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혔던 철도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전국을 연결하는 신규 노선이 속속 등장하며 일상은 바뀌고, 철도는 지역과 지역을 잇는 삶의 인프라로 거듭나고 있다. 속도 혁신과 친환경 기술의 선두주자로, 철도는 미래 교통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커버스토리]
KTX 열차가 서울역 승강장에 진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TX 열차가 서울역 승강장에 진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야흐로 ‘신(新)철도의 시대’다. 특히, 지난해는 대한민국 철도 역사에 있어 전환점이 된 해였다. 전국에서 무려 9개의 신규 노선이 개통(개통일 기준)되며 철도망 지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수서역~동탄역(3월 30일) 구간을 시작으로 8호선 별내선 암사~남양주(8월 10일), 서해선(홍성~서화성)·장항선(신창~홍성)·포승~평택선(11월 2일), 중부내륙선 충주~문경(11월 30일), 중앙선 안동~영천(12월 20일), 대경선 구미~경산(12월 14일), 대구 1호선 안심~하양역(12월21일), GTX-A 운정중앙~서울역(12월 28일) 등 전국을 가로지르는 굵직한 노선들이 잇따라 운행을 시작했다.
시간 단축하고 ‘삶’을 연결하다…철도의 재발견
올해도 철도 개통은 이어지고 있다. 새해 첫날 동해선 삼척~포항(166.3km) 구간이 개통된 데 이어 1월 11일 수도권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교외선 운행도 21년 만에 재개됐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국토부는 2025년 수립을 목표로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6~2035년)’을 준비 중이다.

이 계획은 향후 10년간 국가 철도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총 160개 사업, 약 360조 원 규모의 철도 사업을 건의했다. 경기도는 고속철도 3개, 일반철도 8개, 광역철도 29개 등 총 40개 노선을 요청했으며, 강원도는 춘천~원주선 등 13조 원 규모의 10개 사업을 제안했다. 경북은 대구경북신공항 급행순환철도 등 21개 사업을, 충북은 청주공항~김천선 등 10개 노선을 건의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이처럼 철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크게 고속철도 확산에 따른 생활권의 확대, 교통 혼잡 해소, 도시재생 및 지역경제 활성화, 수소열차·자기부상열차 등 교통 기술의 진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의 가치 등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고속철도가 바꾸는 일상

2004년 고속철도 KTX의 개통은 우리나라 육상교통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의 혁명을 불러왔다. ‘거리’가 아닌 ‘시간’ 중심의 지도 개념을 탄생시킨 이 변화는 지역 간 왕래를 보다 자유롭고 빠르게 만들며 국가 공간 구조에 큰 변화를 이끌었다.
지난 1월 1일 오전 강원 강릉역에서 승객들이 부산(부전)으로 향하는 'ITX-마음'을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1일 오전 강원 강릉역에서 승객들이 부산(부전)으로 향하는 'ITX-마음'을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2010년 경춘선 광역철도(ITX) 개통 이후 춘천시는 연평균 5%의 지역내총생산(GRDP) 증가와 17%의 운수업 성장률을 기록하며 고용 중심지가 확장됐다. 또 2005년 수도권 1호선 병점~천안 구간 연장 후 2년간 천안시 인구는 연평균 3.9% 증가, 이는 충남 전체 인구 증가율의 3.7배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시 GRDP는 연평균 17% 성장해 철도 개통이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바라본 천안아산역 일대. 사진=천안시 제공
하늘에서 바라본 천안아산역 일대. 사진=천안시 제공
이호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장은 “지역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거점의 형성, 지역 간 연계, 그리고 다양한 지원 정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이 중에서도 거점 간 연계를 통해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는 교통 기반 구축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교통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은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을 연결해 인적·물적 교류를 촉진하고, 철도역과 같은 거점 기반 시설은 지역경제 활동의 중심 허브로 기능한다”며 “철도는 이러한 연결성과 접근성 강화를 통해 지역경제의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철도, 국가균형개발 대안 될까

무엇보다 철도는 전국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하고, 국가균형발전을 견인하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고속철도역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 개발은 상업, 주거, 문화시설 유치를 촉진해 지역 활성화로 연결된다. KTX 개통 이후 동대구역 일대에서 복합환승센터 건립과 함께 상권이 확대되고, 최근 GTX, 동해선, 서해선 등 주요 노선의 개통·확장과 함께 인근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였던 것도 이런 기대심리에서 비롯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도로는 정체와 물리적 한계가 크지만, 철도는 지역 간 연계를 압도적으로 강화시킨다”며 “철도야말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하나의 권역으로 엮을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철도의 잠재력은 초광역경제권 실현을 위한 핵심 인프라인 수도권 GTX에서 두드러진다. 전문가들은 GTX가 단순한 이동 시간 단축을 넘어, 경제 활동의 반경을 확장하고 상권과 생활권 구조를 재편하는 물리적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김정인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GTX는 신규 철도역 설치를 통해 기존 지역 거점이 핵심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요 거점 간 연결 속도를 극적으로 개선해 경제권 내부의 교류와 통합을 활성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앙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GTX는 기존 대중교통과의 연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운영·관리하는 지자체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노선 조정, 환승센터 설치, 주차장 확보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GTX 사업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려면, 정부와 지자체가 긴밀히 협력해 이용자 중심의 연계 교통 체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역세권 개발이 언제나 지역경제 활성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교통 인프라 확충이 자칫 부동산 가격 상승만 유도하거나, 인근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키는 ‘불균형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특히 일자리, 산업 기반 등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을 경우 개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결국 고속철도와 같은 인프라는 단초일 뿐,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위해선 교통 외에도 정주 여건, 일자리, 교육·문화 기반 등 다각적 전략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출근길 교통대란의 해결사
시간 단축하고 ‘삶’을 연결하다…철도의 재발견
또한 철도는 도로 교통의 만성적 혼잡 문제를 근본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광역생활권에서는 출퇴근 시간대 고속도로와 주요 간선도로의 정체가 일상화돼,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통근 근로자 이동 특성 분석’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의 하루 평균 출퇴근 시간은 73.9분이며, 수도권 직장인은 82분으로 가장 길었다. 연령별로는 30대의 통근 시간이 76.9분으로 가장 길었으며, 미취학 자녀가 있는 근로자도 평균 77분으로 자녀가 없는 이들(73.7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통근에 썼다. 철도 교통망 확충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따라서 철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교통 혼잡 완화와 출퇴근 스트레스 해소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GTX처럼 수도권 외곽과 도심을 신속히 연결하는 고속철도망은 장거리 통근자의 시간 절약은 물론, 삶의 질 향상과 생산성 증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이 바꾼 철도의 미래

철도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는 기술 혁신에 있다. 그중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기술이 차세대 철도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를 ‘K-하이퍼튜브 원년’으로 선언하고, 향후 3년간 총 127억 원을 투입해 자기부상 기반의 초고속 추진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 연구개발(R&D)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이 신규 국토교통 R&D 과제로 추진하는 ‘초고속 하이퍼튜브 철도 인프라 핵심 기술 개발’ 사업의 일환이다. 사업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하며, 올해는 36억8000만 원의 예산이 우선 투입된다.

하이퍼튜브는 진공에 가까운 ‘아진공(0.001~0.01기압)’ 상태의 튜브 안에서 자기부상 기술을 이용해 차량을 띄우고, 전자기력을 통해 밀어내는 방식으로 최대 시속 1200km의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미래형 교통 시스템이다. 이 개념은 2013년 처음 ‘하이퍼루프’라는 이름으로 소개됐으며, 현재는 우리나라와 유럽을 중심으로 ‘하이퍼튜브’라는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하이퍼튜브는 비행기보다 빠르면서도 탄소 배출이 거의 없고, 기상 조건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점에서 차세대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로는 약 1시간 52분이 소요되는 반면, 하이퍼튜브를 이용할 경우 20분 이내 도달이 가능해 지역 간 접근성과 균형발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시간 단축하고 ‘삶’을 연결하다…철도의 재발견
이번 사업에서는 자기부상·추진 기술을 중심으로 하이퍼튜브 전용 선로, 초전도 전자석 시스템, 고속 추진 제어 기술, 부상·추진형 차체 설계 및 제작 등 네 가지 세부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차량 부상 및 추진 성능을 검증하게 된다. 국토부는 기술개발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철도국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세부 분야별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윤진환 국토부 철도국장은 “이번 R&D는 ‘철로 위의 비행기’라 불리는 하이퍼튜브 기술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지역 간 연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고,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 철도는 ‘가장 친환경적인 육상 교통수단’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 중 수송 부문은 13.5%를 차지하며, 이는 에너지와 산업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이 중 도로 부문이 96.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31.7%는 화물 운송에서 발생한다. 이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수송 체계의 구조적 전환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최적의 친환경 교통수단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8%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2023년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 전기·수소차 보급 확대, 대중교통 활성화, 내연기관 수요 관리, 친환경 철도·항공·해운 육성 등 4대 핵심 과제와 13개 세부 추진 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32조는 철도에 대한 투자 확대와 대중교통 수단분담률의 중장기·단계별 목표 설정을 명시하며, 교통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기차의 확산만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에 한계가 있다. 이호 본부장은 “현재 전기에너지의 61%는 석탄과 가스에서 생산되고 있어, 전기차 확산이 곧바로 ‘친환경’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 수요 자체를 줄이는 전략이 병행돼야 하며, 이는 곧 개별 이동 수단에서 대용량 수송 수단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철도는 버스보다 2배, 승용차보다 4배나 낮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동일 에너지로 더 많은 인원을 운송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된다”며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도 철도 중심의 교통 체계 개편은 탄소중립 실현의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