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크로니클>로 돌아온 이욱정 PD

다큐멘터리의 거장 이욱정 프로듀서(PD)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회사인 티빙과 손잡고 신작을 선보인다. <누들로드>와 <요리인류>로 이어져 온 이 PD의 철학을 집대성한 푸드멘터리 <푸드 크로니클>이 그것. 이번 작품에서는 인류가 감싸고, 쌓고, 납작하게 펴서 먹는 음식들을 선호하는 이유를 디자인과 미학, 건축과 미식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푸드 다큐의 거장, 음식의 디자인을 말하다

- 5년 만에 선보이는 푸드멘터리(푸드+다큐멘터리), <푸드 크로니클>은 어떤 작품인가요.
“<누들로드>와 <요리인류>에 이어 음식의 뿌리를 찾아가는 다양한 여정을 담았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음식의 형태, 즉 디자인에 주목했어요. 모든 사물은 형태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런 형태를 가지게 된 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왜 하필 이 음식은 이런 형태로 탄생했고, 지금까지 형태가 유지돼 왔을까.’ 또 ‘왜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형태를 사랑했을까.’ 이것이 바로 <푸드 크로니클>의 출발점입니다. 음식 얘기를 하는 동시에 실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죠. 가령 옛날에는 국수를 만들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밀가루 반죽을 얇고, 길게 만드는 데는 엄청난 수고가 필요하거든요. 그럼에도 인간은 왜 수제비가 아닌 국수를 만들어 먹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국수의 선형 디자인이 끓는 물 속에서 가장 빠르고 고르게 익을 수 있는 최적의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이건 <누들로드>에서 던진 중요한 화두이기도 했죠. 국수가 전 세계에 고루 퍼져 있는 것처럼 지금껏 인류가 만들어 온 수십억 가지의 음식 레시피에는 신기하리만큼 일관된 패턴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푸드 크로니클>에서는 곡물 가죽에 고기와 채소를 싼 ‘랩(wrap)’, 켜켜이 올려 하나의 형태로 쌓은 ‘레이어(layer)’, 둥글고 납작한 원형의 음식 ‘플랫(falt)’, 즉 다시 말해 싸 먹고, 쌓아 먹고, 납작하게 펴서 먹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 음식의 형태는 셀 수 없이 다양하잖아요. 그중 유독 세 가지 모양에 주목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유독 감싸고, 쌓고, 펴서 먹는 음식이 많더라고요.(웃음)사실은, 전 세계인이 다 좋아하는 음식들이죠. <푸드 크로니클>에서는 세상을 바꾼 여덟 가지 음식을 다룹니다. 싸서 먹는 만두와 타코, 쌈, 쌓아 먹는 스시와 샌드위치, 케이크, 그리고 납작하게 펴셔 먹는 피자와 팬케이크예요.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음식들은 탄생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죠. 그런데 왜 이 여덟 가지 음식은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인을 매혹시켰을까요. 저는 그 비밀이 형태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싸고, 쌓아 올리고, 납작하게 펴서 먹는 음식들엔 공통점이 존재하거든요. 바로 실용성과 편리성입니다. 빨리 만들 수 있고, 손쉽게 먹을 수 있죠. 또 휴대도 간편해요. 그러면서 한입에 여러 맛을 느낄 수 있는 점도 비슷합니다. 저는 이런 점들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요리인류>에서 빵과 향신료, 고기를 통해 인류 역사를 되짚었다면 이번 <푸드 크로니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디자인과 미학, 건축과 미식의 관점으로까지 확대해 다룹니다.”

- 이번 다큐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요.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등장합니다. <푸드 크로니클>은 한편으로는 장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세계적 권위자가 만든 최고의 음식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런 점이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요. 또 스펙터클한 영상도 기대해달라 말하고 싶습니다. <요리인류> 때 영상미에 대한 피드백이 정말 많았거든요.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눈을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자신합니다.”

- <누들로드>와 <요리인류>는 배경 음악으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푸드 크로니클> 역시 기대해도 좋습니다. 특히 이번 작업은 프로듀싱 그룹인 ‘매드소울차일드’와 함께했어요. 많은 유명 가수의 앨범 프로듀싱은 물론, 영화와 CF, 드라마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프로듀싱 그룹이에요. 보는 즐거움은 물론, 듣는 즐거움 역시 만족하실 수 있을 겁니다.”

- <푸드 크로니클>을 더 재밌게 보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이전까지의 다큐멘터리는 모두 지상파에서 방송됐잖아요. 지상파 방송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존재합니다.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해야 하니 그렇죠. 제작할 때도 ‘이건 너무 어려울까’, ‘시청자들이 여기까지 알고 싶어 할까’ 이런 고민을 늘 했었거든요. 그런데 <푸드 크로니클>은 OTT 회사인 ‘티빙’에서 방영하잖아요. 한 마디로 작정하고 만들었습니다.(웃음) 이전보다 깊이 있지만, 또 일부의 시청자는 조금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2번 보면 2배로 더 재밌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처음 볼 때 넋 놓고 빠져든다면, 두 번째 시청할 때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지게 될 것입니다.”

- 이번 다큐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누들로드>는 국수라는 한 가지 아이템이었잖아요. 또 <요리인류>는 빵과 향신료, 고기 세 가지였죠.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템이 여덟 가지나 되다 보니, 시쳇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웃음) 게다가 10여 개국을 가야 하는데, 제작 기간이 딱 코로나19 시기와 겹쳤어요. 스태프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19에 확진되면 제작 일정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해야 했죠. 아마 국내에 우리 제작팀만큼 PCR 검사를 많이 한 사람들도 없을 겁니다.(웃음)”
푸드 다큐의 거장, 음식의 디자인을 말하다
- 벌써 10년 넘게 음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음식에 ‘집착’하게 만드는 건가요.
“음식에는 매력이 아주 많죠. 특히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준다는 점이 그런 것 같습니다. 흔히 인간은 소통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음식이야말로 소통의 매개가 아닐까요. 우리는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음식을 앞에 두고 생각을 나누기도 하잖아요. 식탁 위의 언어랄까요. 특히 우리나라는 더 하죠. ‘밥 한번 먹자’, ‘술 한 잔 하자’ 이렇게 인사하는 나라는 몇 없거든요.”

- 다큐멘터리 연출과 요리, 공통점이 있을까요.
“있죠. 똑같은 음식이라도 그걸 어떻게, 어떤 접시에 담아, 어떤 방식으로 주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잖아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뉴스와는 달라요. 다큐는 팩트를 가지고 오랜 시간 ‘요리’를 해서 내놓거든요. 요리의 방법으로는 비주얼과 사운드가 있겠죠. 보고 듣는 아름다움이 놀랄 만한 스토리와 만났을 때 진짜 좋은 작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바로 요리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해요.”

- 죽기 전에 꼭 만들어보고 싶은 음식 관련 다큐가 있다면요.
“마실 것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인간의 생사에는 항상 액체가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먹는 것이 모유이고, 죽기 전에는 (입으로 먹지는 않지만) 수액을 맞잖아요. 어디 그뿐인가요. 인간은 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또 술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 해도 정말 장황하겠죠. 언젠간 이런 마실 것에 대한 시리즈를 꼭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 요즘 고민하는 다큐멘터리 주제는요.
“저는 그동안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쭉 해 왔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시야를 조금 넓혀보려고 합니다.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인간, 그중에서도 바로 ‘몸’이에요. 사실 그동안의 다큐도 음식을 소재로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잖아요. 앞으로는 인간의 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메디컬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아요. ‘병은 무엇인가’, ‘병원은 무엇인가’, ‘또 그것을 치유하는 의사는 누구인가’. 이런 궁금증으로 시작한 건데, 현재 세브란스 병원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입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이욱정 표 메디컬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아요.”

- 당신은 어떤 다큐멘터리 PD로 기억되고 싶나요.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장르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 나와 함께 사는 사람, 또 나와 공존하고 있는 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자는, 결국은 스토리텔러(storyteller)거든요. 이 스토리텔러는 20만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류를 지탱해 온 것은 결국 스토리의 힘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스토리는 과거이고, 현재이면서, 또 미래이기도 하거든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힘을 주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그런 스토리텔러로서 기억되는 것이 꿈입니다.”



글 이승률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