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 단위의 부를 훼손 없이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 ‘만능 집사’로 불리는 패밀리오피스다. 개인 자산관리와는 규모의 단위가 비교되지 않을 뿐 더러 세대를 넘나들며 부를 안전하게 관리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컨설팅의 난도도 높다. 금융권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패밀리오피스 시장을 살펴본다.
[커버스토리] 2025 자산관리 뉴 트렌드 | 패밀리오피스

더욱이 다양한 회사의 WM 전문가를 접할 기회가 많은 자산가 그룹의 특성상, 그들을 만족시키려면 보다 고차원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패밀리오피스 시장 종사자들이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음 세대로 철학과 가치 전달이 핵심
한 금융사 패밀리오피스센터 임원은 “한 가문이 큰 부를 이뤘다고 해도 1~2세대가 넘어가면 그 부가 단절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면서 “다음 세대로 부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1세대의 레거시 철학과 가치가 변질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는 게 패밀리오피스 본연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우리나라 패밀리오피스 시장은 가업승계라고 해도 세무 솔루션 등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은데, 본질적으로는 헤리티지의 계승을 돕는 것이 패밀리오피스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주영민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가 보유한 막대한 자산이 배우자와 다음 세대로 상속되는 ‘부의 이전’이 진행되면서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의 초점도 부의 창출에서 부의 상속과 유지로 옮아 가고 있다”며 “패밀리오피스의 증가로 기존 금융 회사들의 고객 유치 경쟁이 심화하고 있으며, 인력 영입과 운영 측면에서도 업권 내 치열한 경쟁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늘어나는 초부유층…‘슈퍼리치 가문’ 잡아라
실제로 슈퍼리치 가문을 붙잡기 위한 국내 금융권의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은행권 최초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에 나섰던 하나은행은 패밀리오피스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상속·증여, 부동산 투자 자문, 자산 운용과 같은 재무적 조언뿐만 아니라 영리치를 위한 1대1 금융교육, 최고경영자(CEO) 대상 소규모 커뮤니티, 자선 프로그램 자문 등 비재무 영역에 대한 니즈까지 함께 채우는 게 하나은행 패밀리오피스의 지향점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동에 패밀리오피스 고객 전용 라운지인 ‘하나더넥스트 패밀리오피스’도 열었다. 또 각 가문의 특성에 따라 최적화된 자산관리를 제공하기 위해 은행과 증권의 통합 서비스인 ‘하나 패밀리오피스 원 솔루션’을 시행 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영업점에서 관리 중인 초거액자산가에게 보다 질 높은 자산관리를 제공하기 위해 본점 조직과 함께하는 듀얼 관리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과 신한투자증권 공동으로 구성된 패밀리오피스 고객 전담 포트폴리오 전문 팀(ICC)이 주요 센터에 상주하며 자산관리를 제공한다. PB팀장은 포트폴리오 가이드 시스템을 통해 자산 배분 관점에서 체계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의 자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서비스도 강화했다. 특히 멘토링 프로그램을 강화했는데, 기존에 WM 그룹 내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기업 그룹과 공동 진행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2세 고객 간 네트워킹도 활발해지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KB국민은행은 가족, 회사, 재단 등 가문의 모든 자산에 대한 증식, 이전, 가업승계를 고려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강조한다. 국민은행 또한 그룹 차원의 자산관리 역량을 동원했다. 증권사 IB 출신 전문가를 배치하고, M&A, IPO, 유상증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기업 오너의 IB 연계 비즈니스를 돕는다는 구상이다.

증권 업계에서도 패밀리오피스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발걸음이 분주하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형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제공해 2010년대 초반부터 ‘자산관리 명가’라는 입소문을 탔던 신영증권은 여전히 입지가 굳건한 상태다. 지난 2012년 APEX 패밀리오피스를 처음 선보인 이후 각 가문만의 원칙과 철학을 중시하는 특유의 맞춤형 자산관리로 명성을 쌓았다.
2020년 패밀리오피스 업계에 진출한 삼성증권은 서비스를 론칭한 지 4년 만에 100가문, 자산 30조 원을 돌파했다. 가문별 평균 자산은 3000억 원으로, 대형 공제회들의 평균 자산을 훌쩍 뛰어넘는 기관급 사이즈를 자랑한다. 지난해 1월에는 슈퍼리치 고객 전담 조직인 ‘SNI 패밀리오피스센터’를 오픈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리테일과 IB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증권사 특성상, 패밀리오피스 시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NH투자증권도 기존에 갖고 있던 IB 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초부유층 고객에게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오너 고객의 기업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조달, 운용, M&A 자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초부유층 고객과 회사가 함께 프라이빗 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방향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2021년 10월 패밀리오피스를 출범한 NH투자증권은 지난해 예탁자산 최소 100억 원 이상인 슈퍼리치 가문이 100곳 이상 가입했다. NH투자증권은 금융 부문에 대한 서비스뿐만 아니라 해외 부동산 매매, 자녀 해외 유학, 기부 설계 컨설팅 등 다양한 비재무적 솔루션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가문 2세대를 위한 패밀리오피스 멤버의 니즈가 증가하면서 자녀를 위한 금융과 실물경제 교육, 역량 개발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를 강화했다.
주 연구원은 “금융 회사는 패밀리오피스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자산군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 정교한 재무 상담 서비스, 최신 기술 도입을 통한 운용 효율성 향상, 유연한 수수료 모델 도입 등의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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