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영리치들이 자산관리 시장의 새로운 별로 부상하고 있다. 과연 이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관리하고 있을까. 금융사들의 뜨거운 영리치 모시기 경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커버스토리]영리치
주식과 암호화폐 등을 통해 자산을 불린 ‘2030세대 영리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7일 서울 테헤란로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
주식과 암호화폐 등을 통해 자산을 불린 ‘2030세대 영리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7일 서울 테헤란로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
창업·코인으로 돈 번 영리치…PB 찾아 뭉칫돈 굴려
입시설명회에서 맞선 행사까지

금융사들이 점점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반 지점을 줄이고,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뱅킹(PB) 점포는 늘리는 추세다. 비이자이익의 핵심인 고액자산가 자산관리(WM) 분야에서 추가 성장 기회를 엿봤기 때문이다. 고액자산가 고객의 예치금 규모와 투자 상품 가입 금액은 일반 고객 대비 크고, 은행이 얻는 수수료 수익도 짭잘하다. 이에 은행들은 단순 재무 서비스를 뛰어넘어 사교 모임, 강연, 입시 상담, 교양 수업 등 고객의 ‘생애 설계’를 돕는 금융 집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리치 마케팅이다.

이미 은행권에서는 영리치 고객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20여 년간 매년 단체 맞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누적 1700명이 참여했으며 60커플이 성사돼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맞선은 연 1회 호텔이나 하나은행 클럽1 PB센터에서 10명씩 진행된다.
창업·코인으로 돈 번 영리치…PB 찾아 뭉칫돈 굴려
우리은행은 VIP 고객의 성혼 서비스를 위해 지난해 결혼정보 회사 ‘가연’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우리은행의 자산관리 브랜드 ‘투체어스 익스클루시브’ 고객 100명에게 1년간 결혼 매칭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신청한 고객의 성향, 이성상 등을 기반으로 최적의 상대를 찾아준다. 또한 은행들은 대학 입시설명회를 열거나 경영 승계 교육에도 공을 들인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넥스트 리더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84년 이후 출생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전문가 초청 강연, 미술과 와인, 이미지 메이킹 등 교양 클래스와 문화 체험, 스포츠 등으로 자산가들의 2세 교류의 장을 만들어주고 있다.

KB국민은행의 ‘KB 골드앤와이즈’는 센터별로 고객 니즈를 고려해 플라워레슨, 퍼스널컬러, 와인클래스 등 맞춤형 클래스를 제공한다. VIP 고객을 대상으로 국내외 유명 클래식, 대중가수의 공연도 직접 기획한다.

김지영 신한 프리미어 PWM여의도센터장은 “‘넥스트 리더스 프로그램’은 기업 오너의 2세 경영자를 위한 경영 수업 프로그램으로 매년 기수별로 운영되고 있으며,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공고해 만족도가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비금융 서비스 분야에서도 영리치의 관심사에 맞춰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 전시 초청 행사, 해외 유명 와이너리 초청 와인 갈라디너, 패밀리오피스센터 공간을 활용한 아트페어 등 다양한 행사로 트렌드에 민감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리치, 대체투자도 관심 높아

무엇보다 갈수록 영리치가 증가하는 데에는 자산관리에 눈을 뜬 젊은 부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한 축적한 자산을 관리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 자산인 부동산을 비롯해 주식, 가상화폐, 절세 채권, 사모펀드, 지분 투자 등으로 자산 투자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발간한 ‘2022 코리안 웰스 리포트(Korean Wealth Report)’에 따르면 영리치의 21%가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아울러 영리치의 47%는 예술작품이나 음원, 대체불가토큰(NFT) 등 새로운 투자처에도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코인으로 돈 번 영리치…PB 찾아 뭉칫돈 굴려
서울 지역의 한 PB는 “최근 몇 년 새 벤처 창업, 유튜브 콘텐츠 크리에이터, 가상화폐·주식 투자를 통해 부를 축척한 젊은 고객들이 늘어났다”며 “과거에는 자산 대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요즘은 자산 절반 이상을 금융 자산으로 운용하는 영리치가 많다. 가상화폐는 물론이고, 미술품 투자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아트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하나금융연구소가 발간한 ‘아트에 빠진 금융’ 보고서에 따르면 MZ(밀레니얼+Z) 세대가 미술품 투자에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향후 미술품 구매 의향이 기성세대보다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미술품도 투자 자산으로 인식
하나은행에서 개최한 프라이빗 아트페어 장면. 사진=한국경제
하나은행에서 개최한 프라이빗 아트페어 장면. 사진=한국경제
‘미술품을 유망한 투자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응답률이 30대 27.5%, 40대 32.2%, 50대 30.3%, 60대 21.3%, 70대 14.1%로 집계됐다. 50대 이하에서는 미술품을 유망한 투자 자산으로 인식하는 반면, 6070세대에서는 문화적 향유 측면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젊은 자산가들이 아트 시장을 대체투자 시장으로 보면서 금융사들 역시 관련 특화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아트뱅크’와 KB금융그룹은 ‘갤러리뱅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파트너사로 참여하는 아트페어나 자체 전시회를 통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갤러리 호튼과 전시회를 개최했고, KB금융은 지난 7월 ‘키아프 서울’의 리드파트너에 이어, 11월에는 삼성 리움미술관에 전 계열사 고객 1000명을 초대해 문화 이벤트를 제공했다.

이재완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술품 수요 저변 확대 및 유통 구조 다변화에 따라 국내 미술 시장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으며 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라며 “금융 회사는 미술 시장 활성화에 주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로 WM 서비스 강화 및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에서 미술 시장 변화에 대응해 서비스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nterview
이혜숙 IBK기업은행 평촌WM센터장. 사진 = 이승재 기자
이혜숙 IBK기업은행 평촌WM센터장. 사진 = 이승재 기자
“영리치, 분산투자·원스톱 자산관리 원해”
이혜숙 IBK기업은행 평촌WM센터장


영리치 고객들의 특징을 꼽자면?
“이들은 기본적인 수신 거래뿐만 아니라 거래 외국환은행 지정을 요구하는 외국환 거래부터 모험자본 기반의 혁신금융까지 ‘원스톱 자산관리 서비스’에 금융 니즈가 크다. 따라서 전통적인 고객 관리 방식만으로는 영리치 고객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또한 과거 부자들은 ‘MGM 마케팅(Members Get Members Marketing: 기존 고객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마케팅)’이나 금융기관 브랜드 파워를 보고 PB센터를 선택했다면, 영리치 신흥 부자들은 철저히 전담 PB의 투자 실적과 전문성을 따져본 뒤 계약하고 포트폴리오 성과에 따라서 거래 센터 교체도 잦다. 아울러 대다수 투자 상품 지식 및 운용 경험이 많아도 아는 것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투자 성향이 고위험으로 쏠리기보다는 경기 사이클, 자금의 성격과 운용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투자등급으로 리스크 테이킹해 분산투자 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이들을 위한 기업은행만의 특별한 서비스가 있다면.
“전략적으로 미래의 영리치가 될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을 조기 발굴해 핵심 고객으로 유치하고 거래를 심화하려는 노력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실례로 ‘스타트업 WM’ 시스템을 통해서 유망 청년창업기업을 WM센터와 매칭, 성장 초기 자산관리 지원 및 멘토링 등으로 당행 전속 거래를 유도한다. 청년창업기업을 지원하면서도 동시에 센터 신규 고객으로 유치해 사회공헌 활동이 수익성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기대된다.

또한 미래 우량 기업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초기에 선점해 향후 투자 관련 유관부서 또는 자회사와 연계를 추진한다. 기업은행의 기업금융 노하우를 영업 기회로 삼아 슈퍼리치의 초기 단계부터 발굴과 지원을 통해 기업 자산과 최고경영자(CEO) 개인금융을 종합자산관리 성과로 연결하는 IBK의 PIB(Private Banking+Investment Banking) 자산관리 모델로서 WM 비즈니스의 성장 잠재력과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똑똑한 영리치를 잡기 위한 PB 인재들의 역량이 중요해졌다. 어떤가.
“WM 비즈니스는 맨파워가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현장에서 검증된 노하우와 능력을 겸비한 직원들이지만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루키-영스타-마스터PB의 커리어 패스를 이어가며 더욱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교육에 투자해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기업은행 WM센터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프라이빗뱅커를 비롯해 자산관리그룹과 본부와 함께 투자, 세무, 부동산, 법률, 신탁 등 금융과 비금융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뤄 고객을 관리한다. 종합자산관리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직원들이 멀티플레이어로서 풍부한 지식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또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더욱 전문성을 강화하는 선순환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덕분에 VIP 개인·기업고객 대상 신뢰를 굳건히 하면서 시너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유망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추천한다면.
“미국 중앙은행(Fed) 금리 인하 기대가 회복되려면 인플레이션 둔화 추가 확인이 필요하고, 미 국채 금리 상승의 여파로 단기적으로는 금리·환율·유가 변동성이 모두 좋지 않은 상황이므로 미국 시장 조정에 대비해서 현금을 늘리고 관망하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매크로 변수에 따라 시장 조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는 없으나 미국 기업 실적 추정치는 기술주 중심으로 우상향하는 환경임에는 이견이 없으므로 장기적으로는 포트폴리오에 포함하는 것도 제안할 만하다.”

영리치들의 신탁, 상속, 가업승계 문의도 많나.
“그렇다. 유언대용신탁, 상속과 가업승계의 경우 수증자보다 증여자의 주도로 상담이 이루어지고, 주로 기업공개(IPO)나 스톡옵션, 가상화폐 등으로 부를 거머쥔 젊은 고액자산가는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WM센터는 은행과 증권 업무에 대한 원스톱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산관리 포트폴리오 컨설팅과 동시에 절세, 외국환 운용, 은퇴 설계, 가업승계 등 자산관리와 자산승계의 전 단계에서 ‘토털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본부와 협업해 세무·법률·부동산 전문가 상담, VIP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고, 법인고객의 경우 환 리스크 관리, IPO, 인수합병(M&A) 등 IB 업무와 법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고객의 자산을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로 구성해, 성향에 맞게 지속적으로 시장을 비트하는 수익률을 내는 것을 중점 목표로 베테랑 PB들이 풍부한 지식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화합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