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AI 혁신을 새해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다. AI를 접목한 손안의 PB는 대중화될 수 있을까. 은행, 증권 등 AI 자산관리 트렌드를 짚어본다.
[커버스토리] 2025 자산관리 뉴 트렌드 | AI
망분리는 외부 침입으로부터 사내 전산 자원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금융권에 적용한 규제로,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보안 기법이다. 지난 2013년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규모 금융전산 사고가 이 규제를 도입한 결정적 계기였다. 금융사 시스템이 해킹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사고의 여지를 없앤 셈이다.


AI 활용 걸림돌 망분리 규제 완화
이 규제는 치명적인 사이버 위협을 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금융권이 디지털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생성형 AI 분야 또한 망분리 규제로 인해 은행, 증권사가 적극적으로 연구에 뛰어들지 못한 신기술 중 하나다.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업계의 애로사항을 고려해 지난해 하반기 망분리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생성형 AI를 활용한 9개 금융사의 10개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신규 지정했다.
10년 묵은 망분리 규제 철폐의 숙원이 이뤄지면서 금융권 전체가 자체 AI 서비스 개발에 드라이브를 거는 분위기다. 과거 금융권의 AI 자산관리 서비스가 로보어드바이저(RA)로 대표됐다면, 이제는 생성형 AI를 접목한 ‘손안의 프라이빗뱅커(PB)’가 새로운 청사진으로 거론된다. 물론 AI 에이전트 형태의 ‘완성형 AI PB’가 대중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단 AI 은행원(상담원)이 일상적인 투자 정보, 상품 추천을 도와주는 데서 출발해 장기적으로는 초개인화된 자산관리 서비스까지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모든 업무에 AI·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AI 은행원이 어디서나 고객이 쉽게 원하는 금융 서비스로 누릴 수 있도록 실현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AI 상담 완결률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고객 경험 혁신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생성형 AI를 통해 자연스러운 고객 상담, 그리고 단순 업무 처리를 넘어 고객 맞춤 상담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한은행의 AI 서치 서비스인 ‘AI 투자메이트’는 최근 ‘CES 2025’를 통해 대중 앞에 처음 공개됐다. AI 투자메이트는 일상적인 투자 활동에서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고객의 궁금증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다. 특정 기간의 경제 지표, 주가, 원자재 등 가격 정보를 보여주거나, 상장 기업의 개요, 최대주주 정보, 관련 테마 정보도 제공한다. 또 뉴스, 멀티팩터, 시황, 주가, 이익 흐름 등을 분석하고, 최근 이슈가 되는 종목이나 시장 전망, 투자 매력도까지 제시해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과거 고객들의 기나긴 정보 획득 단계를 ‘질문과 답변’이라는 2단계로 혁신적으로 단축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생성형 AI 활용해 맞춤 서비스 제공
KB국민은행도 올해 ‘생성형 AI 금융 상담 에이전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우선 은행 내부에서 직원들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뒤, 순차적으로 일반 고객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을 고려 중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기존에는 AI 알고리즘을 사용한 로보어드바이저 ‘케이봇쌤’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해 왔다. 머신러닝 장세 분석을 통해 빠르게 투자 방향을 선정해주는 서비스로, 국내외 시장 국면을 판단하고 유망 투자 자산을 선정해 제안해준다. ‘최적 모델 포트폴리오’와 ‘고객이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비교 분석할 수 있으며, 제시된 결과에 따라 자산 비중을 조절하거나 투자 상품을 변경하는 리밸런싱 거래까지 한번에 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보유 자산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AI가 제안하는 펀드 포트폴리오 상품도 출시한 바 있다.

AI 기술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 내재화 구축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 외부 솔루션을 통해 도입했던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은 투자 위험 성향에 따른 상품 포트폴리오를 단순하게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새롭게 도입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AI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이용한 마이데이터를 기반으로 1대1 자산관리를 진행한다. 마이데이터를 통해 수집된 고객의 모든 자산 정보를 분석한 뒤, 예금, 펀드, 신탁 등 다양한 상품군으로 구성된 초개인화 포트폴리오로 리밸런싱을 제안하겠다는 목표다.
자산 배분 제안하고 상품 추천도
특히 우리은행이 자체 개발한 투자 상품 평가 모델 ‘WISE(Woori Investmen-Product Scoring Entity)’를 포트폴리오 상품 추천에 활용할 계획이다. 투자 상품의 과거 단순 수익률에만 의존하지 않고 앞으로 기대되는 수익성, 안정성,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평가 모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AI와 우리은행 내부 전문가가 일관된 포트폴리오를 제시해,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금융 회사들은 수신, 펀드, 신탁 등 상품별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고 상품 원장이 각각 달라 통합된 뷰를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체 자산 현황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진정한 초개인화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투자 DNA’라는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AI 알고리즘에 적용해 솔루션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은 AI를 활용한 ‘GPT뉴스레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서비스로, 전일 장 마감 기준 조회수 상위 10개 종목의 최근 뉴스를 제공한다. AI를 활용해 종목 핵심 키워드를 추출하기 때문에 투자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해 9월에는 ‘차트 분석 AI(차분이)’ 서비스를 오픈했다. ‘차분이’는 생성형 AI의 이미지 인식 기능을 활용한 서비스로 고객이 보고 있는 차트를 AI가 4가지 분석 포인트로 설명한다. 특히 매매 전략을 통해 매수와 매도 시점과 손절 지점 등을 짚어주고, 거래량 증감의 패턴을 해석해주기도 한다. 전문가라도 놓칠 수 있는 기술적 지표를 안내해준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1월 AIX팀을 설립하고 ‘키우Me’라는 이름의 AI 기반 초개인화 자산관리 서비스를 준비해 왔다. 최근 개발이 완료돼 현재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테스트 중이다. MTS상에서 챗봇 형태로 AI PB를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 콘셉트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자산관리가 어렵다고 느끼는 많은 고객들의 심리적 거리를 줄여 나가려 한다”며 “AI 기술의 특장점을 잘 파악해 가능한 많은 고객이 AI 서비스의 편의성이나 효용성을 느끼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쏠림현상 우려…오류 시 법적 책임 모호
이 같은 AI의 확산으로 고객이 자산관리 서비스를 손쉽게 제공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AI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금융 리스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고객이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고, 금융사의 관리 미흡으로 AI 알고리즘이 오작동하면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생성형 AI를 탑재한 트레이딩 알고리즘이 공개되면 다수의 투자자가 해당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사용하게 돼, 금융 쏠림이 나타날 개연성도 있다”며 “생성형 AI를 사용한 로보어드바이저가 보편화되는 경우, 프로그래머가 고의 또는 실수로 금융 회사나 특정 고객에게 유리한 금융 상품을 추천하면 금융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성형 AI 알고리즘의 오작동으로 인해 금융소비자가 대규모 피해를 입게 되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며 “은행법, 보험업법, 자본시장법 등 주요 금융업권 법률의 경우 규제 위반 시 행위자에 대한 인적 제재 또는 금융 회사에 대한 금전 제재가 주로 부과되기 때문에 현행 규제 체계에서는 금융 회사가 사용한 생성형 AI의 오작동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Interview]
“AI가 과외 선생님 역할…자산관리 시장의 승부처 될 것”
천영록 모트에이아이 대표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것 같다. 각 금융사마다 1~2개의 AI 프로젝트를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과정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금융의 특성상 규제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발전 속도가 느린 측면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융사는 망분리 규제 때문에 사내 컴퓨터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하지도 못했다. 다만 앞으로는 굉장히 빠르게 가속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해 8월 금융당국이 ‘금융분야 망분리 개선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금융사의 AI 활용이 급물살을 타는 중이다.”
AI를 활용한 자산관리 영역이 무궁무진해 보인다. 어떤 영역에 특히 주목해야 할까.
“AI에 자산 운용까지 모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자산관리 분야에서 항상 손이 모자랐던 주변부 영역에 AI를 접목하는 게 더 전략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자산 운용 내용을 정확하게 잘 전달해주는 기능을 제공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쪽이 훨씬 효용이 크다. 사실 우리나라에 펀드매니저가 모자라서 문제가 생겼던 적은 없지 않나. 반대로 프라이빗뱅커(PB)가 모자란다거나, 일반 대중이 활용하기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은 문제가 됐을 수 있다. 비유하자면 좋은 교과서가 부족했다기보다는 그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과외 선생님이 부족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역할을 AI가 하게 된다면 굉장히 가능성이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본다.”
자산가들은 AI보다 휴먼터치를 더 원하지 않을까.
“물론 실존하는 PB들이 직접 개입해 유연하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을 선호하는 부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PB라면 AI를 활용해 훨씬 더 다양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쪽으로 점점 진화할 수밖에 없다. AI에 능한 PB들은 과거 대비 10~20배에 달하는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만한 생산성을 갖추게 된다. 이 부분이 향후 AI 자산관리 시장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트렌드로 부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를 선호하는 고객층을 자산 규모로 나누기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결국은 하이브리드 형태가 될 것이라고 본다. AI와 인간의 장점을 결합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은 신뢰도와 정확성이 중요한 분야다. AI의 판단력이 향후 AI 자산관리 분야에서 문제가 될 여지는 없나.
“현직자들도 AI 윤리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갖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AI 에이전트로 의사결정을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재밌고 창의적이지만 100% 정확한 이야기일까’를 고려해서 만들어야 한다. 신뢰도와 관련된 고민을 중요하게 하고 있다. 단, 원자력을 만들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서 꼭 핵무기 버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 번 사고가 터지면 금융권이 극심한 피해를 입을 수준으로 AI를 활용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금융에서 제일 어렵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훗날 AI에 매수·매도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 굳이 위험도가 큰 영역을 AI에 모두 맡길 필요는 없다. 우리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AI를 균형 있게 접목하는 게 더 좋다고 본다.”
향후 시장 전망은.
“AI는 워낙 경제성이 좋은 분야다. 생각보다 투자금이 적고, 기술 도입의 효과도 빠르게 얻을 수 있다. 투자 대비 빠른 회수가 가능한 구조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AI에 대한 투자금이 아주 크게 필요하지 않다. 현재 금융사들이 이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데다 아직 아이디어가 없다 보니 신중한 편이지만, 향후 1~2년 안에 엄청나게 많은 비즈니스 모델(BM)이 쏟아질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AI 설계를 잘해서 신규 수익원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자산관리 시장에서도 큰 승부처가 될 것이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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