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의 허리에 해당하는 ‘빈 퍼즐’ 구간이 드디어 맞춰졌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철도 건설이 처음 계획된 이래로 100여 년 만에 동해선의 긴 척추가 이어졌다. 최근 개통한 동해중부선(포항~삼척) 구간을 거쳐 종착역인 강릉까지 철길을 달려봤다.

[커버스토리] 신규 노선 대해부 - 동해선
동해선 근덕역을 지나는 ITX-마음/사진=국토교통부
동해선 근덕역을 지나는 ITX-마음/사진=국토교통부
100년 만에 맞춘 ‘퍼즐’…포항·삼척 철마가 달린다
“경상도 사람들에겐 기차로 강릉까지 가는 게 좀 낯설지. 철도 뚫린다는 말만 오래 들었지 기찻길이 다 이어진 건 처음이니까.”(70대 동해선 승객)

지난 4월 15일 이른 오전. 서울에서 포항역으로 가는 한국고속철도(KTX)에 몸을 실었다. 동해안 남단에서 시작해 강릉까지 한달음에 갈 수 있는 동해선을 달려보기 위해서다. 지난 1월 1일 동해안 철도망 사업의 3개 구간 중 동해중부선이 개통했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철도 건설을 계획한 이후 100여 년 만에 동해선(부전~강릉)이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 셈이다. 비로소 채워진 동해선의 퍼즐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동해중부선(포항~삼척)의 출발역이랄 수 있는 포항역으로 향했다.

활기 더해진 포항역…이용객 14.6% 증가

포항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께. 주말에 비해 많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역사 내 대기석은 이용객으로 가득찼다. 서류가방을 든 30대 직장인부터 6~7명씩 무리를 이룬 70대 여행객까지 여러 연령대가 고르게 오간다. 실제 이용객 수는 얼마나 늘었을까. 코레일에 따르면 올해 1~3월 포항역 이용객은 79만9000명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69만7000명)와 비교하면 14.6% 증가한 수치다. 동해선의 영향으로 포항역에 좀 더 활기가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포항역/사진=정초원 기자
포항역/사진=정초원 기자
100년 만에 맞춘 ‘퍼즐’…포항·삼척 철마가 달린다
포항역을 나오면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광활한 벌판이 눈앞에 펼쳐진다. 포항시는 신도시 개발 명목으로 포항역 부근의 북구 흥해읍 일대를 개발해 왔다. 포항역에서 1km쯤 떨어진 이인지구는 10년 전 포항에 KTX가 들어선 시절부터 철도 개통의 수혜 지역으로 자주 거론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역세권의 수혜를 볼 정도로 뚜렷한 상권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포항역에서 15분을 걸어 이인지구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지난 2021년 포항을 달군 아파트 청약의 열풍 속에서 분양된 포항역삼구트리니엔, 한화포레나포항이 나란히 단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각 1156가구, 2192가구의 대단지다. 청약 당시만 해도 5대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아파트들이다. 이인지구 부근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A씨에게 동해선 개통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동해선 개통이요? 수혜는 수혜죠. 허허벌판인 이 지역에 최근 몇 년 사이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이유가 역세권이어서니까요. 그런데 이 주변은 아직 포항역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동해선 수혜를 기대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죠. 그래도 위아래로 오가는 교통이 편해졌으니 앞으로 좀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포항역 부근의 개발 예정 지역/사진=정초원 기자
포항역 부근의 개발 예정 지역/사진=정초원 기자
장기적으로는 교통 호재가 부동산을 포함한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지만 아직 체감하기엔 이르다는 이야기다. 일단 최근 포항의 아파트 시장 자체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이인지구 일대의 대단지 아파트만 해도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마이너스피 매물이 다수 나왔다. 포항시 인구수에 비해 과도한 아파트 공급이 독이 됐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자 B씨는 “이 주변이 역세권이라 좋기는 한데 대전, 동탄 같은 지역에 비해 작은 도시라서 철도 개통의 메리트를 수도권만큼 체감하진 못하고 있다”면서 “공단에 종사하는 분들이 포항역 부근 아파트에 살면서 영덕, 울진 쪽으로 출퇴근하는데, 동해선 개통 이후 기차로 이동해도 돼 편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다”고 했다.
100년 만에 맞춘 ‘퍼즐’…포항·삼척 철마가 달린다
100년 만에 맞춘 ‘퍼즐’…포항·삼척 철마가 달린다
“사실 이 주변이 다 산을 깎아서 만든 신도시예요. 따지고 보면 포항 중심부가 아니라 외곽이죠. 옛 포항역은 구도심에 있었어요. 지금 KTX와 동해선이 다니는 역은 신포항역이라고 불러요. 신도시 개발이란 게 다 그렇잖아요. 사람이 모이고 지역이 번성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죠.”

B씨의 말대로 옛 포항역은 포항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도시의 터줏대감이었다. 부산진역과 울산역, 경주역, 포항역까지 이어지는 동해남부선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그러다 2015년 3월 서울~포항 KTX 개통과 함께 포항역 운영 사업은 신포항역으로 이전됐다. 기존 포항역이 있던 자리는 신세계건설의 주도 아래 개발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다만 이 프로젝트도 지방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서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한다.

포항역 인근 상인들은 “관광 수요나 지역경제 영향을 체감하고 싶으면 죽도시장으로 가보라”고 입을 모았다. 그곳이 포항의 바로미터라는 이야기였다. 동해안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은 수산물, 각종 주전부리가 두루 갖춰져 있어 포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필수코스로 들르는 장소다.

해수욕장과 가까운 죽도시장으로 가기 위해선 흥해읍에서 버스 혹은 택시를 타야 하는데, 버스 배차 간격은 20~30분 정도로 긴 편이었다. 포항역 앞 승강장에 즐비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택했다. 15분을 달리자 죽도시장 입구가 보였다. 어시장 초입부터 해산물 특유의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겼다.
죽도시장/사진=정초원 기자
죽도시장/사진=정초원 기자
죽도시장에서 20년 넘게 물회를 팔았다는 한 상인은 “예전에는 주로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여행을 오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기차를 타고 왔다는 분들이 좀 보인다”며 “특히 동해선이 막 개통하다고 떠들썩했던 연초에는 호기심에 단체로 놀러온 손님이 꽤 있었다. 65세 이상은 기차표가 할인되기도 하니 재미삼아 나들이 나온 팀들이 보였다”고 했다. 횟집 골목 상인들은 “같은 바닷가라도 강릉에서 파는 물회랑 우리 포항 물회는 아예 다른 음식이라고 봐야 한다. 조리법과 양념이 다르다”, “강릉에서 놀러온 사람들이 우리 시장 물회를 먹어보더니 맛이 좋아서 깜짝 놀라더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반대로 동해선의 영향을 크게 실감하진 못하겠다는 반응도 적진 않았다. 죽도시장에서 분식을 파는 한 상인은 “주말이면 동해선 기차표가 없어서 못 구할 정도라고는 들었다. 관광객들 사이에 기차 취소표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도 생겼다더라”면서 “정작 포항에 사람이 모이는 건 크게 체감되지 않는 것 같다. 4월 들어서는 주변 지역이 다 산불 피해를 입은 영향도 있었다. 포항보다는 기차역이 이번에 새로 생긴 삼척이나 종착역인 강릉이 동해선 관광 수혜를 입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포항역에 정차한 ITX-마음 열차/사진=정초원 기자
포항역에 정차한 ITX-마음 열차/사진=정초원 기자
다시 포항역으로 발걸음을 옮겨 삼척으로 갈 채비를 했다. 동해선 철길을 달리는 열차는 ‘도시간특급열차(ITX)-마음’과 ‘누리로’다. 부전역에서 강릉역 구간은 ITX-마음이 하루 왕복 8회(상행 4회·하행 4회) 운행한다. 시속 150km의 이 열차를 타면 포항에서 삼척까지 약 1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동대구에서 출발해 강릉까지 가는 구간도 있는데, 이 구간에는 ITX-마음과 누리로가 함께 투입된다. ITX-마음이 왕복 2회(상행 1회·하행 1회)씩, 누리로가 하루 왕복 6회(상행 3회·하행 3회)씩이다. 완행열차인 누리로는 ITX-마음보다 속도가 다소 늦다.

삼척으로 가는 철도를 달리다 보면 해안가와 가까운 구간에선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열차를 타는 내내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해안가와 인접해 철로가 지나가는 월포역, 근덕역 등 몇몇 구간을 기다렸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쪽빛 바다를 맞닥뜨릴 수 있다. 4월 15일 오후 포항역에서 탑승한 ITX-마음은 166.3km을 달려 정확히 1시간 43분 만에 삼척역에 도착했다.

일제강점기 동해선 구상, 100년 만에 이어져
삼척역/사진=정초원 기자
삼척역/사진=정초원 기자
이튿날인 4월 16일 오전 10시. 삼척시청 관광정책과 박경희 팀장을 만났다. 박 팀장은 삼척에서 나고 자란 지역 토박이다. 그와 동행하며 삼척 내 주요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삼척항을 지나 나릿골감성마을로 진입했다. 수년 전 삼척시가 작심하고 관광지로 키운 이곳은 삼척항이 내려다보이는 산골짜기 동네다. 나릿골 정상에 위치한 ‘바람의 화원’에 오르자 비탈진 마을 너머로 삼척 시내 전경과 포항역이 한눈에 보였다. 자연스레 동해선과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동해선 개통 이후로 문의전화가 정말 많이 왔어요. 동해선을 타는 분들 중 상당수가 60~70대 어르신인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삼척역을 많이 이용하는데, 젊은 친구들처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여행하는 게 익숙치 않은 나이대잖아요. 시내 교통편이나 관광지 정보를 시청으로 문의하는 일이 잦아요. 쏟아지는 전화 덕에 우리 직원들부터 동해선의 효과를 체감하는 중이죠.”
나릿골 정상에서 바라본 삼척 시내 전경. 나릿골감성마을, 포항역, 삼표시멘트 공장 등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정초원 기자
나릿골 정상에서 바라본 삼척 시내 전경. 나릿골감성마을, 포항역, 삼표시멘트 공장 등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정초원 기자
포항~삼척 구간 개통과 함께 신설된 삼척역은 상징적 의미도 크다. 동해선의 최초 구상은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했던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조선철도 12년 계획’이라는 이름의 청사진을 하나 내놨다. 한반도와 만주를 철도로 연결한다는 게 계획의 골자였다. 일제는 동해선 철도를 활용해 대륙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인 1928년 원산 인근 안변역에서 남쪽으로 철도 공사가 시작됐고, 1937년에는 양양으로 이어진 철도가 개통됐다. 이 노선이 바로 동해선 최상단의 동해북부선이었다. 앞서 언급한 동해남부선(부산진~포항)도 비슷한 시기인 1935년 개통됐다.

일제의 계획대로라면 동해선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동해중부선도 비슷한 시기에 개통됐어야 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급박한 정세 속에서 동해중부선 철도 공사는 흐지부지됐다.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엔 동해선의 ‘끊긴 허리’로 긴 세월 남아 있었다. 그러다 2009년 총사업비 3조4000억 원을 투입해 동해중부선 공사를 시작했다. 완공까지 걸린 기간은 꼬박 15년. 포항∼영덕 구간은 지난 2018년 1월 이미 개통했고, 삼척을 포함한 남은 철로가 최근 이어진 것이다.

신설된 삼척역…KTX 투입 계획도

“강릉역이나 동해역은 이전에도 운영되던 역이지만, 삼척역은 이번에 철도가 뚫리며 신설됐잖아요. 상징적일 수밖에 없어요. 동해선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생기니까 이동하기 편하다는 분들도 있고요. 예를 들어 삼척에서 대구로 이동할 때 고속버스를 타면 거의 4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삼척에서 포항까지 ITX-마음을 타고, 포항에서 대구까지 KTX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거예요. 동해선에 KTX가 들어오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죠. 그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아요.”

박 팀장의 말대로 KTX의 투입은 동해선이 지나가는 지역에 변화를 불러올 또 하나의 기회다. 현재 부전역에서 강릉까지 ITX-마음을 타고 이동하면 무려 4시간 50분이 걸린다. 그런데 시속 260km의 준고속열차인 KTX-이음만 투입돼도 시간을 3시간 아래로 크게 단축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연말 혹은 내년 초까지 동해선에 KTX-이음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대신 고속화를 위해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삼척에서 동해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45km 구간이 196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철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간을 달리는 열차는 평균 시속 60~70km 정도까지만 속도를 낼 수 있다. 저속 운행 구간 때문에 KTX-이음이 투입되더라도 최대치의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삼척시도 이 구간을 고속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사라지는 탄광 산업…관광 활성화 기대감
삼척 새천년도로를 지나 해변가로 왔다./사진=정초원 기자
삼척 새천년도로를 지나 해변가로 왔다./사진=정초원 기자
나릿골에서 내려와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연결되는 도로를 달렸다. 과거 이사부길로 불렸던 새천년해안도로다. 이 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삼척 관광 산업의 큰 분기점이 된 쏠비치가 보인다. 삼척에 들어서 있는 가장 큰 규모의 호텔·리조트다. 철도와 같은 교통망이 뚫린 것도 삼척으로서는 관광 산업의 큰 자산을 마련한 셈이지만, 숙박 인프라 또한 지역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축이다. 최근에는 더시에나그룹이 옛 펠리스호텔 자리에 호텔, 풀빌라, 수영장을 짓기로 했다. 박 팀장은 “삼척에 사람이 유입되려면 이런 인프라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구 6만 명의 작은 도시인 삼척은 관광 인프라 사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의 주력 산업이었던 탄광이 정부 정책에 따라 올해 문을 닫게 되면서, 미래 먹을거리를 육성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폐광 이후 삼척의 핵심 산업에 대해 묻자 “관광, 그리고 수소 산업”이라는 대답이 떨어졌다.

삼척의 경제를 책임지던 전통적인 산업군 중에서는 시멘트 분야가 남아 있단다. 마침 삼척역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삼표시멘트 공장이 떠올랐다.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은 옛 동양시멘트 시절부터 삼척을 이끌던 향토 기업이다. 동해와 삼척 사이의 ‘삼척선’은 1930년대부터 시멘트 등 화물을 실어나르던 산업철도로 쓰였다고 한다. 철길 근처에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위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삼척역 철길 너머로 보이는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사진=정초원 기자
삼척역 철길 너머로 보이는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사진=정초원 기자
최근 국보로 지정된 죽서루를 거쳐 삼척역 맞은편의 번개시장에 정오 직전 도착했다. 삼척에서 수십 년간 명맥을 이어온 번개시장은 새벽 5~6시쯤 열어 11시 전에 문을 닫는 전통시장이다. 번개시장 상인들은 그날 새벽에 잡힌 해산물이나 신선한 농산물 등을 펼쳐놓고 저렴하게 판다. 영업 시간에 한발 늦은 탓에 대부분의 상인이 자리를 파하는 분위기였다. 수산물을 정리하던 한 상인에게 “삼척역이 들어서고 손님이 좀 늘었냐”고 하자 그는 “주말이면 사람이 이 골목 안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줄지어 구경만 하고 가는 손님들도 많다”고 했다.

박 팀장은 “관광객들은 시장에서 횟감을 구매해도 당장 먹고 갈 장소가 없어 그냥 떠나기도 한다”며 “시장 안쪽에 관광객들이 간단히 회를 먹을 만한 장소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워낙 협소하다”고 말했다. 시 차원에서 번개시장을 근처 다른 공간으로 이전하고, 시장을 현대화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삼척역 주변 역세권 개발의 일환이다. 다만 시장을 이전할 토지 소유주들에게 보상 작업이 완료돼야 해 사업이 최종 완료되기까지는 시일이 좀 걸릴 전망이다.
100년 만에 맞춘 ‘퍼즐’…포항·삼척 철마가 달린다
이른 아침 한때 잠깐 문을 여는 삼척 번개시장/사진=정초원 기자
이른 아침 한때 잠깐 문을 여는 삼척 번개시장/사진=정초원 기자
번개시장을 둘러본 김에 삼척중앙시장도 가보기로 했다. 거리가 한산한 것은 영업이 한창 때인 중앙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평일 정오께의 풍경과 달리, 주말이면 시장 구석구석이 관광객 손님으로 빼곡해진다. 시장에서 2대째 내려오는 호떡집을 하고 있는 50대 자영업자 이 모 씨는 “기차역이 생기고 확실히 손님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서울말씨 쓰는 분들이 관광객으로 많이 왔거든요. 그런데 올해 삼척역 생기고 한동안은 다 경상도 손님이었어요. 사실 동해선 중에는 강릉이 이미 관광지로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한 번쯤 방문했던 분들도 많을 테고요. 삼척이 강릉보다는 덜 알려진 면이 있어서 이쪽으로도 많이들 찾아오지 않나 해요.”
매년 봄에 열리는 삼척맹방유채꽃축제 현장. 통상 30만 명 이상이 다녀간다./사진=정초원 기자
매년 봄에 열리는 삼척맹방유채꽃축제 현장. 통상 30만 명 이상이 다녀간다./사진=정초원 기자
“경상도 관광객 증가”…시티투어버스 조기 투입

올 1~3월 삼척역 이용객 수는 4만2000명이다. 절대 규모로는 강릉역(92만5000명)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올해 생긴 중간역으로서는 미래를 기대할 만한 수치다. 앞으로 삼척에 유입하는 관광객 수를 늘리기 위해 동해선 철도를 활용한 임시열차도 고려 중이다. 현시점 동해선의 가장 큰 문제는 열차가 4량으로 편성돼 있다는 점이다. ITX-마음 열차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264명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주말에는 기차표를 구하기가 어려운 탓에 삼척으로 오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예비 관광 수요가 적지 않을 터.

박 팀장은 “경북 지역에서 관광객을 태워 삼척까지 이동하는 임시열차를 운영할 수도 있다”며 “임시열차를 이용한 관광객이 삼척을 편히 여행할 수 있도록 버스 혹은 임차비를 시에서 지원해주는 연계 이벤트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일명 ‘뚜벅이(자가용 없이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삼척 내에서 이동할 때 활용할 만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삼척은 도심, 관광지를 오가는 시내버스의 배차 간격, 노선이 부족한 편이다. 삼척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주말용 시티투어버스를 동해선이 개통한 1월부터 곧장 투입하기도 했다. 삼척 시티투어버스는 통상 4월부터 10~11월까지 운행하는 관광지 순회 버스로, 올해는 이례적으로 조기 투입했다.

“삼척역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막 신설한 역이기 때문에 주변 인프라도 차차 갖춰 나갈 수 있다고 봐요.”
누리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동해바다
누리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동해바다
누리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동해바다
누리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동해바다
강릉~제진 2028년 개통…“기차 타고 유럽까지 가고파”

박 팀장과의 동행을 마치고 강릉행 열차를 타기 위해 삼척역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새로 지은 분위기가 역력한 신역사를 뒤로한 채, 마지막 행선지인 강릉역으로 향하는 누리로에 몸을 실었다. 사실 동해선은 부전~강릉 구간만으로 완성됐다고 볼 수는 없다. 강릉에서 다시 북쪽으로 이어진 철로가 제진까지 가 닿아야 현재까지 계획된 동해선 모든 구간이 완공된다. 강릉~제진 구간은 오는 2028년 공사를 마치고 개통할 예정이다.

늦은 오후 강릉역에 도착하자 곧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는 KTX로 환승하기 전, 강릉역 주변에서 만난 60대 택시기사 최 모 씨는 동해선에 대한 기대감이 유독 커 보였다. 그는 뜻밖에도 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가는 꿈에 대해 말했다.

“택시기사는 운전대를 놓고 기차를 타는 게 낭만이잖아요. 장거리 운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이제 포항에서 삼척까지 철도가 뚫렸으니, 강릉 위쪽으로 제진까지도 동해선을 잇는 거죠? 그렇게 되면 유럽으로 철도가 이어질 가능성도 생기는 거 아닌가요.”

철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잇기 전에 일단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하하, 그건 그렇죠. 북한과 합의가 돼야 하죠”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마치 꿈을 꾸듯 유럽으로 떠나는 기차여행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지난 2018년만 해도 마냥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당시 남북 간 판문점선언을 계기로 남북철도 협력에 대한 이야기가 대대적으로 나왔고, 금방이라도 대륙으로 향하는 철로가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최 씨는 경쾌한 웃음 끝에 “그런 기대를 다시 한번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해선 누리로를 이용해 강릉역에 도착한 시민들의 모습/사진=정초원 기자
동해선 누리로를 이용해 강릉역에 도착한 시민들의 모습/사진=정초원 기자
글·사진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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