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프, 힙한 소비가 되기까지
듀프란 단어 자체는 생소하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 스며든 트렌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듀프는 청소기와 헤어드라이어로 유명한 브랜드 다이슨을 대체할 수 있는 샤오미나 샤크 제품을 예로 들 수 있다. 잡화 브랜드 다이소에서 출시하는 3,000원대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은 6만 원대 샤넬 제품과 비슷하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품절 세례를 받았다. 듀프 소비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다이소가 2024년 연 매출 4조 원대를 기록한 가운데 유니클로, 탑텐 같은 SPA 브랜드와 애슐리 퀸즈, 샤브올데이 같은 저렴한 뷔페 체인 브랜드도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에서 듀프 소비가 각광받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고물가·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는 경제적 환경이다. 명품을 소비할 여력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효능감을 얻고자 하는 소비자의 심리에 듀프 브랜드들이 잘 응답한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투어 이런 트렌드를 홍보하면서 듀프 소비가 힙Hip한 이미지까지 얻게 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말하자면 듀프 소비가 단순히 ‘짠물 소비’가 아니라 ‘힙한 소비’라는 것이다.

한때 턴테이블과 LP판이 힙스터의 상징이던 때를 떠올려보자. 맨 처음 몇몇 힙스터는 디지털 부호가 된 음악을 거부하기 위해 턴테이블을 찾았는데, 이 힙한 행동은 빠르게 복제됐다. 턴테이블도 없지만 그저 소장하기 위해, 진열하기 위해 LP판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알록달록 디자인해 조그맣게 올려놓을 수 있는 디지털 겸용 턴테이블도 출시됐다.
이처럼 ‘힙하다’는 것은 ‘힙한 소비재·서비스를 내보이는 것’, 즉 상징적 소비가 됐다. 듀프 소비로 되돌아가보자. 다이소 손앤박 립밤을 구입하는 것은 단순히 대체품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딱히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고통받지 않는 계층도 다이소 화장품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다이소 화장품이 상징하는 바를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나를 보여주는 듀프
듀프 소비는 결국 ‘남과 다름’을 상징한다. 애초에 명품 소비가 시작된 이유는 남과 다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남다름 혹은 고유함에 대한 추구라 할 수 있을터. 앞다퉈 명품을 사는 심리를 분석해보면 남만큼만 혹은 남보다 더 나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품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앤디 워홀의 작품처럼 명품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이 왔다. 누구나 명품 백 하나씩은 들기 시작한 시점이 되자 거꾸로 ‘저렴이’가 희소해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명품이 ‘고급스러움’, ‘복제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면 듀프는 합리성을 보여준다. 듀프 소비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그 가격이면 차라리….” 명품이 의도한 바를 나타내지 못하는 상황이면 ‘그 돈’을 들여서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듀프 소비를 하는 사람들도 안다. 고가 상품이 듀프 제품보다 퀄리티가 훨씬 낫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듀프 소비를 하는 이유는 ‘그 돈’을 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SPA 브랜드 의류는 단지 저렴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상징적 관점에서 보면 SPA 브랜드 의류는 무난하고 베이식하다는 점에서 놈코어, 젠더리스처럼 편안하고 범용성 높은 패션 트렌드를 선택한다는것, 나아가 유행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PA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명품 브랜드 로고를 크게 내세운 의류를 사는 것보다 더 힙하다는 것이다. 여러 듀프 소비를 종합해보면 듀프 소비는 대략 정보력을 갖추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유행을 잘 파악하는 소비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한동안 듀프 소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국민의 2025년 소비지출 계획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53%가 2024년보다 소비를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여행·외식·숙박’(17.6%)과 ‘여가·문화생활’(15.2%), ‘의류·신발’(14.9%)에서 소비를 줄일 것이라 답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여행을 가지 않고 옷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여행 전문 조사 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조사해보니 ‘6개월 이내에 해외여행을 갈 계획이 있다’는 응답자는 46.6%에 달했다. 이전에 비해 꽤 큰 감소 폭을 나타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수요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패션 분야에서도 불경기를 예상하는 동시에 ‘충성도’나 ‘진정성’ 같은 단어는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듀프 소비와 함께 ‘네가 필요한 건 이거 하나뿐You Only Need One’을 뜻하는 요노YONO, 즉 꼭 필요한 하나에 지출하는 소비가 이뤄질 것이다. 이는 현재의 가치를 중시하며 유행하던 ‘Your Only Live Once’에서 앞 글자를 따온 욜로YOLO와 대조된다. 단지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저렴하면서도 상징적인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분야에 지출하는 삶을 추구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소비 트렌드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 한가지에 더욱 집중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4년 프로야구가 유례없이 인기를 끈 것처럼 2025년에도 이목이 쏠리는 덕질 영역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에 몰입해 빠질 때, 그것은 언제든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낙관적이고 진취적이며 발전적인 힘이 될 것이다.
글. 김서윤(하위문화 연구가)
출처.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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