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과 경제 지표를 고려할 때, 금리 하락 가능성과 자본 차익 기대감 등으로 장기 국채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 주식과의 보완적 역할을 감안하면, 포트폴리오 분산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마켓 리더의 시각]
그런데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그는 주식 시장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당선 이후 주식 시장 랠리가 모두 반납될 만큼 최근의 하락세는 매섭지만 ‘트럼프 풋’은 도통 나오지 않았다. 바클레이에 따르면 트럼프 1기에서 그는 증시에 대해 156번 트윗을 했고, 그중 60번이 첫해에 이뤄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 11월 이후 트루스 소셜에 올린 126개 게시물 중에 주식 시장 언급은 단 한 번에 그쳤다. 그렇다면 지금 트럼프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아마도 채권이 아닐까 싶다. 트럼프 2기의 핵심 인물인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은 “트럼프가 장기 금리 하락을 원한다”라고 밝힌 바 있고,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인 일론 머스크 역시 “채권 숏 포지션은 잘못된 베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증시 하락에는 무덤덤하지만 금리 상승에는 비교적 기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현재 미국 정부의 관심이 ‘채권 금리’에 쏠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25년 만기가 도래하는 정부 부채 규모가 굉장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저렴한 이자에 차환하기 위해서는 시장금리를 낮출 필요가 있는 셈이다.
현재 시장을 움직이는 여러 변수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역시 관세다. 강력한 관세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장기 금리를 하락시킬 수 있다. 트럼프 2기 초반에는 관세가 물가를 상승시킬 것이라는 시각(금리 상승 재료)과 관세가 경기를 둔화시킬 것이라는 시각(금리 하락 재료)이 혼재했었으나, 2월 중순 발표된 소비 관련 지표가 컨센서스를 크게 하회하면서 ‘경기 둔화’ 내러티브가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됐고 실제 장기 금리는 유의미한 조정을 받았다.
베센트 장관은 최근 관세 인상이 새로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라는 의견에 반대했고, 미 중앙은행(Fed)의 크리스토퍼 월러 역시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실제 여러 기관에서 ‘관세가 물가를 상승시키는 폭보다 성장을 위축시키는 폭이 더 클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관세가 물가에 주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성장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위축시킨다면 장기 금리의 하락은 필연적일 것이다.
물가 또한 현재까지의 상황은 우호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관세가 물가를 높이는 요인인 것은 맞으나, 이는 ‘일회성’ 요인이라는 의견이 많다. 통상 물가 상승률은 전월 혹은 전년 대비 상승률로 관측한다. 관세 부과 시점에 즈음해 일시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높아질 수는 있겠으나,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또한 기대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실제 최근 발표된 개인소비지출(PCE) 및 소비자물가지수(CPI) 지표는 시장의 전망에 대체로 부합하거나 예상보다 낮은 수준의 물가 상승률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양호한 디스인플레이션 추세의 지속은 Fed가 기준금리를 낮출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국채 금리 하락을 지지해주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반 환경은 자연스럽게 미국 장기 국채의 투자 매력으로 연결된다. 우선 현재 금리 레벨 그 자체로서 미국 장기 채권은 매력적이다. 우리가 은행에 예금을 한다고 해도, 저축은행에 맡기는 것과 시중 대형 은행에 맡기는 것은 금리에 차이가 있다. 좀 더 안전한 곳에 돈을 맡기는 대신 조금 낮은 금리를 감수하는 건 당연하다.
미국 국채는 누가 뭐라 해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 중 하나다. 그런데 이렇게 안전한 자산이 이례적으로 높은 금리를 주고 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금리의 부침은 있을 수 있겠지만, 긴 시각에서 봤을 때 현재의 높은 금리는 분명 매력적인 구간이다. 예금과는 달리 채권은 ‘자본 차익’이 있다. 장기 금리의 절대적 레벨이 과거 대비 매력적인 구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장기 국채 매수를 통한 자본 차익 또한 기대할 수 있는 시점으로 판단된다.
서학 개미, 국채로 분산투자
미국 장기 국채는 미국 주식의 보완재로서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투자 규모는 근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 왔다. 하지만 자산 배분 투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특정 자산군에의 쏠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미국 경기 침체 확률에 대한 시장 컨센서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리스크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경기 침체로 인해 주식 시장이 급격히 나빠진다면, 이를 상쇄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장기 채권이다.
경기 침체는 필연적으로 금리 하락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주요 경기 침체 구간에서 주식이 급락할 때, 완충 역할을 해준 것이 미국 장기 국채다. 미국 주식과 미국 장기 국채를 단순히 50대50으로 섞은 포트폴리오라 할지라도, 변동성 대비 수익률은 주식만 100%, 혹은 채권만 100%를 보유했을 때보다 훨씬 우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산 배분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은 무조건 미국 주식을 사야 한다’, ‘미국 장기 국채에 올인할 때다’와 같은 이분법적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두 자산 간의 분산효과를 누리기 위해 포트폴리오 내에 부족한 자산을 채워 나가는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 주식을 갖고 있다면, 미국 장기 국채를 통해 분산효과를 높여 보는 것은 어떨까.
이상훈 삼성증권 채널솔루션전략팀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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