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되살아났다. 유상증자 쇼크로 주가 흔들렸지만 논란을 정면 돌파해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모습이다. 증자 축소·승계 논란 차단·11조 대규모 투자 계획으로 시장에서 재평가를 받았다.

[종목 집중탐구]
지난 2월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IDEX) 2025에 참가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시관 전경.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IDEX) 2025에 참가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시관 전경. 사진=연합뉴스
초대형 유상증자 소식에 주가가 추락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살아나고 있다. 지난 3월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후 30%가량 하락했던 주가는 전고점을 돌파했다. 조달한 자금을 미국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 투자하는 등 유상증자를 새로운 성장 발판으로 삼겠다고 밝히면서다. 한화그룹이 유상증자와 승계 작업 관련성 논란을 적극적으로 차단한 것도 주가 상승 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4월 14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79만20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날 장중 80만4000원을 찍으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시가총액은 36조 원을 넘어서며 7위에 올랐다. 시총 6위인 현대차(약 37조5500억 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조단위 '유증빔'에 비틀거린 주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3월 20일 3조6000억 원 규모의 대형 유상증자를 발표한 직후 2주일 새 주가가 30%가량 빠졌다. 발표 전 전고점은 78만 원이었으나 55만 원대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한화, 한화시스템, 한화솔루션, 한화오션 등 그룹주도 10% 이상 하락하며 약세를 보였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단기적으로 지분 희석에 따른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다만 유증 후 모든 기업의 주가가 내려가는 건 아니다. 지난 3월 14일 2조 원 규모 유증 추진을 결정한 삼성SDI가 대표적이다. 증자 결정일 주가는 6.18% 급락하며 19만1400원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회복세를 보이며 지난 28일 기준 19만9400원까지 올라섰다.

유증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을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합작법인(JV)과 헝가리공장 생산능력 확대에 사용하는 점이 투자자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의 목적이 운영자금 부족이거나 부채 상환인지, 매출 확대를 위한 설비 투자인지에 따라 향후 주가가 결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증자 소식이 나오면 일단 주가가 내려가지만 자금 조달 목적에 따라 회복력에 차이가 있다”며 “설비 투자가 업황 호조와 맞아떨어지면 투자심리 회복이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설비 투자가 목적이었지만, 증자 규모가 이례적으로 큰데다 갑작스럽게 발표된 탓에 투자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유동자산이 충분한데 자본시장 최대 규모의 주주배정 유증에 나섰다는 것도 논란을 일으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동자산은 지난해 기준 약 22조867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8% 증가하며 현금흐름이 양호한 편이다. 한화오션 지분 매입에 1조 원을 투입한 데 이어 또다시 조 단위 자금을 주주들로부터 조달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증권가에서도 3~4년에 걸쳐 집행될 자금을 유상증자로 한꺼번에 마련해 주가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증권사들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일제히 하향 조정한 배경이다. 삼성증권, DS투자증권, 다올투자증권 등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이 지난 4월 8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 그룹 본사에서 열린 '한화에어로 미래 비전 설명회'에서 중장기 투자 계획  및 최근 유상증자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이 지난 4월 8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 그룹 본사에서 열린 '한화에어로 미래 비전 설명회'에서 중장기 투자 계획 및 최근 유상증자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증자 규모 축소하고 논란 진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시장의 비판에 '정공법'으로 맞섰다. 유상증자와 관련한 전략 세미나를 열고 미래비전 자료를 공개하는 등 시장과 소통했다. 한화그룹의 승계와 유상증자가 관련이 있다는 의혹도 해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주들의 비판을 수용해 지난 4월 8일 주주배정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 원으로 줄였다. 축소분 1조3000억 원은 한화에너지 등 3개 사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한화에너지는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회사로, 사실상 대주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봉쇄한 것이다. 그 결과 증자 비율(13%→9.36%)과 희석률(11.5%→8.6%)은 기존 안보다 소폭 줄어들게 됐다.

증자 가격도 차별화했다. 소액주주들은 15% 할인가에 참여할 수 있지만 나머지 그룹사는 시가로 할인 없이 신주를 배정받기로 했다. 유상증자의 흥행을 위해 그룹사가 부담을 나눠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선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주가가 빠르게 회복됐다고 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시설 확대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는 점도 회사의 펀더멘털에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4월 들어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연일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10일엔 외국인이 724억 원어치 주식을 사들이며 외인 순매수 상위 종목 1위에 올랐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앞다퉈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목표주가를 95만 원으로 올렸다. 국내 증권사들도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신한투자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60만 원에서 80만 원으로. LS증권은 86만 원으로 올렸다. 미래에셋증권도 목표주가를 94만 원으로 40.3% 상향했다. 서재호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해외 방위산업·조선 거점 확보를 통한 외형 성장을 증명한다면 중장기 투자가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첨단 방산 공장에 11조 투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영업이익 1조7000억 원을 올렸다. 올해 영업이익은 2조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이지만 계획한 투자 규모는 이를 능가한다. 앞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1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3조600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7조4000억 원은 향후 벌어들일 현금과 금융 회사 차입 등을 통해 마련한다. 한화의 핵심 무대인 유럽에서 최근 역내 생산된 무기를 구매하자는 방산 블록화 열풍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초격차 기술로 수주전에 나서야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방산 업체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도 투자를 서두른 배경으로 꼽힌다. 한화 관계자는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지금 같은 방산 호황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11조 원의 투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 계획을 살펴보면 폴란드 등 유럽 생산 거점 확보 및 중동 합작 공장 설립 등에 6조3000억 원, 첨단 방산 기술 개발 및 시장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R&D)에 1조6000억 원을 투입한다. 지상 방산 인프라 및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2조3000억 원, 항공 방산 기술 내재화에도 1조 원을 투자한다. 방산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해외 거점과 파트너십을 확대해 중장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업계에선 투자 계획 중 미국 MCS 스마트 팩토리 사업과 사우디 방산 협력 우선협상 대상자 사업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중요한 마일스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자주포 교체 사업과 사우디의 K-9, 장갑차 획득 사업 등 수조 원대 빅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폴란드 대상 천무 납품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환율이 견조하다는 점, 영업레버리지 효과 등도 실적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에셋증권은 지상 방산 부문은 이미 확보된 수주잔고만으로 2027년까지 연평균 매출 성장률 20%를 유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정동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베트남 K-9 108문, 사우디 K-9 200문, 말레이시아 천무, 폴란드 레드백 178대, 루마니아 레드백 246대 등 잠재 수주 파이프라인이 견고하다"며 "추후 탄약 수출 사업까지 전개한다면 유럽 재무장 및 휴전 후 군 비축 사이클에서 혜택을 받으며 실적이 급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개발한 다연장 로켓포 천무. 사진=한국경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개발한 다연장 로켓포 천무. 사진=한국경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목적 무인 차량 블록2. 사진=한국경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목적 무인 차량 블록2. 사진=한국경제
인도서 두각…유럽 수주 기대감도 커져

북유럽, 동유럽 대상 추가 수주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가하면서 종전 이후에도 방산 물자 수요는 러시아 접경 지역인 북유럽 발트 3국 동유럽 중심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정환 LS증권 연구원은 "북유럽, 동유럽, 남중국해 국가향 지상화력 체계와 루마니아 차기 보병전투장갑차 사업 등의 추가 수주가 기대된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출 비중이 2025년 69.2%에서 2027년 77.1%로 수출 비중이 증가하며 외형 성장뿐만 아니라 영업이익률 개선도 지속 이뤄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도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4월 초 인도에 3700억 원 규모의 K-9 자주포 수주 계약을 맺었다. 인도 중공업 기업 라센앤드토브로(L&T)와 함께 인도 육군에 자주포를 공급할 예정이다. 2017년 인도와 1차 계약을 맺었을 때 K-9 자주포 공급계약을 체결해 2020년까지 납품을 완료했고 약 7700억원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동유럽 등 유럽 시장에서 실적을 쌓아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가 아시아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인도와의 또 다른 계약을 기대하고 있다. 대공 체계 사업 등이 거론된다. 인도 방위산업 시장은 빠르게 커지는 추세다. 인도는 육해공 인프라 현대화 등 군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 방산 시장 규모는 현재 170억달러(약 24조8693억 원)에서 5년 안에 250억 달러(약 36조5725억 원)로 커질 전망이다. 인도가 아시아 방산 시장의 핵심 국가인 만큼 인도에서 수주 기록을 쌓으면 주변 국가와의 추가 계약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K-9 자주포의 우수한 성능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안정적인 납품 실적으로 아시아 방산 시장에서 각 국가와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유상증자 수정하자 주가 ‘훨훨’…한화에어로, 시총 5위 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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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