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의 허리에 해당하는 ‘빈 퍼즐’ 구간이 드디어 맞춰졌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철도 건설이 처음 계획된 이래로 100여 년 만에 동해선의 긴 척추가 이어졌다. 최근 개통한 동해중부선(포항~삼척) 구간을 거쳐 종착역인 강릉까지 철길을 달려봤다.
[커버스토리] 신규 노선 대해부 - 동해선

지난 4월 15일 이른 오전. 서울에서 포항역으로 가는 한국고속철도(KTX)에 몸을 실었다. 동해안 남단에서 시작해 강릉까지 한달음에 갈 수 있는 동해선을 달려보기 위해서다. 지난 1월 1일 동해안 철도망 사업의 3개 구간 중 동해중부선이 개통했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철도 건설을 계획한 이후 100여 년 만에 동해선(부전~강릉)이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 셈이다. 비로소 채워진 동해선의 퍼즐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동해중부선(포항~삼척)의 출발역이랄 수 있는 포항역으로 향했다.
활기 더해진 포항역…이용객 14.6% 증가
포항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께. 주말에 비해 많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역사 내 대기석은 이용객으로 가득찼다. 서류가방을 든 30대 직장인부터 6~7명씩 무리를 이룬 70대 여행객까지 여러 연령대가 고르게 오간다. 실제 이용객 수는 얼마나 늘었을까. 코레일에 따르면 올해 1~3월 포항역 이용객은 79만9000명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69만7000명)와 비교하면 14.6% 증가한 수치다. 동해선의 영향으로 포항역에 좀 더 활기가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포항역에서 15분을 걸어 이인지구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지난 2021년 포항을 달군 아파트 청약의 열풍 속에서 분양된 포항역삼구트리니엔, 한화포레나포항이 나란히 단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각 1156가구, 2192가구의 대단지다. 청약 당시만 해도 5대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아파트들이다. 이인지구 부근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A씨에게 동해선 개통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동해선 개통이요? 수혜는 수혜죠. 허허벌판인 이 지역에 최근 몇 년 사이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이유가 역세권이어서니까요. 그런데 이 주변은 아직 포항역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동해선 수혜를 기대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죠. 그래도 위아래로 오가는 교통이 편해졌으니 앞으로 좀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또 다른 공인중개업자 B씨는 “이 주변이 역세권이라 좋기는 한데 대전, 동탄 같은 지역에 비해 작은 도시라서 철도 개통의 메리트를 수도권만큼 체감하진 못하고 있다”면서 “공단에 종사하는 분들이 포항역 부근 아파트에 살면서 영덕, 울진 쪽으로 출퇴근하는데, 동해선 개통 이후 기차로 이동해도 돼 편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다”고 했다.


B씨의 말대로 옛 포항역은 포항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도시의 터줏대감이었다. 부산진역과 울산역, 경주역, 포항역까지 이어지는 동해남부선의 종착역이기도 했다. 그러다 2015년 3월 서울~포항 KTX 개통과 함께 포항역 운영 사업은 신포항역으로 이전됐다. 기존 포항역이 있던 자리는 신세계건설의 주도 아래 개발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다만 이 프로젝트도 지방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서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한다.
포항역 인근 상인들은 “관광 수요나 지역경제 영향을 체감하고 싶으면 죽도시장으로 가보라”고 입을 모았다. 그곳이 포항의 바로미터라는 이야기였다. 동해안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은 수산물, 각종 주전부리가 두루 갖춰져 있어 포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필수코스로 들르는 장소다.
해수욕장과 가까운 죽도시장으로 가기 위해선 흥해읍에서 버스 혹은 택시를 타야 하는데, 버스 배차 간격은 20~30분 정도로 긴 편이었다. 포항역 앞 승강장에 즐비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택했다. 15분을 달리자 죽도시장 입구가 보였다. 어시장 초입부터 해산물 특유의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겼다.

반대로 동해선의 영향을 크게 실감하진 못하겠다는 반응도 적진 않았다. 죽도시장에서 분식을 파는 한 상인은 “주말이면 동해선 기차표가 없어서 못 구할 정도라고는 들었다. 관광객들 사이에 기차 취소표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도 생겼다더라”면서 “정작 포항에 사람이 모이는 건 크게 체감되지 않는 것 같다. 4월 들어서는 주변 지역이 다 산불 피해를 입은 영향도 있었다. 포항보다는 기차역이 이번에 새로 생긴 삼척이나 종착역인 강릉이 동해선 관광 수혜를 입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삼척으로 가는 철도를 달리다 보면 해안가와 가까운 구간에선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열차를 타는 내내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해안가와 인접해 철로가 지나가는 월포역, 근덕역 등 몇몇 구간을 기다렸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쪽빛 바다를 맞닥뜨릴 수 있다. 4월 15일 오후 포항역에서 탑승한 ITX-마음은 166.3km을 달려 정확히 1시간 43분 만에 삼척역에 도착했다.
일제강점기 동해선 구상, 100년 만에 이어져

“동해선 개통 이후로 문의전화가 정말 많이 왔어요. 동해선을 타는 분들 중 상당수가 60~70대 어르신인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삼척역을 많이 이용하는데, 젊은 친구들처럼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여행하는 게 익숙치 않은 나이대잖아요. 시내 교통편이나 관광지 정보를 시청으로 문의하는 일이 잦아요. 쏟아지는 전화 덕에 우리 직원들부터 동해선의 효과를 체감하는 중이죠.”

일제의 계획대로라면 동해선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동해중부선도 비슷한 시기에 개통됐어야 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급박한 정세 속에서 동해중부선 철도 공사는 흐지부지됐다.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엔 동해선의 ‘끊긴 허리’로 긴 세월 남아 있었다. 그러다 2009년 총사업비 3조4000억 원을 투입해 동해중부선 공사를 시작했다. 완공까지 걸린 기간은 꼬박 15년. 포항∼영덕 구간은 지난 2018년 1월 이미 개통했고, 삼척을 포함한 남은 철로가 최근 이어진 것이다.
신설된 삼척역…KTX 투입 계획도
“강릉역이나 동해역은 이전에도 운영되던 역이지만, 삼척역은 이번에 철도가 뚫리며 신설됐잖아요. 상징적일 수밖에 없어요. 동해선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생기니까 이동하기 편하다는 분들도 있고요. 예를 들어 삼척에서 대구로 이동할 때 고속버스를 타면 거의 4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삼척에서 포항까지 ITX-마음을 타고, 포항에서 대구까지 KTX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거예요. 동해선에 KTX가 들어오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죠. 그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아요.”
박 팀장의 말대로 KTX의 투입은 동해선이 지나가는 지역에 변화를 불러올 또 하나의 기회다. 현재 부전역에서 강릉까지 ITX-마음을 타고 이동하면 무려 4시간 50분이 걸린다. 그런데 시속 260km의 준고속열차인 KTX-이음만 투입돼도 시간을 3시간 아래로 크게 단축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연말 혹은 내년 초까지 동해선에 KTX-이음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대신 고속화를 위해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삼척에서 동해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45km 구간이 196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철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간을 달리는 열차는 평균 시속 60~70km 정도까지만 속도를 낼 수 있다. 저속 운행 구간 때문에 KTX-이음이 투입되더라도 최대치의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삼척시도 이 구간을 고속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사라지는 탄광 산업…관광 활성화 기대감

인구 6만 명의 작은 도시인 삼척은 관광 인프라 사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의 주력 산업이었던 탄광이 정부 정책에 따라 올해 문을 닫게 되면서, 미래 먹을거리를 육성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폐광 이후 삼척의 핵심 산업에 대해 묻자 “관광, 그리고 수소 산업”이라는 대답이 떨어졌다.
삼척의 경제를 책임지던 전통적인 산업군 중에서는 시멘트 분야가 남아 있단다. 마침 삼척역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삼표시멘트 공장이 떠올랐다.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은 옛 동양시멘트 시절부터 삼척을 이끌던 향토 기업이다. 동해와 삼척 사이의 ‘삼척선’은 1930년대부터 시멘트 등 화물을 실어나르던 산업철도로 쓰였다고 한다. 철길 근처에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위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박 팀장은 “관광객들은 시장에서 횟감을 구매해도 당장 먹고 갈 장소가 없어 그냥 떠나기도 한다”며 “시장 안쪽에 관광객들이 간단히 회를 먹을 만한 장소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워낙 협소하다”고 말했다. 시 차원에서 번개시장을 근처 다른 공간으로 이전하고, 시장을 현대화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삼척역 주변 역세권 개발의 일환이다. 다만 시장을 이전할 토지 소유주들에게 보상 작업이 완료돼야 해 사업이 최종 완료되기까지는 시일이 좀 걸릴 전망이다.


“예전에는 서울말씨 쓰는 분들이 관광객으로 많이 왔거든요. 그런데 올해 삼척역 생기고 한동안은 다 경상도 손님이었어요. 사실 동해선 중에는 강릉이 이미 관광지로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한 번쯤 방문했던 분들도 많을 테고요. 삼척이 강릉보다는 덜 알려진 면이 있어서 이쪽으로도 많이들 찾아오지 않나 해요.”

올 1~3월 삼척역 이용객 수는 4만2000명이다. 절대 규모로는 강릉역(92만5000명)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올해 생긴 중간역으로서는 미래를 기대할 만한 수치다. 앞으로 삼척에 유입하는 관광객 수를 늘리기 위해 동해선 철도를 활용한 임시열차도 고려 중이다. 현시점 동해선의 가장 큰 문제는 열차가 4량으로 편성돼 있다는 점이다. ITX-마음 열차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264명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주말에는 기차표를 구하기가 어려운 탓에 삼척으로 오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예비 관광 수요가 적지 않을 터.
박 팀장은 “경북 지역에서 관광객을 태워 삼척까지 이동하는 임시열차를 운영할 수도 있다”며 “임시열차를 이용한 관광객이 삼척을 편히 여행할 수 있도록 버스 혹은 임차비를 시에서 지원해주는 연계 이벤트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일명 ‘뚜벅이(자가용 없이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삼척 내에서 이동할 때 활용할 만한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삼척은 도심, 관광지를 오가는 시내버스의 배차 간격, 노선이 부족한 편이다. 삼척시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주말용 시티투어버스를 동해선이 개통한 1월부터 곧장 투입하기도 했다. 삼척 시티투어버스는 통상 4월부터 10~11월까지 운행하는 관광지 순회 버스로, 올해는 이례적으로 조기 투입했다.
“삼척역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막 신설한 역이기 때문에 주변 인프라도 차차 갖춰 나갈 수 있다고 봐요.”


박 팀장과의 동행을 마치고 강릉행 열차를 타기 위해 삼척역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새로 지은 분위기가 역력한 신역사를 뒤로한 채, 마지막 행선지인 강릉역으로 향하는 누리로에 몸을 실었다. 사실 동해선은 부전~강릉 구간만으로 완성됐다고 볼 수는 없다. 강릉에서 다시 북쪽으로 이어진 철로가 제진까지 가 닿아야 현재까지 계획된 동해선 모든 구간이 완공된다. 강릉~제진 구간은 오는 2028년 공사를 마치고 개통할 예정이다.
늦은 오후 강릉역에 도착하자 곧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는 KTX로 환승하기 전, 강릉역 주변에서 만난 60대 택시기사 최 모 씨는 동해선에 대한 기대감이 유독 커 보였다. 그는 뜻밖에도 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가는 꿈에 대해 말했다.
“택시기사는 운전대를 놓고 기차를 타는 게 낭만이잖아요. 장거리 운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이제 포항에서 삼척까지 철도가 뚫렸으니, 강릉 위쪽으로 제진까지도 동해선을 잇는 거죠? 그렇게 되면 유럽으로 철도가 이어질 가능성도 생기는 거 아닌가요.”
철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잇기 전에 일단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하하, 그건 그렇죠. 북한과 합의가 돼야 하죠”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마치 꿈을 꾸듯 유럽으로 떠나는 기차여행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지난 2018년만 해도 마냥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당시 남북 간 판문점선언을 계기로 남북철도 협력에 대한 이야기가 대대적으로 나왔고, 금방이라도 대륙으로 향하는 철로가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최 씨는 경쾌한 웃음 끝에 “그런 기대를 다시 한번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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