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폭증한 위스키 열풍 현상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인기 위스키를 구하기 위해 주류 판매점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는 이른바 ‘오픈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코로나19와 위스키 사이에는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업체 관계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Special] 코로나19, 우리는 왜 위스키에 취했나
최근 일이다. 기자가 가입해 있는 위스키 관련 인터넷 카페에 반가운 소식 하나가 올라왔다. 한 주류 전문 매장에 요즘 ‘품귀현상’을 빗고 있는 싱글 몰트위스키가 입고된다는 공지였다. 놓칠 수 없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부랴부랴 해당 매장을 찾았다. 하지만 위스키를 손에 넣지는 못했다. 매대가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픈 전부터 긴 행렬이 이어졌고, 거의 오픈과 동시에 위스키가 모두 동이 났다고 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사는 모습을 여럿 바꾸어 놓았다. 비단 먹고 사는 것뿐 아니라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골프와 테니스 인구가 증가했고,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엔 매일같이 긴 줄이 늘어섰다. 비슷한 맥락으로 코로나19 이후 위스키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다. 위스키 구입을 위한 이른바 ‘오픈런’ 현상이 흔해졌을 정도다.
실제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위스키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65% 증가한 1만3700톤을 기록했다. 위스키 수입액은 같은 기간 9257만 달러(약 1280억 원)에서 1억4683만 달러(약 2040억 원)로 58%나 증가했다.
이런 변화는 판매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대형마트의 지난 6월 위스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5% 증가했다. 2년 전인 2020년과 비교하면 무려 92.6%나 상승한 수치다.
놀라운 사실은 블렌디드 위스키와 싱글 몰트위스키 구분 없이 모두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는 데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 위스키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심지어 제3국 위스키까지 모두 수요가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업소용 위스키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아무 위스키나 갖다 놔도 잘 팔릴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Special] 코로나19, 우리는 왜 위스키에 취했나
그런데 궁금했다. 도대체 코로나19와 위스키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아무래도 ‘홈술’과 ‘혼술’ 트렌드의 영향이 크죠.” 한 위스키 수입사 대표는 말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술집들의 영업이 제한되며 사람들이 집에서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이전에 혼자 집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고 하면 아마 ‘청승떤다’고 했을 겁니다”라며 위스키의 소비자 가격을 처음 알게 된 사람도 많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동안 위스키는 주로 주점에서 서너 배 가격에 팔렸잖아요. ‘이 술이 이렇게 저렴했어’ 하면서 위스키를 집어들기 시작한 거죠”. 그에 따르면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적극적으로 위스키 프로모션을 펼치면서 위스키를 가성비 높은 술로 여기는 소비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유명 주류 판매점의 매니저는 말한다. “보드카나 테킬라는 클럽이나 라운지 바 등에서 ‘에너지 업’을 위해 마시는 술이잖아요. 반면 위스키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술이죠. 뒤숭숭한 팬데믹 시대에는 위스키가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요.” 실제 201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서 큰 호황을 맞았던 보드카의 매출액은 현재 절반 이상 고꾸라졌다.
“그동안 위스키는 주로 유흥업소에서 소비돼 왔잖아요.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가정용 수요가 폭발했어요. 업소용 위스키의 적자를 커버하고도 남을 만한 수치였죠.” 한 주류 브랜드 마케팅 팀장은 이런 주장을 폈다. 그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위스키 시장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 양극화가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선물용과 업소용으로는 21년산 이상의 최고급 위스키가 잘 나가는 반면, 가정용 위스키는 12년 이하의 술들이 잘 팔려요. 상대적으로 15년급 프리미엄 위스키들은 성장 그래프가 아주 가파른 편은 아니거든요”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위스키와 함께 소비가 폭발한 주종이 바로 샴페인이에요. 뭔가 공통점이 느껴지지 않나요”라고 물으며, 오랫동안 만들어진 고급 양주의 이미지가 현재 위스키 인기를 견인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해외여행 감소 등으로 여윳돈이 생긴 소비자들이 새로운 취미이자 투자처로 위스키를 선택한 것 같다는 분석도 내놨다.
코로나19 이후 국내에 생겨난 현상이 바로 돈을 과시하는 이른바 플렉스 문화다. 그리고 이 ‘문화’는 이른바 MZ(밀레니얼+Z) 세대가 주도한다.
한 위스키 업체가 기자에게 공개한 내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20~30대의 위스키 소비량은 전체의 약 20%를 차지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0%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젊은 층이 위스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이는 다른 통계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면세점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내국인 위스키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50% 증가했다. 매출 중 20~30대의 매출 구성비는 약 34%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유명 바(bar)에서 근무하는 바텐더는 말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이 아닐까요.” 그는 럭셔리한 이미지의 위스키는 남들에게 자랑하기 좋은 술이라고 했다. “저희 업장에서도 잔술을 주문하면서 사진 찍기용으로 보틀을 빌려달라는 고객이 많거든요.” 선망하는 사람의 취향을 따라하기 좋아하는 MZ세대들의 특성으로 인해, 위스키가 부자들이 마시던 술에서 트렌드세터가 마시는 술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금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지난 7월,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집단문화에 의해 술(주로 소맥)을 마시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MZ세대에게 음주는 취향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MZ세대를 ‘술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라 명명했다.
이와 관련, 한 싱글 몰트위스키 회사의 브랜드 앰버서더는 “MZ세대가 특히 선호하는 게 바로 싱글 몰트위스키죠. 블렌디드 위스키에 비해 희귀하니까요”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위스키 업계가 성숙기에 접어들며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졌는데, 증류소마다 각기 풍미가 다른 싱글 몰트위스키의 특징이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는 MZ세대의 특성과 맞물리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더불어 희소성 높은 아이템을 좋아하는 MZ세대의 특성 역시 비교적 생산량이 적은 싱글 몰트위스키를 찾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곳으로 그는 몰트 바를 지목했다. “한국에 몰트 바가 처음 생긴 게 10여 전이에요. 그런데 최근에 고객층이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그에 따르면 위스키 마니아들이 주로 찾던 몰트 바의 주 고객은 1~2년 새 20~30대의 젊은 층에게 완전히 장악됐다. 특히 여성 고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실제 그가 담당하는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의 고객 비율 중 여성은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색다른 주장도 들을 수 있었다. “일종의 군중 심리라고 생각합니다.” 재차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말한다. “사실 위스키 품귀현상은 수요 예측 실패에서 야기된 부분이 크거든요.” 그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각국 위스키 증류소의 가동이 중단되고 화물차 운송량이 줄어든 데다 브렉시트까지 겹치며 위스키 생산량 자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어 그는 “특히 라벨과 병, 코르크와 박스 등의 생산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어요. 완벽한 수요 예측 실패였죠.” 그런데 언론에서 ‘위스키 없어서 못 판다’ 식의 기사가 계속 나오다 보니 위스키에 관심 없던 사람도 ‘일단 사고 보자’는 식으로 위스키 소비에 뛰어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현재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위스키 중 일부는 원액이 아닌 부자재 부족이 원인이라며 1~2년 안에 수입량이 크게 늘 수 있다는 전망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위스키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지금 같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위스키 관계자는 긍정적인 예측을 내놨다. 코로나19 이후 2030세대가 위스키 시장에 새로운 소비층을 형성한 데다 유통 채널과 정보 교류가 다양해졌다는 이유다.
특히 홈술과 혼술에 이어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홈 바텐딩’ 문화가 생기며 젊은 층의 위스키 소비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올해부터 면세점 이용이 가능해진 만큼 국내 수익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면세점에서는 160%에 달하는 과세 없이 위스키를 구매할 수 있는 데다, 지난 9월부터 술의 면세 한도가 1병에서 2병으로 완화됐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