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돌풍에 美·韓 반도체주가 ‘패닉 셀링’에 빠졌다.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 대비 10분의 1 비용으로 유사 성능의 AI를 개발하면서다. AI 대장주들이 흔들리는 사이 중국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급등했다.

[마켓 트렌드]
지난 1월 2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트레이더. 기술주 매도를 촉발한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 속에서 이날 주식 시장은 보합세로 출발했다. 사진=연합AFP
지난 1월 2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트레이더. 기술주 매도를 촉발한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 속에서 이날 주식 시장은 보합세로 출발했다. 사진=연합AFP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증시를 뒤흔들었다. 글로벌 AI 투자 열풍과 중국의 소비 촉진 정책인 ‘이구환신’에 힘입어 호황이 예상됐던 반도체 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 대비 약 10분의 1 수준의 비용으로 유사한 성능의 AI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추격에 대한 위기감과 AI 반도체 수요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종의 주가는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종목에 대한 투자 전략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엔비디아·SK하이닉스 ‘휘청’

설 연휴 이후 일주일 만에 개장한 증시는 딥시크의 충격에 휘청거렸다. 엔비디아에 고성능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1월 22만7000원까지 올랐으나 2월 들어 2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1월 31일에는 9.85% 하락한 19만9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HBM 핵심 장비를 생산하는 한미반도체와 테크윙, HPSP 등 주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 주가도 이날 하루 6~8% 하락했다.
딥시크 수혜주를 찾아라…국내 반도체주는 ‘휘청’
삼성전자 역시 5만1000원까지 밀리며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증권사 추정치 평균(컨센서스)을 밑돈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5조8000억 원, 6조5000억 원으로 컨센서스를 각각 2.1%, 18.5% 하회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약 1조 원어치 순매도했다.
지난 1월 31일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충격으로 국내 반도체주가 급락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31일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충격으로 국내 반도체주가 급락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증시는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상 처음 150달러를 돌파했던 엔비디아 주가는 ‘딥시크 쇼크’ 이후 120달러 선이 무너졌다. AI 반도체 시장을 이끌어 온 대장주인 엔비디아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탓이다. 그동안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개당 수만 달러에 달하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를 구매해 AI 모델을 훈련해 왔다. 그러나 저렴한 저성능 칩으로도 유사한 성능을 낼 수 있는 AI 모델이 등장하면서 엔비디아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AI 훈련에 필수적인 전력 인프라 관련주와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안정적 전력원으로 주목받아 온 소형모듈원전(SMR) 관련주도 급락했다. 딥시크처럼 낮은 개발 비용으로 효율적인 AI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면, 글로벌 전력 수요는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GE버노바와 뉴스케일파워의 주가는 일주일 동안 각각 11%, 15% 하락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두산에너빌리티 등 SMR 관련 기업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딥시크의 여파는 미국 데이터센터 리츠(부동산투자신탁)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형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디지털리얼티트러스트는 일주일간 9% 하락했다. 업계는 향후 고성능 데이터센터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소규모 데이터센터의 수요 증가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中 소재·부품·장비 기업 ‘상한가’ 행진

AI 대장주들이 흔들리는 사이 중국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급등했다. 중국 AI 밸류체인(가치사슬)에 속한 기업들이 줄줄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중국 AI 기업들이 미국 빅테크의 대항마로 부상할 경우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웨이퍼를 절단할 때 사용되는 보호 필름 등 정밀 코팅 기능성 소재를 생산하는 GRT다. 이 회사는 지난해 딥시크의 파트너사로 알려진 중국 AI 서버 업체 랑차오정보와 9000만 위안(약 180억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딥시크 사태 이후 GRT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중국 둥신반도체가 최대주주(지분율 30.2%)인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 피델릭스도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사 SMIC와 협력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급등했다. 중국 쿤산을 거점으로 반도체 후공정 업체에 소재를 공급하는 엠케이전자도 가격제한 폭까지 올랐다.

국내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SW) 기업들도 반사이익을 누렸다. 가성비 AI 모델을 활용하면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웨이브시스템즈, 솔트룩스, 이스트소프트 등 중소·중견 SW 기업이 강세를 보였다. AI 데이터 기업 플리토는 수집·정제한 언어 데이터를 IT 기업에 판매하는 사업 모델이 주목받으며 주가가 급등했다.
인공지능(AI) 어시스턴트 애플리케이션(앱) 딥시크의 서비스 화면. 사진=연합뉴스
인공지능(AI) 어시스턴트 애플리케이션(앱) 딥시크의 서비스 화면. 사진=연합뉴스
모처럼 반등한 네이버·카카오

딥시크처럼 대규모 투자 없이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네이버와 카카오도 반등했다. 이들 기업은 AI 사업에 대한 투자 규모에 비해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해 주가가 지지부진했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증권가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AI 시장 변화의 수혜주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AI 모델의 ‘설계도’를 공개하는 오픈소스 진영과 이를 비공개하는 클로즈드소스 진영 간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오픈소스 진영에 속한 네이버와 카카오가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네이버의 목표주가를 기존 24만 원에서 26만 원으로, 카카오의 목표주가는 4만6000원에서 4만9000원으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AI 업계에서 비용 효율화가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며 “미국 빅테크 대비 투자 규모가 작은 후발 주자에게도 다양한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주 급락 과도” vs “추가 조정 불가피”

증권가에서는 "반도체주의 급락이 과도하다"는 의견과 "AI 대장주의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딥시크의 등장이 글로벌 AI 경쟁을 가속화하고 이로 인해 생태계를 더욱 성장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딥시크가 AI의 범용성을 높이고 개인 컴퓨터나 통신기기, 가전제품 등에 AI가 도입되면 관련 반도체와 전력 수요 증가가 뒤따를 것이란 분석이다.

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딥시크는 기존과 다른 학습 방식으로 AI 모델을 개발해 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했다”며 “반도체,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더 강한 AI 드라이브를 걸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전력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인터넷 등 새로운 수혜주들이 생겨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알고리즘 효율성이 향상되고 비용이 감소하면 이를 활용하는 소프트웨어에는 긍정적”이라며 “AI 비용 하락과 오픈소스의 발전은 그동안 제한적인 투자로 AI 사업을 진행해 온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가는 당분간 딥시크 충격에 따른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이 중국 AI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딥시크 등장 이후 일부 조정받는 종목은 주가 밸류에이션 부담과 거시 변수 우려 등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을 것”이라며 “당분간 조정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딥시크 수혜주를 찾아라…국내 반도체주는 ‘휘청’
딥시크 수혜주를 찾아라…국내 반도체주는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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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