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에서 ‘RWA(Real World Assets)’가 부상하고 있다. 미 국채 금리가 5%를 넘어선 시점부터 RWA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가상자산 따라잡기]

블랙록, 압도적 1위로 시장 주도
사실 RWA는 아주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STO(Security Token Offering), 즉 증권형 토큰 발행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다만 STO는 ‘자산의 유동화와 자금 조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RWA는 ‘실물자산을 블록체인에서 운용하고 유통’하는 데 중점을 둔다.
RWA가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미 국채 금리가 5%를 넘어선 시점부터다. 고금리 환경에서 가상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법정화폐로 전환하지 않고도 미 국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RWA 기반 상품에 주목한 것이다. 과거에는 가상자산을 현금화하고 다시 미국 채권에 투자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됐다.
지금은 RWA를 통해 가상자산을 곧바로 토큰화된 채권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전통 자금이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가상자산으로 흘러들어 왔다면 RWA는 그 반대 방향, 즉 가상자산 자금이 전통 금융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가 된 셈이다. 현재 미 국채 RWA의 전체 운용자산 규모는 69억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흐름에 가장 앞장선 곳이 블랙록과 프랭클린 템플턴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 유구한 전통과 채권 운용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템플턴은 2021년 미국에서 금융기관 중 최초로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를 출시했다. 그 뒤를 이어 블랙록은 ETF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BUIDL'이라는 이름의 토큰화 펀드를 출시하며 빠르게 성장해 현재 29억 달러 자산을 운용하며 압도적인 1위 사업자 지위를 점하고 있다.

미 국채 외에도 최근 빠르게 성장 중인 금 기반 RWA 시장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PAXG(Paxos Gold)와 XAUT(Tether Gold)와 같은 금 토큰이 있다. 2024년 말 이후 금 가격이 온스당 3300달러를 상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이들 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이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금 RWA 시장의 성장이 단순 가격 상승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 금 토큰은 블록체인에서 자유롭게 거래될 뿐 아니라 담보 자산으로 활용돼 탈중앙화 금융(DeFi) 시스템에서도 폭넓게 쓰인다. 예를 들어 금 토큰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아 레버리지를 일으키거나, 이자 수익을 추가로 창출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서로 다른 국가 간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채권을 유동화하는 프로젝트, 선박금융에 진출한 프로토콜 등 RWA는 다양한 실물 기반 금융 상품으로 확장되고 있다.

RWA가 전통 금융기관의 관심을 끌게 된 배경은 그 구조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에 익숙한 금융 활동을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인프라 위에 거의 그대로 얹을 수 있다. 복잡한 금융 라이선스를 새로 획득하거나 파격적인 서비스 혁신을 시도하지 않아도 기존 자산을 디지털화해 새로운 유통 경로를 확보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즉, RWA는 기존 시스템을 바꾸거나 단순히 개선하려는 기술이 아니라 기존 자산을 새로운 환경에서 운용하는 방식의 전환이다.
특히 퍼블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존 시스템은 특정 국가의 규제나 시간, 비용의 제약을 받는 데 반해 RWA는 블록체인의 탈국경적 성격을 활용해 국경을 넘어 새로운 자본 시장에 닿을 수 있도록 돕는다. 예컨대 동남아 투자자들은 국내 투자 인프라 없이도 미 국채 수익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제도권 금융을 활용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거나 허용된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거래도 RWA가 이를 가능케 한다.
STO와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STO 역시 실물자산을 토큰화해 투자받는 구조였지만 본질은 기존 금융 규제 안에서 증권처럼 자산을 발행하는 것이고, 그 구현 방식도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서도 STO 법안이 마련됐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규제의 테두리에서 자유롭지 않고 기술적으로도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운영된다. STO가 기존 시스템의 테두리 안에서 자산 유동화를 시도했다면 RWA는 블록체인의 효율성과 글로벌 접근성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여전히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 안에서 적극적으로 다루는 데 제약이 많다. 리서치와 실증은 상대적으로 더디고 트렌드를 따라잡는 속도도 글로벌에 비해 뒤처져 있다. 물론 규제는 시장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필수 요소다. 그러나 새로운 자산 운용 구조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준비 없는 관망은 곧 기회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RWA는 단지 또 다른 자산 형태의 변형이 아니다. 자산 운용 방식의 새로운 인프라이며, 금융기관의 경쟁력과도 연결되는 미래 전략이다. 지금부터라도 충분한 이해와 실험을 통해 이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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