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우디, 석유 밀착…달러 패권 흔들까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하며, 원유도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달러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리튬은 ‘하얀 석유’로 불리는 희귀 광물이다. 리튬은 21세기 들어 전기자동차를 비롯해 스마트폰, 노트북 등 각종 전자제품의 배터리 소재로 사용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이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리튬의 국제 가격 기준은 중국의 위안화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국제 리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리튬 채굴 시장에서 중국은 13%의 점유율에 불과하지만 제련 시장에서는 44%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중국은 또 수산화리튬 등 리튬 화합물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리튬의 국제 가격 기준이 위안화가 됐다.

중국이 리튬처럼 원유도 자국 화폐인 위안화를 국제 가격 기준으로 삼기 위해 페트로 위안화(Petro-Yuan) 체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9일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은 향후 3~5년 내 GCC 국가들로부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늘리고 위안화로 결제할 것”이라며 “GCC 국가들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를 위해 상하이 석유·천연가스 거래소(SHPGX)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그동안 석유와 가스 수입 대금을 위안화로 지불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의욕을 보여 왔지만, 시 주석이 직접 이런 의지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이 페트로 위안화 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달러화 패권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고, 사우디는 세계 최대 원유 공급국이다. 양국의 2021년 교역 규모는 870억 달러로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중국의 사우디 원유 수입액은 439억 달러로 전체 사우디 상품 수입액의 77%를 차지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중국과 사우디 관계가 강화되면서 원유 결제에서 위안화 사용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싱크탱크 ISPI의 나세르 알 타미미 선임연구원은 “가까운 장래에 사우디는 원유 판매 대금을 위안화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중국이 사우디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세계 원유의 80% 이상이 달러화로 거래되는 상황에서 만약 사우디가 중국과의 원유 거래에서 위안화를 사용할 경우 위안화의 국제화 위상이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사우디는 그동안 페트로 달러화(Petro-Dollar) 체제를 통해 밀월 관계를 구축해 왔다. 페트로 달러화 체제는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 등 아랍국들 간의 제4차 중동전쟁으로 발생한 1차 오일쇼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과 사우디가 협력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1974년 6월 사우디를 방문해 미국은 사우디의 안전을 보장하며 무기를 제공하고, 대신 사우디는 원유를 오직 달러화로만 거래한다는 군사·경제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군 현대화 작업은 물론 전투기 60대 등 대규모 군수물자를 수입했다.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도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원유 거래시 결제 수단으로 달러화만 사용하기로 하면서 달러화는 원유로 태환되는 기축통화의 반열에 올랐다. 말 그대로 달러화 패권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페트로 달러화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때문이었다. 미국은 2010년대 셰일오일 개발 붐으로 10년 새 원유 생산량이 2배나 늘었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2010년 3억4610만 톤으로 세계 3위였지만 2020년에는 7억1270만 톤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미국의 국제 원유 시장 점유율도 같은 기간 8.6%에서 17.1%를 기록했다.

반면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같은 기간 5억2270만 톤에서 5억1960만 톤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역이 미국의 글로벌 정책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1970년대 비해 크게 낮아졌다.

특히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이자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한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사우디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증산을 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10월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 회의에서 하루 200만 배럴씩 감산하는 결정을 주도했다. 미국은 석유 감산 결정이 러시아에 이익을 안겨주는 행위라면서 사우디를 비난했으나 사우디는 순수하게 경제 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맞서 왔다. OPEC플러스는 12월 회의에서도 기존의 대규모 감산 결정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중국·사우디, 석유 밀착…달러 패권 흔들까
中·사우디, 준동맹 수준 관계 격상…뒤통수 맞은 미국

중국은 견고했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자 그 틈을 파고들었다. 중국의 의도는 중동 지역에서 핵심인 사우디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사우디가 중국과 협력할 의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도 그동안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사우디의 속셈은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사우디는 지난해 12월 7일부터 10일까지 자국을 국빈 방문한 시 주석을 극진하게 환대했다.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사우디는 12월 7일 시 주석을 태운 전용기가 자국 영공에 진입하자 공군 전투기 4대를 동원해 에스코트를 했다. 또 전용기가 수도 리야드 상공에 들어서자 의전 호위기 사우디 호크 6대가 전용기와 동반 비행을 했다. 시 주석이 전용기에서 내리자 의전 호위기가 공중에서 중국 국가인 오성홍기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노란색 연기를 내뿜으면서 날아가기도 했다. 공항 영접에는 리야드 지역 수장 파이잘 빈 반다르 알 사우드 왕자와 외교장관인 파이잘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왕자 등 주요 왕실 인사와 고위 관리들이 나왔다. 시 주석이 보라색 카펫을 밟으며 공항에서 걸어가자 사우디군 의장대는 예포를 쏘며 성대히 환영했다. 시 주석이 왕실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왕궁으로 이동하자 무함마드 왕세자 겸 총리가 입구에서 시 주석과 악수했다. 사우디가 시 주석을 이처럼 파격적인 의전으로 환대한 것은 7월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때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당시 칼리드 알 파이잘 메카주 주지사 등 비교적 급이 낮은 인사들이 공항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맞았고, 전투기 호위 같은 의전도 없었다. 또 무함마드 왕세자는 바이든 대통령과 주먹인사만 했다.

시 주석은 12월 8일 사우디 왕궁에서 무함마드 왕세자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과 함께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과 사우디 간의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에 서명하고, 또 2년마다 양국 정상이 만나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은 사우디를 다극 체제의 중요 세력으로 간주하며, 사우디와의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발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면서 “사우디와의 관계 강화를 중국의 외교, 특히 중동 외교에서 우선순위에 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국의 반(反)테러 조치들을 지지하며 외부 세력이 인권을 내세워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면서 “주요 20개국(G20) 등 외교 무대에서 중국과 함께 각종 이슈에 대응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은 외교적으로 볼 때 동맹의 바로 아래 단계 관계를 말한다.

동맹을 맺지 않은 중국 외교 원칙을 감안할 때 양국 관계가 사실상 준(準)동맹 수준으로 격상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인권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내정에 외부 세력이 간섭하는 것에 확고히 반대한다”고 한 점도 자신을 노골적으로 ‘인권 침해 범죄자’로 취급해 온 미국 정부, 특히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라고 볼 수 있다.

시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사우디는 그린수소, 태양광, 건설, 정보통신, 클라우드, 의료, 교통 등의 분야에서 500억 달러(약 65조3450억 원) 규모의 34개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특히 양해각서들 중에는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가 사우디에 초고속 인터넷 단지와 클라우드 센터를 건설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화웨이는 미국이 안보상 우려를 이유로 지난 2019년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린 기업이다. 주요 동맹국들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지 말라고 요구해 온 미국으로선 중동 지역 최대 우방인 사우디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우디가 미국의 대중 제재 1순위로 꼽히는 화웨이의 기술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중국과 ‘우군’이 되겠다는 의도라고 말할 수 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중국과 사우디는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를 논의하기 위해 양국 정부와 민간 부문 간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며 “무역과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실질적인 파트너십으로 전환하고 양국 경제를 더 넓은 지평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양국은 또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사우디의 ‘비전 2030 계획’ 간 연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 주석의 핵심 대외 전략이다. 또 비전 2030 계획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대대적인 경제 개혁 정책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광공업, 관광, 금융, 물류 등 비석유 부문을 개발하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해 왔다. 비전 2030 계획에는 사업비만 5000억 달러(670조 원)에 달하는 네옴시티 건설 프로젝트도 포함돼 있다.

사우디는 석유 이후 시대에 대비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국토 동쪽 홍해와 인접한 아카바만 인근에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약 4분의 1 크기인 2만6500㎢ 면적의 네옴시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철건국제그룹은 네옴시티 건설의 핵심 프로젝트인 6개 터널 공사를 수주했고, 중국건설유한공사는 스페인과 공동으로 도심 교통망 구축 계약을 체결했다. 화웨이는 스마트도시 모바일·통신 분야 인프라 구축을 관장한다. 화웨이는 5세대(5G)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플랫폼 구축을 맡아 네옴시티를 글로벌 선도 디지털 도시로 조성하기로 했다. 중국 전기자동차 제조사인 이노베이트 모터스는 연간 10만 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과 30만 채의 주택을 건설하기로 했다.

미국은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 강화에 상당히 당혹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중국은 사우디에 가장 중요한 문제인 안보 분야에서 미국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미국과 사우디의 ‘일부일처(一夫一妻)’ 시대는 이미 끝나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런 밀러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중국과 사우디 모두 권위주의 클럽의 진정한 회원국으로서 민주화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외부 압력에 맞서 그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는 공통의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과 사우디의 밀착 관계는 앞으로 미국의 중동 지역 패권 유지에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