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에너지 가격 급등…그린플레이션 도래
중국 최대 양초 생산 업체인 칭다오킹킹의 주가가 최근 들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 곳곳에서 전력대란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 직할시, 자치구 31곳 가운데 20여 곳에서 전력 공급이 제한되고 있고, 기업들이 전력 부족으로 생산 활동까지 멈추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중국 기업들의 공장 가동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가 마비됐던 지난해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9.6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매년 국경절 연휴(10월 1∼7일)에 주요 도시에서 열렸던 조명쇼도 모두 중단됐다. 도로의 신호등과 가로등이 꺼지는가 하면 일반 가정에도 전력 공급이 수시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남부에 비해 전력 사정이 훨씬 나쁜 동북 3성의 경우, 각 가정에서는 전기가 끊길 것을 대비해 양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칭다오킹킹을 비롯해 양초 생산 업체들은 주문이 밀려드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중국에서 전력대란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호주에 대한 보복 조치로 석탄 수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전체 발전량 중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57.7%에 달했다. 그런데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한 이후 대체 수입원을 찾지 못하면서 석탄 부족이 전력난을 초래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오는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세계 1위 탄소배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의 원년’으로 삼고 에너지 소비 감축 정책을 강하게 추진해 왔다. 하지만 올 들어 코로나19 방역 강화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에너지 사용이 급격하게 늘었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설정한 에너지 소비 감축 정책과는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중국 정부가 무리하게 에너지 소비 감축을 추진했지만 반대로 에너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수요와 공급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져 전력대란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수력,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를 대폭 확대해 왔지만 기후변화 때문에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풍력발전소는 바람이 불지 않아 가동을 멈췄고, 수력발전소는 가뭄으로 저수량이 부족해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화석에너지 가격 급등…그린플레이션 도래
전 세계 에너지 확보 전쟁…저유가 시대 끝나나
중국 정부는 전력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석탄, 천연가스, 석유 등 화석에너지를 확보하라고 국영 에너지 기업들에 강력하게 지시했다. 에너지를 담당하고 있는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부총리는 국영 에너지 기업들을 긴급 소집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가 운영에 충분한 석탄, 천연가스, 석유 등 연료를 확보하라”면서 “특히 겨울을 대비해 전력 공급 확보에 나서라”고 명령했다.

신바오안 중국 국가전력망공사 회장도 “현재 전력 공급 업무는 가장 중요하고도 긴박한 정치 임무가 됐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정치 임무’는 경제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을 말한다. 이런 지시에 따라 중국 국영 에너지 기업들은 석탄, 천연가스, 석유 등을 대거 구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석탄, 천연가스, 석유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탄, 천연가스, 석유 수입국이다. 게다가 유럽 각국도 올해 북해의 바람이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약해져 풍력발전량이 급감하면서 전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은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할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 각국은 2000년대 이후 화력발전소에서 석탄과 석유 대신 온실가스 배출이 상대적으로 덜한 천연가스를 사용해 전력을 생산해 왔다.

그런가 하면 국제유가는 크게 오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플러스(+)는 10월 4일 화상 각료회의에서 오는 11월에도 지난 7월 합의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OPEC+는 지난 7월 합의를 통해 하루 평균 40만 배럴씩 증산하기로 결정했었다. 다시 말해 추가 증산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다.

OPEC+는 고유가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을 늘릴 경우 유가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석유 수출로 벌어들일 수 있는 오일 머니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유가가 폭락했었을 때 입은 손해를 이참에 벌충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OPEC의 수장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석유 수요 감소와 저유가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사우디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7%를 기록했으며, 교역액 및 무역수지도 5년 내 최저치를 보였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794억 달러(86조 원)로 GDP의 12%에 달했다.

비OPEC의 맹주인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지난해 GDP 성장률은 -3.1%로 2009년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 비중은 지난해 전체 수출의 49.7%, 재정수입의 31.9%, GDP의 9.4%를 각각 차지한다. 다른 OPEC+ 산유국들도 코로나19와 저유가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어 왔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각국이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와 이동 금지 등 강력한 방역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배럴당 20달러까지 폭락했었다.
화석에너지 가격 급등…그린플레이션 도래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 다시 올까
국제유가는 올 2분기부터 상승세를 보여 왔다. 세계 석유 수요가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반면, 석유 공급은 시장 예상치를 계속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각국에서 사람들의 이동이 늘어나며 자동차, 항공기 등 운송용 석유 수요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또 플라스틱, 섬유 등에 쓰이는 각종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도 향후 10년간 높은 증가율을 보일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OPEC은 지난 9월 월간 보고서에서 3분기 석유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내년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1억80만 배럴로 2019년 세계 수요량(1억30만 배럴)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OPEC은 석유 수요가 내년 하반기에나 2019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그 시점을 상반기로 앞당겼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석유 수요가 내년 말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적어도 2026년까지는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석유 공급은 상당히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석유 채굴에 투자한 금액은 3290억 달러(385조5000억 원)로 8070억 달러(954조 원)를 기록한 2014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미국 등 각국이 석유 개발보다는 친환경 에너지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각국이 친환경 정책 때문에 석유에 투자를 줄이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자칫하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갈 수도 있다. 미국 투자은행(IB)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겨울이 예년보다 추우면 석유 수요가 급증해 내년 초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BoA는 당초 내년 중반은 돼야 유가가 1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 시기를 6개월 앞당겼다. 세계 최대 석유 거래 기업인 비톨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는 “유가 100달러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원자재 등 상품 거래 업체인 트라피구라의 제러미 위어 회장도 “유가가 100달러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는 2014년 이후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적이 없다.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공급이 과잉되면서 100달러 시대는 끝났다는 말을 들어 왔다. 하지만 앞으로 내년 초나 중반께 유가 100달러 시대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중요한 점은 화석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물가가 대폭 오를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각국에서 벌써부터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서는 9월 물가상승률이 29년 만에 최고치인 4.1%를 기록했다. 유로존의 물가상승률도 올해 말까지 애초 유럽중앙은행(ECB) 목표치의 2배인 4%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내년까지 인플레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요 20개국(G20)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올해 3.7%, 내년 3.9%로 상향 조정했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식품 물가가 급등하면서 엥겔지수(전체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높은 중진국과 저개발국 장바구니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간 경제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친환경의 역설? 그린플레이션이 경제 위협
세계가 이른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으로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신조어다. 각국이 탄소중립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적극 나서면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에너지가 수급난으로 가격이 오르고, 구리나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값이 오르면서 물가까지 폭등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에너지 수요를 못 쫓아가면서 투자 감축으로 공급이 줄어든 화석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이에 따라 전기요금 상승 등으로 물가까지 크게 오르고 있다. 말 그대로 녹색 바람이 초래한 그린플레이션의 역설이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의 화석에너지 가격 급등은 그린플레이션이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도 올라가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려면 알루미늄이 반드시 필요한데,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국인 중국이 올해 전력 부족과 이산화탄소 감축을 이유로 알루미늄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알루미늄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알루미늄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각종 전자제품, 건설 자재 등에서 사용되는 원자재다. 탄소배출량 감축을 유도하는 친환경 정책이 탄소중립 이행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과 물가를 올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제 상품 전문가들은 내년까지 원자재 수급난이 지속되면서 알루미늄, 구리, 니켈 등 비철금속의 가격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내년 9월 알루미늄 가격이 지금보다 11% 이상 오른 톤당 3200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리와 니켈 가격도 톤당 1만1500달러, 2만4000달러로 10%씩 상승할 것”이라고 각각 예측했다.

그린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자칫하면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유럽 각국 등 주요국들이 ‘위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제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린플레이션으로 화석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탄소중립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하지만 그린플레이션에 대비해 적절한 속도 조절은 물론 원자력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