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빅테크 기업 군기 잡기…리스크 어쩌나
중국 공산당이 자국 내 빅테크 기업들에 대해 규제 강화에 돌입하는 등 군기 잡기에 나섰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로 ‘붉은 자본주의’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기차역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항을 관리할 수 없듯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관리할 수는 없다. 중국 대형 은행들은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며 여전히 전당포식 운영을 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전 회장이 지난해 10월 24일 상하이 ‘와이탄 금융 서밋’에서 중국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비판했던 대목이다. 이 발언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최고지도부가 격노하자,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은행관리감독위원회, 외환관리국 등 4개 기관은 지난해 11월 2일 마 전 회장 등을 불러 관리·감독과 관련한 ‘예약 면담’을 진행했다.

중국에서 ‘웨탄(豫談)’이라고 부르는 예약 면담은 정부 기관이 감독 대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을 불러 질타하고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이후 알리바바의 핵심 핀테크(fintech, 금융기술) 계열사인 앤트그룹의 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 동시 상장 절차가 돌연 중단됐다. 앤트그룹은 중국 최대 전자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 전격 중단은 시 주석이 직접 내린 결정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었다. 이후 마 전 회장은 잠적하다시피 종적을 감추었고, 알리바바는 지난 4월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시장감독관리총국으로부터 역대 최대인 182억2800만 위안(3조1000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는 등 각종 규제에 시달려 왔다.

알리바바는 존폐의 위기에 몰리자 시 주석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마 전 회장과 철저하게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알리바바가 7월 27일 공개한 ‘2021 회계 보고서’의 주요 주주 명단에서 마 전 회장의 이름을 삭제했다. 게다가 이번 보고서에선 알리바바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에서도 마 전 회장의 사진이 사라졌다. 지난해 연례 보고서에선 마 전 회장의 사진들이 곳곳에 들어 있었다. 창업자인 마 전 회장은 알리바바의 산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유령’이 된 셈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빅테크 기업인 텐센트의 창업자인 마화텅 회장의 재산도 대폭 줄어들었다. 텐센트는 중국 최대의 게임 업체이자 중국의 국민 메신저 위챗을 운용하고 있다. 마 회장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홍색 자본가’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데도 마 회장은 지난 3월 시장감독관리총국에 불려가 ‘면담’을 갖고 ‘독점금지법’ 등을 준수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마 회장은 텐센트의 핀테크 계열사인 차이푸퉁 법인대표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등 자세를 낮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신문인 경제참고보가 7월 3일 온라인 게임을 ‘정신적 아편’, ‘전자 마약’이라고 비판하자 텐센트의 주가는 폭락했다. 경제참고보는 “일부 학생들이 텐센트의 ‘왕자영요(王者榮耀)’를 하루 8시간씩 한다”며 “온라인 게임이 학생들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신화통신은 그동안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 온 대표적인 관영 언론 매체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알리바바에 이어 텐센트에 대한 규제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올 초 1조 달러에 육박했지만 이런 보도 이후 5505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8월 3일 기준)에 따르면 마 회장(재산 458억 달러)은 중국 부호 2위에서 3위로 밀렸다. 2위는 마윈 전 회장(478억 달러), 1위는 중국 최대 생수 회사인 농푸스프링의 중산산 회장(715억 달러)이었다. 마윈 전 회장과 마 회장의 재산은 지난해 11월 2일 기준으로 각각 132억 달러, 138억 달러나 감소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대형 정보기술(IT) 업체인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 강화에 돌입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7월 30일 25개 빅테크 기업 대표들을 소집해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으라”며 사실상 ‘자아비판’을 요구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공산당의 대중 통치 수단 중 하나였던 자아비판이 시 주석 체제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불려온 빅테크 기업들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핀둬둬, 바이두, 신랑웨이보, 콰이서우, 징둥, 화웨이, 디디추싱, 메이퇀, 오포, 비보, 샤오미, 트립닷컴, 넷이즈 등이다. 공업정보화부는 “데이터 안보 위협, 시장질서 교란, 이용자 권익 침해 등을 단속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업정보화부는 각 기업 대표들에게 광고 팝업, 데이터 수집과 저장, 외부 링크 제한 등 8개 항목으로 분류된 단속 리스트를 숙지해 잘못을 스스로 효율적으로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공업정보화부는 7월 26일 향후 6개월에 걸쳐 인터넷 산업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고, 7월 28일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10개사를 별도로 소환해 데이터 보안 조치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7월 30일 시 주석 주재로 회의를 열고 중국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하반기 경제 운영 방침을 확정했다. 이런 방침을 결정한 것은 사실상 자국 기업들의 해외 증시 상장을 막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줄을 이었던 중국 기업들의 미국 증시를 통한 IPO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이 강경한 조치를 내린 것은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추싱 때문에 비롯됐다. 디디추싱은 6월 30일 중국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 뉴욕 증시에 IPO를 통해 상장하면서 무려 44억 달러를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디디추싱의 상장 다음 날인 7월 1일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톈안먼 망루에서 연설을 통해 “중국을 괴롭히면 강철 만리장성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이라고 미국을 향해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었다. 시 주석의 이런 초강경 경고는 디디추싱의 상장으로 빛이 바랬다.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은 디디추싱의 국가안보 위반 혐의 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디디추싱의 차량 호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과 이 회사가 운영하는 25개 앱에 대한 다운로드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와 관련,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디디추싱의 상장을 양봉음위(陽奉陰違: 겉으로 복종하지만, 속으론 따르지 않는 행위)로 간주해 이런 조치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양봉음위는 2013년 12월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모부이자 제2인자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숙청할 때 적용한 죄목이다.

미운털 박힌 빅테크 기업,
홍색 규제에 몸사려

중국에서도 시 주석이 2014년 7월 “일부 당 간부들이 양봉음위와 당 중앙을 모함하는 행위 등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시 주석의 이런 발언이 나오자 중국 공산당은 같은해 12월 저우융캉 정치국 상무위원과 2017년 7월 쑨정차이 충칭시 당서기를 양봉음위라는 죄목으로 숙청했다. 일당독재 체제인 북한과 중국에선 조선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이 국가 전체를 영도하며, 당의 뜻에 반하는 행위는 엄벌에 처해진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전면적인 ‘홍색 규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 체제 강화 전략과 시 주석의 장기 집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민간 기업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중대 위협 요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미국에 도전하고 자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의 발전을 적극 지원해 왔다. 이에 따라 이른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공룡 기업들이 탄생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문어발식 확장 경영을 하며 덩치를 키웠고, 독과점 문제를 야기했다. 빅테크 기업들은 또 핀테크 간판을 걸고 금융업까지 진출하는 등 공산당에 도전할 수 있는 거대한 ‘권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빅테크 기업들의 ‘권력’은 중국인의 생활과 분리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사용자는 12억 명이나 된다. 중국에선 위챗을 이용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알리바바의 점유율은 60%에 달한다. 2위 업체인 징둥닷컴의 점유율도 25%다. 온라인 거래가 전체 소매판매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이들의 시장 지배력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 더우인(중국판 틱톡) 이용자는 하루 6억 명이나 된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부(富)를 독점하면서 빈부 격차 확대와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부작용도 커졌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은 빅테크 기업들 때리기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로펌인 윌머 헤일의 레스터 로스 파트너는 “중국 빅테크 기업들의 기술 혁신과 데이터에 대한 고도의 통제력은 공산당의 지배력과 국영 기업에 위협이 된다”면서 “중국 공산당은 민간 기업이나 사업가가 당의 핵심 가치에 도전할 수 있는 독립적 세력이 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주닝 상하이 교통대 금융연구원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빅테크 기업들이 정부 정책을 거스를 정도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을 우려해 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에서 공산당이 주도하는 체제 안정에 위협적인 개인이나 기업 누구나 처벌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중국 공산당이 사회 안정과 통제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최근 사태를 통해 중국 공산당이 체제 유지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켰다”고 강조했다. 빅터 시 미국 UC샌디에이고대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당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민간 기업에 수시로 철퇴를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내년 3연임을 결정하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시 주석으로선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되지 않도록 민심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필요가 있다. 시 주석의 의도는 경제와 사회적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려 장기 집권을 이어가겠다는 속셈이다.

시 주석이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주창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WSJ은 “시 주석이 중국 전반에 걸쳐 더욱 강력한 통제력을 손에 넣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손보기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빅테크 기업들을 비롯해 중국 경제가 앞으로 ‘시진핑 리스크’에 좌우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번 사태로 중국 공산당의 ‘붉은 자본주의(red capitalism)’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중국의 ‘붉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면서도 공산당의 일당독재 체제에 의한 통제를 강력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튼 이번 사태를 볼 때 중국 경제를 이끌어 온 빅테크 기업들이라도 공산당의 통제를 벗어날 경우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