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에서 손꼽히는 '프라이빗뱅킹(PB) 명가'인 하나은행이 그리는 패밀리오피스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서울 삼성동에 새롭게 오픈한 ‘하나더넥스트 패밀리오피스’를 방문해, 자산 규모 100억 원 이상의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사로잡기 위한 하나은행의 전략을 들어봤다.
[스페셜] 패밀리오피스 강자들 - 하나은행 하나더넥스트
하나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PB 비즈니스를 이어온 지 올해로 30년째다. 지난 1995년부터 일찌감치 시작해 온 PB 서비스로 인해 ‘자산관리 명가’라는 수식어도 적잖게 듣는다. 그런 하나은행이 최근 몇 년 사이 패밀리오피스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과거에는 본점 내 애자일 형태로 존재했던 패밀리오피스 지원 체계가 2022년 말부터 전담팀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룹 차원의 최정예 전문가팀 구성
2023년 초에는 WM본부 내에 ‘자산관리컨설팅센터’를 신설하고 패밀리오피스 서비스의 본격적인 신호탄을 쐈다. 세무, 부동산 등 각 분야 전문가 20여 명이 자산관리컨설팅센터에 소속돼 자산 증식, 가업 유지와 승계, 상속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특히 이은정 하나더넥스트본부장이 패밀리오피스 전담팀의 대표 PB를 맡아, 자산 규모 100억 원 이상 초고액자산가와 가문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은행 내 인력만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대체투자, 기업공개(IPO), 기업 인수합병(M&A) 등의 영역은 하나금융그룹 계열사 지원을 받아 종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8월에는 은행·증권이 연합해 금융, 세무, 법률, 투자 등 60명의 최정예 전문가로 구성된 ‘하나패밀리오피스 원 솔루션’을 발족하기도 했다.
이환주 하나은행 패밀리오피스센터장은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는 꼭 세무, 부동산에 한정돼 있지 않다. 증권, 자산운용, 캐피털 등을 활용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어떤 형태의 자산관리라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룹 차원에서 전문가 집단을 꾸린 것도 각 분야 전문 인력과의 협업이 용이하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정 본부장은 “한 가문이 한층 전체를 대여해 소규모 파티를 열거나 지인과의 세미나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며 “다이닝 공간부터 대규모 영상 시설까지 완비된 공간이라, 프라이빗한 장소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길 원하는 자산가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설명했다.
신뢰와 안정성이 경쟁력…분쟁 없는 상속 컨설팅
최근 몇 년 새 패밀리오피스 사업을 둘러싼 업권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경쟁 속에서도 전통적으로 ‘신뢰’와 ‘안정성’을 자산으로 쌓아 온 은행이야말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에 특화된 플레이어일 수밖에 없다고 이 센터장은 자신한다. 자산가의 성향상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것보다는, 절세효과가 탁월한 ‘저쿠폰채권’ 등을 활용해 곳간을 지키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자산가들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변하지 않는다”며 “일반적인 대중이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자산가들은 부를 크게 늘리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쌓아 둔 자산을 어떻게 절세하면서 후대에 물려줄지에 많은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상담을 하다 보면 자산을 많이 보유한 가문일수록 가족 간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많다는 걸 느낀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하나은행은 유언대용신탁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험을 쌓은 만큼, 패밀리오피스 고객에게 많은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세 금융 교육 만족도 높아
하나은행이 패밀리오피스 고객에게 제공하는 또 하나의 무기는 미래리더스 프로그램이다. 유영동 패밀리오피스팀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자산가의 2·3세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만든 가문 대상의 금융 교육 프로그램”이라며 “은행의 상품 판매와는 전혀 상관 없이, 부동산, 세무, 자산관리 등 고객에게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구성해 1대1 과외 형태로 제공한다”고 했다.
이미 시중의 패밀리오피스센터나 PB센터에서도 자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각 분야 전문가가 1대1 과외처럼 고객 한 명을 맡아 길게는 1년 이상씩 교육해주는 프로그램은 흔치 않다는 게 하나은행 측 설명이다. 담당 PB조차 동석하지 않은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각 분야 전문가와 심도 깊은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진행하는 단체 세미나와는 만족도를 비교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나은행 패밀리오피스는 단순한 자산관리 분야를 넘어 미술, 시계, 위스키 등 고객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주제의 비재무 서비스도 모색 중이다. 지난 1월에는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항의전 서비스를 새롭게 론칭했다. 또 올해 연말쯤엔 가문 간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센터장은 “영리치를 유치하기 위한 서비스의 일환”이라며 “기존 VIP 고객 대상 커뮤니티 서비스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을 포함해 조심스럽게 구상 중이다”라고 했다.
[인터뷰]
“가족법인 설립 고객 늘어…자산관리 전방위 지원”
이환주 하나은행 패밀리오피스센터장

“신흥 부자가 늘어나면서 패밀리오피스 산업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단순히 부동산을 통해 부를 형성한 자산가들이 많았다고 한다면, 최근에는 본인이 직접 사업을 일궈 회사를 매각해 부자가 되는 분들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사업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갖췄다고 해도, 어렵게 일군 자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방법은 크게 고민해보지 못한 분들이 많다.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활용해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려는 니즈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이런 수요를 금융권도 인식하게 되면서, 패밀리오피스 산업이 점차 주목받게 됐다고 생각한다.”
최근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의 니즈가 궁금하다.
“매우 다양한 니즈가 있지만, 최근에는 기업 매각을 통한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세금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산가들이 많아졌다.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에 패밀리오피스를 자체적으로 설립하려는 니즈가 생겼다. 해외로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려면 제반 비용으로 인해 최소 500억~1000억 원의 자산 규모가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그 정도 규모의 자산을 갖춘 자산가들이 종종 나오면서 해외 설립을 추진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다만 자산 규모가 500억 원 이하인 경우라면 현실적으로 해외에서 자체 패밀리오피스를 구축하는 일이 쉽지 않다. 따라서 국내에 기반을 둔 자산가들은 가족법인을 세워 운용하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다. 은행은 가족법인 설립 절차나 자산 운용 방법에 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해외 패밀리오피스와 국내 상황을 비교한다면.
“해외의 경우 기본적으로 상속세, 증여세가 낮은 국가에 법인을 세워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싱글 패밀리오피스가 많다. 낮은 세금과 고수익 자산을 바탕으로 가문 한 곳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좀 더 프라이빗하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가능하다. 반면 국내에 주로 존재하는 멀티 패밀리오피스는 기존의 VIP 서비스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앞서 언급한 가족법인 등 다양한 대안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세금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물론 국내 패밀리오피스의 장점도 있다.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최적의 위치에 최고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또 외환, 부동산, 대출, 자산관리 등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게 국내 시중은행이 운영하는 패밀리오피스의 경쟁력이다. 특히 하나은행의 경우 외국환 부문에 특화돼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1대1 금융 교육을 진행하는 미래리더스 프로그램이 인상 깊은데.
“하나은행의 전문가들은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상담하기 전부터 현업에서 수많은 VIP 고객과 상담을 진행해 왔다. 하나은행을 ‘PB 명가’라고 표현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자료, 노하우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필요한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 만족도가 높다. 기업 매각을 통해 자산을 일군 자산가 중에서는 자녀뿐만 아니라 본인들도 금융·자산관리 교육을 받으려는 사례도 존재한다. 사업에 몰두하느라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금융, 세무 지식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배우고자 하는 니즈가 적지 않다.”
향후 패밀리오피스 사업 목표는.
“오랜 시간 단계적으로 부를 축적해 온 고객뿐만 아니라, 시니어의 부를 승계받은 2세대, 어떤 방식으로 투자해야 할지 고민하는 신흥 자산가까지 전방위에 걸쳐 지원할 계획이다. 은행과 증권의 최정예 전문가가 뭉쳐, 최상의 자산관리 컨설팅을 제공하겠다.”
올해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관세 이슈로 이미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다. 무역분쟁으로 인해 경기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기업 이익은 증가할 전망이며 감세, 리쇼어링으로 미국 내 소비는 개선의 여지가 크다. 우크라이나 종전도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을 담은 미국 투자를 유망하게 본다. 금리는 상반기에는 단기적으로 크게 떨어지기 어렵다. 국내 단기채 위주로 가져가는 것을 권한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 둔화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면 하반기에는 장기채에 일부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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