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과 관세 강화는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1930년대 대공황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포에 휩싸여 시장을 떠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큰 기회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투자 인사이트]
지난 2017년 11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ed 의장 지명자인 제롬 파월이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7년 11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ed 의장 지명자인 제롬 파월이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29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인근 머콤카운티의 한 체육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기념하는 대규모 연설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자신의 업적을 자찬하는 동시에 관세가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 동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7.9% 하락했는데, 이는 역대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간의 주식 시장 성과 중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역시 3년 만에 역성장하며 전기 대비 연율 -0.3%를 기록했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관세 협상에 나서고 있지만, 더 이상 ‘동맹’의 의미는 사라지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고 있다. 시장의 혼란이 커질수록 1930년대 대공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모습이다. 미국 경제는 무사히 연착륙할 수 있을까, 아니면 침체의 길로 들어서게 될까.

1933년 고율 관세로 무역량 65% 감소

1930년 세계 경제의 내리막은 시작되고 있었다. 주식 시장의 버블이 붕괴되는 조짐이 나타나면서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고, 재고는 넘쳐났으며 경제 활동은 멈췄다. 각국 정부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지하며 경기의 흐름을 관찰할 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경제를 지탱해 온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는 시점에 미국 공화당은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일명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2만 개 이상의 수입품목에 대해 평균 4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특히 농산물과 공산품을 중심으로 자국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와 달리 동맹국들이 곧바로 관세 보복에 나서면서 국제 무역량은 1933년까지 65% 감소했고, 미국 기업들의 수출 감소는 주식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특히 미국이 보호하고자 했던 농업과 섬유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으며, 실업률이 급등하면서 소비도 큰 폭으로 위축됐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 동안 관세는 보편, 상호 그리고 보복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시장에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경제활동을 지연시키고 있다. 2025년 미국 주도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했던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분석 보고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2025년과 2026년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직전 대비 각각 0.5%포인트,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는 무역 갈등 등 정책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소비와 투자 위축이 세계 경제에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반영한 조치다. 이제 시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같은 경기 침체가 나타날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관세가 제품 가격을 높이고 생산량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투자자를 망설이게 하고 있다. 관세는 분명 세계 경제에 큰 위협이다. 그러나 아직 두 가지 관점에서 대공황의 재현 가능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협박에도 건재한 Fed…대공황은 오지 않는다
중앙은행도 대응 여력 충분

먼저 주식 시장 과열의 정도가 다르다. 1930년 직전 8년 동안 다우존스 지수는 무려 467% 상승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묘사된 1920년대의 미국 주식 시장은 말 그대로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였다. 많은 투자자들이 신용 거래로 빚을 내어 주식을 매입했고, 이는 지속적으로 주가의 고점을 만들어 갔다. 제조업 생산량과 생산 효율이 크게 증대됐고, 비약적으로 성장한 산업은 대규모의 고용을 창출했다. 이는 중산층의 소비 여력을 증대시켰고, 신흥 부자들을 탄생시켰다. 또한 2차 산업혁명으로 다양한 산업에서 신기술이 나타났고 이는 증시의 밸류에이션을 지속적으로 높게 만들었다.
1929년 10월 19일 '검은 목요일' 뉴욕증권거래소 밖에 모인 항의 군중. 사진=연합AFP
1929년 10월 19일 '검은 목요일' 뉴욕증권거래소 밖에 모인 항의 군중. 사진=연합AFP
그러나 현재 주식 시장은 1920년대에 비하면 과열이라고 보기 힘들다. 2017년 이후 S&P500 지수 상승률은 165% 수준에 그쳤다. 정보기술(IT) 분야의 다양한 신기술이 주가 상승을 견인했지만, 그 온기가 모든 업종에 전파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직후 증시 밸류에이션이 상당히 높게 평가됐지만, 2022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으로 주가가 한 차례 조정을 받으면서 내재 가치와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미국 외 지역의 주가 반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증시의 추세 전환이라기보다는 다른 지역으로의 단기적인 순환매 과정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앙은행의 정책 여력이 다르다. 대공황 당시 세계 통화정책의 핵심은 금본위제였다. 이는 각국의 통화 가치를 일정량의 금과 연동시키는 제도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 공급을 확대해야 했지만, 금본위제하에서는 금 보유량에 따라 통화 발행이 제한됐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능했다. 실제로 대공황 초기, 미국 Fed는 긴축적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금본위제 폐지를 선언하며 적극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추진하기 전까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트럼프의 해고 협박에도 Fed가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 시장은 여전히 물가 상승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지만, 이미 1%의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4% 이상의 정책 여력을 갖고 있는 중앙은행은 더 이상 금 보유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급격한 경기 침체가 시작된다면 Fed를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은 통화 팽창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협박에도 건재한 Fed…대공황은 오지 않는다
우리는 시장의 소음이 커졌을 때 시장을 떠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크게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장기 투자 성과에 있어서는 타이밍을 예측하는 것보다 ‘시장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한 워런 버핏이 투자의 귀재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오래 살면서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생각보다 1930년대와 닮아 있지 않다. 최악의 가능성에 너무 무게를 둔 나머지, 시장을 완전히 떠나는 실수를 하지 않기 바란다.

박순현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이사대우