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계에서 ‘검은 클림트’라 불리는 작가가 있다. 바로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흑인 아티스트, 아모아코 보아포다. 그의 작품은 현재 50만~100만 달러 수준에서 거래된다. 신인에 가까운 그의 그림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걸까.
검은 클림트를 보라
스포츠와 음악은 물론, 패션계에서도 흑인의 위상이 높 아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흑인의 두각이 덜 나타난 곳이 있는데, 바로 순수 미술이다. 물론 케힌데 와일리(Kehinde Wiley)나 케리 제임스 마셜(Kerry James Marshall),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등 훌륭한 흑인 아티스트가 있지만, 신(Scene)을 대표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타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는 최근 미술계에서 단연 스타라 부를 만한 흑인 아티스트다. 본격적으로 데뷔한지 이제 만 5년밖에 안 됐지만, 여기저기서 보아포를 모시기 위해 안달을 낼 정도다.

행운의 연속
어떤 분야에서 스타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실력 외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개인적 서사다. ‘개천에서 용 난’ 고생담이나 비극적 가족사 같은 스토리가 더해지면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가 수월해진다. 아모아코 보아포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흑인 그리고 아프리카다. 1984년생인 보아포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지만, 미술 대학에 진학해 직업 아티스트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개발국에서 자란 평범한 소년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미술을 배우기보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행운이 찾아온다. 그의 어머니가 일하던 회사 사장이 보아포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장학금을 제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덕분에 보아포는 아크라의 미술 대학에 정식 입학해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졸업한 뒤에는 오스트리아 국적의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결혼하자마자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났다. 빈의 미술 대학에서 공부하던 그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대표적 아티스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나 에곤 실레(Egon Schiele) 같은 예술가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또 한 번 행운이 찾아온다. 2018년, 앞서 언급한 흑인 아티스트 케힌데 와일리가 인스타그램으로 우연히 보아포의 작품을 본 뒤 그에게 직접 연락을 해 온 것이다(와일리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흑인 아티스트다). 와일리는 자신이 알고 지내던 LA의 아트 딜러에게 보아포를 소개했고, 보아포의 역량을 알아본 그들은 곧바로 LA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보아포의 첫 전시는 며칠 만에 작품이 다 팔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가치가 드러나자 갤러리의 전속 계약 요청이 줄을 이었다. 이후 보아포는 2019년 시카고의 유명 갤러리 마리안 이브라힘(Mariane Ibrahim)과 계약을 맺고, 그해 12월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솔로 부스를 얻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그것도 흑인을 그리는 흑인 아티스트가 글로벌 미술계에서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순간이다.

흑인만 그리는 이유
구상과 추상. 구상은 형태를 나타내는 그림이고, 추상은 형태를 없애는 그림이다. 현대 아트의 주류는 추상이었다. 하지만 보아포의 작품은 구상이다. 강렬한 포트레이트를 그린다. 그것도 흑인만. 왜 흑인만 그리느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은 이렇다. “백인을 그리는 백인 예술가에게는 누구도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거예요. 가나에 살 때 나는 주류였어요. 아무도 왜 내가 흑인을 그리는지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군요. 나는 예술가예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내가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인물을 그릴 뿐입니다. 아무나 그리는 건 아니에요. 나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람들만 그립니다.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보아포의 작품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그가 흑인을 표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백인이나 황인이 피부색, 질감이 다르듯이 흑인도 마찬가지다. 보아포의 그림에 나타나는 인물은 제각각 피부가 다르다. 채도, 질감도 모두 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가 피사체의 고유성을 보여주고, 그림 역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검은 얼굴을 실제처럼 강하고 생동감 있게 칠해 검은색의 부정적 뉘앙스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가 붓 대신 라텍스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조각하듯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결과 보아포가 그리는 흑인의 얼굴에는 다양한 레이어의 표정이 드러난다. 흑인의 얼굴에 대한 이 생생한 현실감은 그 전에는 미처 볼 수 없던 것이다. 피부와 별개로 인물이 입은 옷은 대부분 색상과 패턴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화려한 원색 계열이다. 보아포를 두고 ‘검은 클림트’라 부르는 이유다. 이 강렬한 컬러 대비는 다른 업계에서도 보아포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Kim Jones)도 그중 한 명이다. 킴 존스는 보아포의 초상화, 특히 인물이 입은 옷의 패턴과 컬러에 흥미를 느꼈고, 그에게 협업을 제안 했다. 그 결과 보아포의 그림은 디올 맨의 2021 크루즈 컬렉션에 등장했다.

작품의 가치
BLM(Black Lives Matter)이라는 시대적 이슈,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태생적 배경, 패션 하우스와 협업이라는 트렌디함까지 갖춘 보아포의 작품 가격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레몬 수영복(The Lemon Bathing Suit)은 2020년 경매에서 약 10억 원(67만5000파운드)에 낙찰됐다. 지난 2년간 전 세계를 휩쓴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가격은 두 배 이상 높아 졌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현재 페이스가 유지된다면 그의 작품 가격은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보아포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머지않아 그의 개인전을 국내에 서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검은 클림트를 보라
The Lemon Bathing Suit, 2019
검은 클림트를 보라
Umber Brown Belt, 2020





글 이기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