트 멤버들이 재능을 기부한 멋진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과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일이죠. 제가 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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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를 둘러싼 옛 피맛골 거리 모습.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있다. 사진 이승재 기자]

사람들에게 공간이 주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 개인적으로 코트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에 남는 말은 이 공간이 찾는 사람들에게 ‘너 있는 그대로 괜찮아. 멋있어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4년 전 이곳에서 피맛골에 매료돼 피맛골에 관한 글들을 읽었어요. 그중 전종한 교수님의 ‘도시 뒷골목의 장소기억-종로 피맛골의 사례’는 사람들에게 공간이 주는 힘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장소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재에 존속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장소의 능력은 기억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기억은 장소 지향적이며 장소 기반적이다. 장소 안에서 기억의 생생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사회 속에 속했던 다양한 사회문화 집단들의 삶의 기억이 쌓여 있다. 피맛골은 서발턴(서민, 하층민)의 공간, 탈주의 공간, 망각과 배설의 공간, 회상과 생성의 공간, 화석의 공간, 삶의 공간이다. 억압적 일상으로부터의 탈주의 공간이다. 피맛골은 자신의 처지와 세상을 잊을 수 있는 망각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런 망각의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그 망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사는지 다시 기억하게 한다. 이곳에 배인 사람 사는 냄새와 흔적들, 수많은 사연들을 경험하면 다시 생성의 힘을 얻어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옛날의 추억과 진정한 삶을 기억하게 하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내일을 생성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것’ 아마도 공간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이 공간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여력이 없는 신진 아티스트들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사실 저 자신도 평생 아웃사이더였고, 저처럼 다른 곳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이 자유를 느끼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special]"공간을 통한 나눔, 공정무역 꿈꿔요"
글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