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밝혀 왔다. 특히 비트코인을 미국 Fed의 준비자산으로 편입하고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가상자산 따라잡기]
미국 정부가 가상자산을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기 앞서 전략 비축 자산(strategic reserve)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전략적 비축 자산 개념은 국가의 핵심 자원을 정부가 직접 보유해 경제·안보적 위기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대표적인 전략 비축 자산으로 전략 원유 비축, 전략적 금 보유(US gold reserves) 등이 있다.
비트코인 추가 매입 배제한 트럼프
전략 원유 비축은 국제 원유 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하고 전쟁, 자연재해, 경제위기 등 비상 상황에서 석유 공급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금의 경우 과거 금본위제에서 비롯된 제도로 국제 금융위기 시 신뢰를 유지하고, 달러 가치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금본위제는 폐지됐지만 약 8133.5톤(2023년 기준)을 비축하고 있어,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금 보유국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비트코인 전략 비축은 이러한 전략 비축 개념을 가상자산에 적용한 것이지만, 기존 원유나 금과 같은 필수 자원과는 차이점이 있다.
사실 이미 덩치가 제법 커진 비트코인의 가격을 유의미하게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부보다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준비자산으로 편입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최근까지 고공행진 하고 있는 금값 랠리의 시발점도 지난 2023년 주요 중앙은행들의 강력한 금 매수세로 촉발됐다.
당시 금 수요 증가 배경에는 금융 시장 불안으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 심리의 영향도 있었지만, 미국의 러시아 제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3000억 달러를 동결시켰다.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누구든 미국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될 경우 언제든 재산을 몰수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현대 금융 시스템 내에서 달러가 얼마든 무기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각인됐고. 특히 미국과 친하지 않은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준비자산을 다변화하는 행동에 나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Fed가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인정하고 보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통상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또는 외환보유액은 자국 통화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통화인 달러에 대한 발권력을 지닌 주체가 별도의 준비자산을 비축해야 할 필요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Fed는 파운드화 및 엔화 등 일부 외화 자산을 제외한 특정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금 역시 미국 정부 소유의 금을 수탁하고 있는 것이지 공식적으로 직접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Fed가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걸 기대하는 것보다는 외환보유액의 다변화를 꾀하는 다른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것이 비교적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이더리움, 솔라나, XRP, ADA와 같은 알트코인도 전략 자산 비축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 직후 해당 가상자산들의 가격이 급등했는데 카르다노의 ADA의 경우 그 상승 폭이 71%에 달했다.
그러나 가격 상승과는 별개로 정작 업계에서는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더리움이나 솔라나 같은 지분증명(Proof of Stake·PoS) 방식 네트워크의 경우 특정 주체가 과도하게 많은 수량을 보유할 경우 블록체인 기술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탈중앙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새로운 비트코인을 획득하기 위한 채굴자들의 경쟁을 통해 그 보안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그 보유 분포가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반면 지분증명 방식의 네트워크 토큰은 마치 주식회사의 보통주와 같은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보유 토큰 수량에 따라 모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분증명 알트코인에는 큰 위험 될 수도
문제는 이러한 의결권이 주요 네트워크 업데이트나 변화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개별 금전 거래를 포함, 모든 스마트컨트랙트 기반 트랜젝션의 유효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가령 특정 주체 또는 집단이 전체 50% 이상의 토큰을 보유하게 된다면 이들이 원하는 대로 거래 내역을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네트워크 전체가 신뢰를 상실하며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두고 ‘51% 공격 위험’이라고 부른다.
충분히 분산된 지분 구조를 통해 특정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무신뢰를 통해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탈중앙화의 원리다. 3월 12일 기준 이더리움과 솔라나의 완전 희석 시가총액은 각각 약 2300억 달러, 73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미국 정부와 같은 초대형 주체가 앞장서서 비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해당 네트워크와 코인의 존폐가 걸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솔라나의 창립자인 아나톨리 야코벤코는 개인 엑스(X)를 통해 비축 자산 목록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 즉각적으로 강력한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결과를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달러의 지배력 강화를 대통령 재임 기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의 대부분이 지분증명 방식의 네트워크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상자산에 대한 전략 비축 자산 계획은 비트코인에는 의외로 큰 호재가 못 되고, 반대로 그 외 지분증명 알트코인에는 실질적 위협으로 나타나는 등 그 영향이 다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명백한 호재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전략 자산 비축 계획을 제외더라도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안인 ‘미국 스테이블코인 혁신을 위한 지침 및 수립법(The 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지니어스 액트)’이 의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는 등 가상자산 생태계의 유의미한 성장을 위한 토양이 마련되고 있다. 향후 미국 주도의 가상자산 논의가 시장 및 관련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태우 스페이스바 벤처스 대표 moneystaff@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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