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철도망 확충이 도시의 미래를 다시 철도 중심으로 이끌고 있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지역 균형과 초광역 메가시티를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철도는 국토 전략의 뼈대”라며 다시 돌아온 철도 시대에 해야 할 과제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커버스토리]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사진 김기남 기자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사진 김기남 기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비롯한 광역철도망 확충이 전국적으로 추진되면서 철도가 다시 도시 발전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속성과 정시성을 바탕으로 철도는 도심 간 이동의 핵심 수단이 됐고, 항공이나 도로교통을 대체할 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 또한 철도 중심 교통 체계로의 전환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도시 간 연결성과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지방 소멸과 수도권 과밀, 그리고 초광역 메가시티 구상. 이 모든 것은 결국 ‘연결’의 문제다.

도시계획 전문가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연결의 뼈대를 ‘철도’에서 찾는다. 지방이 살아나려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권역이 필요하고,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초광역 철도망이다.

하지만 그저 선을 긋는다고 도시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철도 위에 교육, 산업, 문화가 올라가야 하고, 그 중심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구상이 현실이 되려면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 교수는 “수익성만 따지는 민간 주도로는 역세권 개발이 난개발이 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통합적 기획과 실행 역량이 뒷받침돼야만 철도 사업을 통한 균형발전이 가능하다”며 철도를 매개로 한 도시 재편과 지역 활성화 전략, 철도 지하화 타당성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철도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왜일까요.
“도시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교통입니다. 교통이 발전하면 공간은 축소됩니다. 이를 시간·공간 압축, 영어로 타임·스페이스 컨트랙션(time-space contraction)이라고 합니다. 과거엔 서울에서 강릉까지 반나절이 걸렸지만, 이제는 2~3시간이면 충분하죠. 철도는 지역 간 거리감을 줄이며 공간을 좁게 느끼게 합니다. 예전에는 도로와 철도가 경쟁 관계였는데, 도로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속도를 빠르게 올리기 어렵습니다. 반면 철도는 기술 발전과 함께 꾸준히 속도를 높여 왔어요. 지금은 시속 300km 이상을 달리는 고속철도도 일반화됐고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데 있어 철도가 훨씬 더 우위에 있는 시대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요.
“제가 존경하는 영국의 도시계획학자 피터 홀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전 세계에서 도시국가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 두 나라밖에 없다고요. 한국은 국토 전체가 하나의 도시처럼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통과 통신이 매우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철도의 역할이 큽니다. 지금 수도권은 서울, 경기도, 인천이 하나의 기능적 권역으로 묶인 슈퍼 메가시티입니다. 반면 비수도권은 기초 지방자치단체 간 연계도 잘 안 돼 있죠. 수도권이 너무 강하니 인구가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수도권의 덩치를 쪼개든지, 비수도권에 비슷한 규모의 권역을 만드는 거죠. 후자가 바로 초광역 메가시티 구상입니다. 초광역 메가시티는 거점-중간 거점-소거점으로 구성된 권역입니다. 이런 구조를 묶어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철도예요. 철도는 지자체를 넘어선 광역교통망을 만들어내고, 그 덕에 비수도권도 하나의 도시처럼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균형발전의 핵심입니다.”

과거에도 지역 개발 시도는 많았는데 효과가 미비한 이유는 뭘까요.
“수도권에는 막대한 재정과 민간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반면 비수도권에는 그에 상응하는 규모의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수도권은 계속해서 인구가 몰렸고, 이는 집값 폭등으로 이어졌죠. 대표적으로 1988~1989년에 집값이 급등했는데, 이로 인해 사회적 충격이 상당했습니다. 자살자가 속출하기도 했고요. 결국 이에 대응해 나온 것이 1기 신도시 정책입니다. 수도권 외곽에 택지를 개발하고 공동주택을 공급한 것이죠.”

그런데도 주거 문제는 계속 반복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1기 신도시 이후에도 집값은 계속해서 폭등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2기 신도시, 문재인 정부에서는 3기 신도시 정책이 나왔습니다. 이 신도시들이 외곽에 조성되면서 주택은 공급됐지만, 일자리는 따로 있었기 때문에 이들 도시는 베드타운이 될 위험이 컸습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광역교통망이 함께 구축되기 시작한 겁니다. 특히 최근에는 GTX 같은 초고속 광역망까지 더해지면서 교통의 결절점들이 새로운 거점이 됐죠. 재정 투자뿐 아니라 민간 자본까지 엄청난 규모로 들어갔어요. 만약 이런 조치가 없었다면, 사회적 불만이 폭발해 정치적 혼란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죠.”

비수도권에는 그런 식의 대규모 정책이 없었던 건가요.
“많지 않다고 봐야죠. 수도권에서는 1기·2기·3기 신도시와 함께 교통망까지 결합된 형태의 종합적 개발이 진행됐지만, 비수도권에서는 그에 상응할 만한 투자 계획이나 개발 모델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발전은 점점 더 비대칭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구조적 원인 중 하나는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이하 예타)입니다. 비수도권에 교통이나 다른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타는 과거 수요를 기준으로 미래 수요를 예측하기 때문에, 인구가 줄고 경제력이 약화된 지방은 수요가 낮게 나오죠. 그래서 예타를 통과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예타는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제도입니다. 대규모 재정 투자를 검증 없이 진행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지죠. 다만 인프라가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관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수요가 있으니 인프라를 준다는 식이라면 지방은 계속 뒤처집니다. 지역 평가 기준을 달리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주장하는 게 ‘투자가 수요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내륙철도의 경우, 지금은 수요가 적지만 장기적으로 기능적 연계를 강화하면 엄청난 잠재 가치가 생깁니다. 이런 프로젝트는 수요가 아닌 전략적 가치를 평가해야 해요.”

철도 외에도 지역 자립을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철도는 기본 뼈대입니다. 이 위에 기능이 올라가야 해요. 교육, 문화, 산업을 얹혀야죠. 무엇보다 ‘직주락 도시’로 발전해야 해요. 말 그대로 일하고(職), 살고(住), 즐기는(樂) 도시입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직(職)’이에요.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서예요. 그들이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에요.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고, 그 불안을 피하려다 보니 서울로 향하게 되는 겁니다. 이 불안은 단순히 일자리 문제를 넘어서 결혼, 출산, 주거, 육아, 교육으로까지 이어져요. 그래서 지역 재생 전략의 시작은 언제나 일자리여야 합니다. 문화나 정주 환경이 중요하지만, 일자리가 있어야 그다음도 가능해요. 역순으로는 어렵습니다.”
“초광역 메가시티 탄생, 철도에 달렸다”
그런 일자리는 어디에 만들어야 효과적일까요.
“고급 일자리는 초광역권의 핵심 거점에 집중돼야 합니다. 지방에 청년들이 떠나는 대부분의 이유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에요. 일자리가 들어오면 문화는 더 활기를 띠게 됩니다. 반대로 문화부터 키운다고 좋은 일자리가 생기지는 않아요. 혁신 생태계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밀도’, ‘다양성’, ‘소통 구조’죠. 서울은 이 조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쉽게 소통할 수 있고, 인프라도 충분하죠. 반면 지방은 이게 어렵습니다. 이런 구조를 갖춘 도시를 만드는 게 목표가 돼야 해요.”

최근 추진 중인 철도 지하화 사업은 어떻게 보시나요.
“철도는 분명히 소음, 진동, 지역 단절, 주변 낙후 등의 문제를 유발합니다. 예를 들어 남영역 주변이나 경원선 라인을 보면 철로를 중심으로 개발이 정체된 지역이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철도 지하화가 거론되고 있는데요. 이는 상부 공간을 공공 개발 용지로 활용하고, 도시 기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입니다. 상부를 잘 개발해야 지하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데, 수익이 나는 곳은 극히 일부, 대체로 거점 지역뿐입니다.”

모든 구간의 지하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가요.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은 수익이 나기 힘들어요. 서울조차 경원선 전 구간을 지하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국토교통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안산, 부산, 대전 등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지하화나 입체 복합 개발 계획을 제안했고, 이 중 안산만이 유일하게 지하화를 추진하게 됐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덮개 공법을 활용한 복합 개발입니다.”

지하화 사업의 타당성을 확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저는 두 가지 조건을 봅니다. 하나는 철도가 단순히 혐오 시설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모든 철도를 지하화할 정도의 부담을 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공공성입니다. 지하화를 하려면 명확한 공공 목적, 사회적 합의, 지역경제 활성화나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필요합니다. 이럴 경우에만 수천억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들일 명분이 생기는 거죠.”

실제로 어떤 지역이 그런 공공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대전은 대전역과 조차장 부지를 포함한 재구조화 가능성이 있고, 부산도 북한 지역과 연계해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이런 지역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 균형발전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국토 전체를 하나의 계획 단위로 보고 수익이 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포괄하는 단일 사업 주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울 따로, 대전 따로, 부산 따로 하면 각자 수익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교차 보전이 불가능합니다. 반면 국가 철도공사 같은 단일 사업 주체가 이 사업을 맡으면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래서 공공성 높은 지역, 수익성 낮은 지역, 균형발전이 절실한 지역들을 하나로 엮어 총괄 기획하고 운영해야 합니다.”

그 밖에 철도 개발로 바뀌는 도시의 모습이 있다면요.
“철도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면서 결절점 역할을 하는 역세권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서울역, 삼성역은 GTX가 교차하면서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 결절점이 됐고, 이는 고급 인재와 기업이 몰리는 혁신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은 단순히 땅값이 비싼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기회를 물고 들어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업들도 높은 땅값을 감수하고 입지합니다.”

지역 도시에도 이런 흐름이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다만 지역의 역세권 개발은 민간 주도의 난개발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입니다. 중소도시의 경우 철도가 새로 들어서면, 그 주변 땅을 지역 유지나 부동산 투자자들이 선점하고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역 주변만 개발되고 기존 원도심은 공동화 현상을 겪으며 점점 쇠퇴하게 됩니다. 따라서 역세권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대중교통과 연계된 환승 중심 공간으로 기능하게 하려면 공공의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역을 단순한 정차 지점이 아니라 지역 교통의 결절점으로 설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철도공단 같은 공공기관이 계획 단계부터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실제 그런 모델이 추진되고 있나요.
“현재까진 없습니다. ‘역세권법’이라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이를 적용해 사업을 진행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법은 도시개발사업과 유사하게 역 주변의 토지를 포괄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해주지만, 사업 주체가 철도공단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철도공단이 이러한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도시 개발 경험이 있지만 역 부지를 포함한 사업은 관할이 아니어서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역세권 개발은 공공의 역할과 법적 틀은 존재하지만 실행 역량이 부족해 표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틈을 민간이 메우면서 계획 없는 개발로 흘러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요. 이를 방지하려면 ‘역세권법’에 기반한 계획적 개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국토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국토 전략은 지나치게 수도권 중심, 또는 단일 도시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권역별 전략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수도권은 이미 기능적으로 하나의 도시입니다. 비수도권은 이 구조를 참고해 권역별 슈퍼 메가시티를 기획해야 해요. 그리고 그 연결 고리는 철도입니다. 철도가 연결되면 사람도 연결되고, 기업도 움직이고, 생활권도 생깁니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라, 국토 전략의 핵심 도구입니다. 철도를 중심으로 공간을 설계하고, 그 위에 산업과 정주 전략을 얹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