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은 제일 먼저 산업화를 이룬 도시로 유명하지만, 안개가 많이 끼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공장 연기(smoke)와 안개(fog)가 결합한 ‘스모그(smog)’라는 말이 런던의 대기오염에서 생겨났다. 안개 자욱한 도시의 풍경에 빠진 예술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클로드 모네, 웨스트민스터 다리 밑 템스강, 1871년, 런던 내셔널갤러리
클로드 모네, 웨스트민스터 다리 밑 템스강, 1871년, 런던 내셔널갤러리
화가를 사로잡은 런던의 안개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년)는 처음 보는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발전하는 도시 곳곳에서 새로 들어선 주요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 1834년 대화재로 소실됐던 영국 국회의사당이 최신 설비를 갖춘 건물로 개축됐고, 웨스트민스터 다리와 빅토리아 부두도 이제 막 신축됐다. 무엇보다 모네를 매료시킨 것은 자주 하늘을 뒤덮는 안개였다. 특히 템스강 주변에 안개가 잦았는데, 그 인상을 포착해 처음 그린 그림이 <웨스트민스터 다리 밑 템스강>이다.

그림에는 강변의 일상 풍경이 차분하게 펼쳐진다. 국회의사당의 높은 시계탑과 부두의 구조물, 웨스트민스터 다리와 강에 떠 있는 배들이 수직과 수평의 안정된 구도를 이룬다. 희뿌연 안개에 싸여 하늘과 물이 경계 없이 단일한 색조로 이어지고, 사물들은 흐릿한 실루엣이 된다. 아련한 고딕 양식의 의사당 건물과 아치형 다리는 옛이야기 속 아름다운 궁전처럼 신비롭게 보인다.

안개가 명료한 시각을 차단하지만, 그 사이로 스며드는 은은한 빛이 풍경의 원근을 분명히 구분해준다. 원경의 다리와 건물, 국회의사당은 옅은 색조를 띠며, 중경의 증기선 두 척은 좀 더 진한 중간 톤을 띤다. 오른쪽 근경의 부두 구조물과 일하는 사람들, 수면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검정에 가까운 짙은 회색이다. 마치 반투명한 대기의 베일이 층층이 겹쳐 드리워진 것 같다. 안갯속 빛의 미묘한 변화가 사물을 기본적인 형태로 단순화한다.

모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야외의 빛과 대기의 효과를 그 순간 보이는 대로 포착하는 것이었다. 런던에서 본 윌리엄 터너(J. M. W. Turner, 1775~1851년)의 몽롱하면서도 과감한 풍경화들이 모네의 화필에 더욱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윌리엄 터너, 워털루 다리 너머 템스강, 1830~1835년경, 런던 테이트 브리튼
윌리엄 터너, 워털루 다리 너머 템스강, 1830~1835년경, 런던 테이트 브리튼
클로드 모네, 워털루 다리, 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클로드 모네, 워털루 다리, 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충돌하는 안개와 연기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현지 화가들에게도 다양한 변주를 일으키며 영국 특유의 풍경화를 성장시켰다. 낭만주의 풍경화가 터너는 햇빛, 안개, 비, 폭풍, 눈보라와 같은 자연현상을 역사적 사건이나 기념비적 장면과 결합했다. 자연의 위력과 함께 인간의 업적을 장대하게 묘사해 풍경화를 역사화로 격상시켰다.

런던에서 태어나 활동한 터너에게 템스강과 주변 풍경은 항상 접하는 훌륭한 소재였다. 템스강의 안개를 다룬 그림으로 <워털루 다리 너머 템스강>이 있다. 마치 스케치풍 수채화 같지만, 사실은 유화 작품이다. 화면 전체가 흐릿한데, 오른쪽 맨 앞에 작은 배와 노 젓는 사람들이 어둡게 보이고, 왼쪽에는 검은 형태 뒤로 좀 더 큰 배가 보인다. 중앙의 물길을 워털루 다리가 가로지르고 있는데,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희미하다. 그 언저리에서 하얀 안개가 화면 한가운데를 지우듯이 넓게 피어난다. 그런데 왼쪽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라 안개를 침범한다. 오른쪽에도 회색 연기가 위아래로 퍼져 안개 주위를 휘감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런던의 대기오염이 심해지는 가운데 시민들은 이런 장면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폴레옹을 격퇴한 기념물인 워털루 다리, 산업혁명의 성과인 증기선과 공장은 근대 영국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그 모두가 터너의 그림에서는 안개와 매연 속에 희미해져 간다. 당시 시민들은 아직 대기오염의 위기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터너의 그림을 보면 암암리에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래선지 터너는 이 작품을 끝내 미완성으로 남겨뒀다.

안개를 대하는 여러 관점들
런던을 그린 터너의 그림에서는 대기오염의 심각함이 엿보이지만, 외국 화가인 모네의 경우는 좀 다르다. 모네에게는 스모그가 사회문제라기보다는 예술 창작을 위한 미적 소재였다. 1871년 프랑스로 돌아간 모네는 이듬해 항구에서 해가 뜨는 순간을 재빨리 포착해 불후의 명작을 완성했다. <인상: 해돋이>라는 그림으로, 미완성 수채화 같은 거칠고 자유로운 필치가 터너를 연상시킨다. 이 그림은 ‘인상파’라는 명칭을 탄생시켜 인상주의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899년부터 1905년까지 모네는 다시 런던을 몇 차례 방문한다. 안개의 도시에서 햇빛과 대기의 만남을 수시로 관찰하고 회화의 조형성을 실험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모네는 템스강을 바라보며 ‘워털루 다리’ 연작, ‘차링크로스 다리’ 연작, ‘국회의사당’ 연작을 각각 수십 점씩 제작했다. 런던의 화가들은 잦은 안개가 빛을 가리고 색을 산란시킨다고 불평했지만, 모네는 오히려 안개와 연기가 안 보이면 그림을 못 그릴까 걱정했다.

그는 “안개가 없다면 런던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안개가 런던에 위대한 숨결을 불어넣는다”라고 말할 만큼 런던의 안개를 사랑했다. 그에게는 스모그마저도 더러움과 추함을 가려주고 빛에 따라 색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베일이었다. 안개는 세상을 보는 근본적 시각을 유도해 진정한 예술로 나아가게 했다.

2007년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1950년~)는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인공 안개가 가득 찬 유리로 된 방을 전시했다. <눈먼 빛>이라는 작품인데, 그 방에 들어가면 너무나 밝은 백색 안개가 자욱해 몇 걸음 앞도 볼 수가 없다. 밝은 빛이 오히려 암흑처럼 눈을 멀게 한다. 관람자는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주변을 더듬으며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게 된다. 시각이 무력해지자 촉각과 청각이 발동한다. 그들은 서로의 몸과 음성에 기대어 합심해서 출구를 찾아 나간다.

곰리의 작품에서 안개는 우리 감각의 한계를 인식시키며, 잠시나마 공통의 환경에서 타인과 공감하고 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논리적 사고가 허물어질 때 비로소 동물적 감각이 소중해지고 공동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안개를 대하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는 ‘오리무중’의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출구를 모색하려는 노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예술을 뛰어넘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