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학교 외관이 변하고 있다. 네모난 건축물에서 탈피해 벽을 허물고, 지역과 조화를 이루는 개방적 형태로 진화 중이다.
[건축]
노르웨이 로포텐 지역의 람베르그에 위치한 플락스타드 학교는 혹독한 북유럽 기후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기후 적응형 건축의 대표적 사례다. 로포텐은 강한 바람과 폭우, 급격한 기후변화가 잦은 지역이다. 플락스타드 학교는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고려해 길게 뻗은 곡선 형태로 설계했으며, 이는 강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건물 배치는 학생들의 활동성을 고려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실내·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계절이나 날씨와 상관없이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플락스타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요소는 유연한 학습 환경이다. 학교 내부 공간은 직관적 동선으로 구성해 연령별 학습 구역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학생들이 교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학교 중심부에는 원형 극장, 음악실, 다양한 좌석 배치가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사회적 상호작용과 개별 학습이 가능하다. 건설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이었다. 학교 외벽과 창호에는 단열 기능이 뛰어난 고성능 자재를 사용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했고, 실내 마감재는 내구성이 높은 친환경 소재를 활용했다. 플락스타드 학교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건축적 해법을 제시하며 ‘건축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교육 시설은 지역사회와의 조화를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있다. 프랑스 아르파종에 위치한 클로딘 에르만 학교는 지역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학교는 3개의 주요 건물로 구성된다. 북쪽에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간과 방과 후 활동을 위한 시설을, 북서쪽에는 학교 식당을, 남쪽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배치했다.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다목적실, 식당은 학교 중심부의 공공 광장 주변에 배치해 접근성을 높였다. 또 유치원은 공공 광장 근처에 배치해 동선을 최소화했고, 소음이 많은 초등학교는 남쪽 끝에 배치해 학습 환경을 최적화했다. 각 교실에는 개별 테라스를 마련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야외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야외 수업, 자연 관찰, 실험 공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실내·외를 연결하는 계단형 스텝 공간은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촉진하며, 복도 또한 학생들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계단형 좌석, 벤치 공간, 테라스 등을 통해 학습 환경을 교실 밖으로 확장하고, 학생들이 항상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클로딘 에르만 학교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작은 마을’처럼 조성한 미래형 교육 공간이다. 현대적 교육 방식에 맞춰 개방적이고 유연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는 학교로 자리 잡고 있다.
호주 시드니 도심에 위치한 달링턴 공립학교는 원주민 문화와 지속가능성을 조화롭게 결합한 학교다. 달링턴 공립학교의 설계 핵심은 유연함이다. 학교는 활동적인 학습, 조용한 학습, 야외 학습 등 다양한 수업 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자연 채광과 환기를 극대화해 안전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건물 외부에는 지역 고유의 카수아리나나무를 심어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설계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원주민 원로, 예술가, 원주민 예술가 그룹과 협력해 학교를 조성한 것이다. 학교 곳곳에는 원주민 식물과 예술 작품, 스토리텔링 요소가 배치되었으며, QR코드를 활용해 학생과 방문객이 해당 공간의 원주민 문화적 배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달링턴 공립학교는 교과서만 읽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환경이 결합된 살아 있는 교실이라 하겠다. 야외 학습 공간 또한 원주민 교육 방식과 밀접하게 연계되었다. 개방성, 자연과의 연결을 강조한 야외 학습 테라스와 정원 놀이 공간을 통해 학생들은 실외에서도 자유롭게 탐색하고 배울 기회를 얻는다. 또 원주민 예술가의 벽화를 본관 건물에 이어 신축 건물에도 재현해 문화적 연속성을 유지했으며, 원주민 장로가 디자인한 토템을 배치해 교실과 원주민 문화 스토리텔링을 연결했다. 학생들이 원주민 문화와 역사를 직접 경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공간 곳곳에 다양한 문화적 장치를 배치한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친환경 설계도 달링턴 공립학교의 중요한 특징이다. 빗물 수확 시스템, 자연 환기, 에너지 효율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태양광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붕과 유리창을 최적화했다. 달링턴 공립학교는 학생들이 원주민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배우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쓰임을 다한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건축의 역할이다. 프랑스 몽트뢰유의 한 오래된 공장은 건축가의 손길을 거쳐 요리 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몽트뢰유 요리 학교는 단순한 레노베이션을 넘어 지역 이주민을 교육하고,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과거 공장이 지역 경제에 기여했던 것처럼, 이제는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존 건물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교육 공간으로서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외관은 산업용 건물 특유의 벽돌과 콘크리트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목재와 현대적인 창호를 추가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즉 외형은 보존하되 내부는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레노베이션 과정에서 공간 활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1층에는 주방과 실습 공간을, 2층에는 강의실과 사무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식사 공간을 배치했다. 2개의 계단과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동선을 원활하게 하고, 학습과 실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주방은 학생들이 직접 조리 과정을 경험하며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개별 실습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었다. 또 1층 중앙부에 위치한 아고라(Agora)는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행사와 커뮤니티 모임을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주민들이 요리를 주제로 서로 교류하고 사회적으로 연결되는 장인 것이다. 이렇듯 몽트뢰유 요리 학교는 일반적 교육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통합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글 조진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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