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후 자녀에게 재산을 주기로 한 사인증여 계약도 부모가 마음만 바꾸면 철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따라서 사후 재산 이전에 확실성을 원한다면 유언대용신탁 등 대안이 필요하다.
[상속 비밀노트]
그런데 A씨와 B씨의 내연관계가 파탄이 나면서 A씨는 이 약속을 깨기로 마음먹었다. B씨가 A씨와 C군 사이에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및 양육자 지정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소송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A씨는 C군이 A씨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 A씨는 B씨에게 C군이 성년이 될 때까지 매달 양육비로 200만 원씩 지급한다.’
자필유언, 유언 요건 안 되면 무효
A씨는 이렇게 C군을 자기 자식으로 인지한 데다가 매달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한 이상 사후 C군에게 아파트를 주기로 한 약속을 철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B씨는 한번 주기로 약속한 것을 마음대로 철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A씨는 이 약속을 철회할 수 있을까.
일단 A씨가 자필로 작성한 각서의 법적 성격이 문제가 된다. 이것이 만약 유증이라면 그것은 단독 행위이기 때문에 A씨가 언제든 임의로 철회할 수 있다(민법 제1108조). 또한 자필유언으로서 효력이 있으려면 반드시 유언자의 주소를 기재해야 한다. A씨는 이 각서에 주소를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필유언으로서 효력이 없다(민법 제1066조). 다만 이렇게 유증으로서 효력이 없더라도 그것이 사인증여로서의 요건을 갖추었다면 사인증여의 효력은 있다는 것이 판례다.

그렇다면 유증처럼 사인증여도 증여자인 부모가 수증자인 자녀의 동의 없이도 마음대로 철회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이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치열하게 대립해 왔지만 최근 대법원이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우선 사인증여는 계약이기 때문에 유증과 달리 계약 체결 시에 이미 효력이 발생했다. 따라서 계약의 상대방인 수증자의 동의 없이 증여자가 임의로 철회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사인증여는 사망을 원인으로 재산이 이전된다는 점에서 유증과 그 실질이 동일하기 때문에 유증과 마찬가지로 임의로 철회할 수 있다는 견해가 이에 맞섰다. 대법원은 최근 이에 대해 사인증여의 경우에도 유증과 마찬가지로 임의 철회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대법원 2022년 판결).
A씨는 각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사인증여의 의사 표시를 했고, C군의 친권자이자 법정대리인인 B씨가 이에 승낙함으로써 A씨와 C군 사이에 사인증여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각서는 사인증여의 효력은 있게 되지만, 판례에 따르면 A씨는 이 사인증여 계약을 임의로 철회할 수 있다.
필자는 유증과 별도로 사인증여라는 제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재산을 사후에 줄 요량이라면 유언에 관한 요건을 갖춰서 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유언의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한 민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실무를 하다 보면 사인증여로 인해 오히려 괜한 분쟁 거리만 양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인 경우 사인증여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자녀와 사인증여 계약을 체결한 부모는 자녀의 동의 없이도 마음대로 사인증여 계약을 철회할 수 있게 됐다. 만약 부모 사후에 자녀에게 재산을 이전하기로 하는 약속에 대해 강제력을 부여할 목적이라면 유언대용신탁의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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