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는 2024년 3분기 애플 지분을 25% 매도하며 사상 최대 현금 보유량(3250억 달러)을 기록했다. 도미노피자와 풀코퍼레이션에 신규 투자하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으며, 이는 후임자를 위한 기반 마련과 경제 위기 대비로 해석되고 있다.
[대가들의 포트폴리오]
지난해 1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벅셔해서웨이의 2024년 3분기 13F(운용 자산 1억 달러 이상 기관 분기 투자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벅셔해서웨이는 최대 보유 종목인 애플 주식 수를 지난 3분기 4억여 주에서 3억여 주로 25%가량 줄였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228억2200만 달러(약 32조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로써 그간 30%를 넘었던 벅셔해서웨이 포트폴리오에서 애플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번 분기에 26%로 내려앉았다.
’과대 평가 우려’에 애플 손절했나
그레고리 워런 모닝스타 분석가는 "(애플의) 주요 생산기지이자 판매처인 중국과 대만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본 (매도) 조치"라고 분석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버핏이 그의 스승이자 가치 투자 대가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애플의 최근 주가수익비율(PER)은 35배를 넘나들며 수익 성장률 전망치에 비해 주가가 과대 평가돼 있다는 분석에서다. 버핏이 처음 애플 주식을 매수할 당시 이 비율은 12~13배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벅셔해서웨이의 애플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대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가 애플을 수년간 극찬해 왔고, "투자할 만한 다른 기회를 찾기 어렵다"고 반복적으로 말해 온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버핏의 신규 주식 매수 규모는 58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매도 규모 1332억 달러에 비하면 훨씬 적은 금액이다. 워런 분석가는 "이는 단순히 매수 기회를 찾지 못한 것 이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금 마련은 인수인계 대비용”
버핏이 후임자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거나 향후 경제 위기를 예상하며 현금을 비축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벅셔해서웨이 투자자인 더글라스 윈스롭의 제프 머스카텔로 분석가는 "버핏의 주식 매도 이유가 단순히 기업 가치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며 "승계가 임박한 상황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적절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워런 분석가도 "그는 자신이 오래 남아 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후임자에게 부담이 될 만한 상황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벅셔해서웨이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지분에 대해서는 2023년 7월 이후 4개 분기 연속 매각해 현재 지분율이 9.5%로 감소했다. 화장품 유통 업체 울타뷰티 주식은 보유량의 96.59%를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주요 종목 청산으로 현금 보유량을 늘린 점도 눈에 띈다. 벅셔해서웨이의 현금 보유량은 325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운용 자산의 28%로, 1990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현금 보유량을 늘림으로써 버핏은 벅셔해서웨이의 주식 리스크를 줄이고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와 관련해 버핏은 최근 "단기 국채의 수익률이 현재 주식 시장에서 투자 가능한 대안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FT는 "벅셔해서웨이는 항상 대규모 현금을 보유해 왔으며, 이는 막대한 보험금 청구를 충당할 유동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보험 사업의 특성 때문"이라고 전했다.
도미노피자와 수영장 서비스 업체 풀코퍼레이션 두 종목은 각각 5억4940만 달러, 1억5225만 달러씩 신규 편입했다. 도미노피자는 지분율 3.65%까지 확보했다. 월가에선 소비 침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의견과 사업 확장으로 수익성 방어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맞서는 종목들이다. 풀코퍼레이션은 지난해 10월 실적 발표에서 "기존 수영장의 필수 수리 및 유지보수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세가 새로운 수영장 건설에 대한 수요 부진을 부분적으로 상쇄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신규 편입 종목 눈길
로이터통신은 "맥도날드 같은 체인점 업체처럼 도미노피자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대신 고급 패스트푸드 또는 배달 서비스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확장 전략"이라고 전했다. 도미노피자 주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최근까지 13% 이상 하락했다. 풀코퍼레이션은 동 기간 4% 가까이 상승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셰브런, 옥시덴탈 페트롤리엄 등 벅셔해서웨이의 다른 상위권 종목의 보유 내역은 변화가 없었다. 특히 장기 보유하고 있는 코카콜라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코카콜라는 버핏이 1988년 처음 투자했을 때처럼 고성장 기업은 아니지만 확고한 브랜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 현재 3%가 넘는 배당수익률을 내고 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역시 벅셔해서웨이가 1998년 처음 투자한 뒤 한 주도 팔지 않고 있는 종목이다. 버핏은 2023년 이후 매년 연례 주주서한에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대해 "무한히 소유할 종목으로 예상한다"고 밝혀 왔다. CNBC는 "투자자들은 2월에 예정된 버핏의 연례 주주서한까지 기다려야 그가 최근 행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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