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자산관리 수요가 확대되면서 신탁은 금융 시장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자산관리 외에도 상속·증여 등 계약에 따라 무한대로 변신이 가능한 신탁의 찐 매력은 무엇일까.
[커버스토리] 신탁
법무부는 2011년 베이비부머의 가족 간 자산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신탁법’을 개정해 효과적인 자산승계 도구인 유언대용신탁을 도입했다. 자산승계 방법으로는 생전에 미리 승계하는 ‘증여’와 사망 후 승계하는 ‘상속’이 있는데, 증여와 상속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신탁이 증여신탁과 상속신탁이다.

그리고 의사 능력이 부족할 때 재산 보호를 위한 ‘후견’ 제도를 보완하는 후견신탁도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인 신탁 회사로서는 유언대용신탁이라는 좁은 신탁 개념보다는 영국, 미국 및 일본처럼 상속신탁, 증여신탁, 후견신탁을 통합하는 ‘가족신탁(family trust)’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가족신탁은 금전, 금융 상품, 부동산, 실물자산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의 재산을 보관, 관리, 운용, 처분, 개발할 수 있다. 특히 금융기관은 금전을 수탁받아 다양한 금융 상품으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산관리 서비스(wealth management) 영역에서 수익원으로 추가할 수 있다.

금융기관은 기존 자산관리 고객에게 가족신탁이라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업셀링(up-selling)하거나 크로스셀링(cross-selling)할 수 있다. 또한 금융기관은 그동안 수익 사업으로 영위할 수 없었던 고객 보유의 부동산, 미술품, 기타 실물자산을 수탁함으로써 실물자산을 수익 사업의 대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가족신탁 서비스에서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충분히 도전할 만한 시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가족신탁 서비스는 본래의 속성이 가족 간 자산승계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민감한 결과물이므로 계약자의 프라이버시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하나의 신탁 회사와 가족신탁 계약을 체결한 이후 다른 신탁 회사로 이동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 가족신탁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현재의 사회 문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민법상의 증여·상속, 후견 제도에 대한 보완재 또는 대체재로 가족신탁 시장을 보아야 한다.
증여·상속 후에도 통제권 유지
신탁이라는 재산관리도구는 10세기 전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영국 재산법(Property Act)이 합리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신탁이 고안됐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영국법상 여성이 부동산을 상속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사회현상을 극복하는 도구가 됐다. 즉, 배우자나 딸에게 부동산을 상속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지인에게 부동산을 신탁하면서 해당 부동산을 사용하고 수익할 수 있는 수익자로 배우자나 딸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 민법상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면, 증여재산의 소유권이 자녀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돼, 증여받은 자녀가 재산관리를 못하더라도 부모가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부모가 자녀에게 상속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속재산은 오롯이 상속받은 자녀의 소유이기 때문에, 자녀의 낭비가 예상되더라도 유언을 통해서 자녀의 상속재산 낭비를 예방할 방법이 없다.
부모가 자녀 중 한 명에게 가업을 물려주더라도 물려받지 못한 다른 자녀가 소송을 통해서 가업 주식의 일부를 빼앗을 수 있는 유류분 제도의 문제점도 기업 오너에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큰 고민거리다. 가족신탁을 활용하면, 증여한 재산이나 상속한 재산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 통제권이나 사용 제한을 통해서 증여재산이나 상속재산을 보존할 수 있다.
가업 주식의 경제적 권리와 의결권의 분리 귀속을 통해서 가업의 안정적인 영위와 유류분 분쟁 감소 등을 위해 가족신탁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러한 기능 외에도 가족신탁의 효능은 여러 가지 맞춤형 신탁 설계를 통해 느끼고 실행해볼 수 있다.
보험금청구권신탁 허용되며 시장 ‘들썩’
보험금청구권신탁, 가업승계신탁, 판매 채널 확대를 위한 본질 업무 위탁 허용 등 가족신탁 시장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킬 제도 개선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1년 ‘신탁법’ 개정을 통해 가족신탁이 도입됐지만, 가족신탁 시장 활성화를 위한 법령 개정이 많이 늦어지는 바람에 가족신탁 시장의 발전이 더디었던 것은 사실이다. 가족신탁 도입 관련 세제 개선이 2020년에 이루어졌고, 2024년에서야 보험금청구권신탁이 도입됐다.
가업승계신탁,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발행 허용, 판매 채널 확대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두 차례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가, 22대 국회인 2024년에 다시 제출됐다.

후견신탁의 잠재 대상인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가 2030년에 136만 명, 2040년에 217만 명, 2050년에 302만 명이 될 것으로 대략 추정된다(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2024년 12월 발간, ‘통계로 알아보는 우리나라 후견(감독)사건의 현황’).
미국의 경우 자산가의 30%가 가족신탁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신탁에 대한 인지도 부족과 세제 혜택의 부재라는 부분을 고려해 앞서 추정한 재산의 10%에 대해 가족신탁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보면, 추정 신탁재산 규모는 약 900조~1000조 원에 달하기 때문에, 신탁업을 영위하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가족신탁 시장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신탁의 인지도 제고 및 제도 개선을 위한 여러 금융기관의 시간과 비용 투자를 고려하면, 가족신탁 비즈니스의 수익성 확보는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외연 확대 걸맞은 전문가 육성 시급
아울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법무사 등 가족신탁을 상담하고 설계할 수 있는 신탁 전문가 육성도 필요하다. 가족신탁 서비스의 핵심은 과연 해당 가족과 재산에 적합한 맞춤형 신탁을 설계할 수 있느냐인데, 신탁이 발전한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 가족신탁 전문가가 충분히 육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가족신탁을 맞춤형으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가족신탁 영역의 세금, 법률, 부동산 전문가가 한 팀으로 관여해야 하기에 세무 이외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없다면 단순한 가족신탁 상품 외 고객의 가족과 재산별 맞춤형 가족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가족신탁 설계에 관여할 수 있는 변호사, 법무사, 회계사, 세무사, 재무설계사 등 전문가 분야에서 가족신탁을 상담하고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각 전문가 단체가 소속 전문가의 업무 영역 확대를 위해 신탁 전문가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전문가 법인이 신탁 회사를 만들어 가족신탁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가족신탁 시장 발전의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신탁 회사는 이렇게 육성된 신탁 관련 전문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부동산 전문가를 채용해 원팀으로 고객 상담, 맞춤형 신탁 설계 및 상속 집행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면, 가족신탁 비즈니스를 이용하는 고객 수가 훨씬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영표 신영증권 헤리티지솔루션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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